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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선 Aug 31. 2019

예수의 행적

회당에서 호숫가에서 산에서 성전에서

  예수의 활동은 ‘기적’과 ‘가르침’으로 양분됩니다. 기적은 사형대로 끌려가는 당일까지도 계속되었고, 가르침은 갈릴리(=갈릴래아) 촌락의 회당을 시작으로 갈릴리 호숫가와 예루살렘 성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그가 대중 앞에서 가장 처음 일으킨 기적은 갈릴리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입니다.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사흘째 되는 날. 가나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혼인잔치에 예수는 그의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가 있었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아들 예수에게 알린다. 그는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대꾸했으면서도 일꾼들을 시켜 물독에 물을 채우게 한다. 이 물이 전부 신선한 포도주로 변한다. 이후 예수는 어머니와 제자들을 이끌고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간다.』(요한 2:1-12)

  만약 이 기적이 실제 벌어진 일이 아닌 설화라면, 이는 아마도 물세례의 시대가 가고 그리스도의 시대 곧 성찬식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상징적인 설화는 성서 기록자들이 구약시대부터 줄곧 사용해온 방식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예수의 초기 활동에 다양한 기적들이 함께했다는 사실은 그가 아주 빠른 속도로 민중의 관심을 모으는 비결이 되었을 겁니다. 결혼과 ‘예수를 따르는 일’ 사이에는 중대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전의 삶을 단호하게 포기하는 자발적인 결단. 

  회당(Synagogue)은 각 지역 질서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는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직접적으로는 미치지 않는 촌락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기적을 일으킬 때는 소문을 내지 말라고 명령했으며 설교는 수수께끼에 가까운 비유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대중을 상대하고 나면 어김없이 집회 장소를 벗어나 제자들을 데리고 외딴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엘리트 집단 가운데 사두가이파는 로마 정권과 친밀했고 바리사이파는 지방자치의 중심 세력이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애초에 요한이나 예수와는 섞일 수 없는 집단이었고, 바리사이파는 처음에는 예수에 우호적이었으나 죄를 용서하는 권한, 안식일, 정결예법 등에서 보인 그의 파격적인 선포를 도발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적대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저 자는 누구인데 감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크 2:7, 루가 5:21)

  합리적 관점으로 보자면, 죄의 용서는 하느님도 구세주도 국가 기관도 아닌 오직 그 범죄로 피해를 입은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예수 본인도 갈등 당사자끼리의 화해를 무엇보다 중시했습니다.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다툰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마르크 11:25). 예수는 질병을 치료하거나 악령을 쫓아낼 때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는 말로 피해자들의 죄책감을 함께 지웠습니다. 민중의 죄의식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는 암시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고대의 여러 국가에서 질병과 광기는 죄의 소산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나병, 중풍, 하혈, 간질 등 숱한 질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들은 육체로 겪는 고통으로도 모자라 죄의식에도 시달려야 했으며 사회적으로도 죄인으로 낙인을 찍히는 삼중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용서받기 위해 바칠 속죄를 위한 제물을 제대로 마련하기 힘들었습니다. 예수의 시선은 가난한 사람들의 저런 고통을 꿰뚫어보고 있었으며, 그의 언사는 심리 치료의 효력을 지녔습니다. 

  “너의 죄가 용서받았다.” 이를 바꿔 말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였으니 하느님도 그리하실 것이다. 앞으로는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하여라.”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는 예수의 저러한 언사를 신성모독이라 비난했지만 사실은 트집이며 억지에 불과합니다. 신의 대리자로서 민중이 저지른 죄의 용서를 비는 행위는 이미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줄곧 해오던 일입니다. 가까이는 요한의 물세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예수는 민중의 죄책감을 씻어주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진 자’의 위치로 가져다 놓았습니다. 크리스천 공동체는 훗날 그의 죽음을 구세주 스스로 제물로 바친 행위로 받아들임으로써 죄를 용서하는 구세주의 권한과 지위를 교리적으로 완성시킵니다. 한편, 이 부분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는 악의를 벗어버릴 의지가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해지게 돕는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후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해자와 증오와 복수심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중재하는 지점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이 놓여 있습니다. 그 지점을 우리는 인간의 양심이라 부릅니다. 

  예수의 파격적인 행동은 실로 거침이 없었습니다. 몸을 팔았던 여성들과 로마 제국의 부역자인 세리들과도 거리낌 없이 음식과 술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병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법이오.”(마르크 2:17, 루가 5:31)

  혁신적인 사람이 형식보다 본질을 중시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안식일이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다 예수의 제자들이 이삭을 뜯어 비벼 먹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 점을 비난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자중시키기보다 안식일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크 2:27, 28)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이 발생하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이 일을 크게 문제 삼고 저들끼리 예수의 처리를 두고 의논하기에 이릅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범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날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겨레에서 추방당해 목숨을 잃을 것이다.”(출애굽 31:14)

  이런 일들이 있던 무렵에 예수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골라 사도로 세웠습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크 1:17) 못 고치는 병이 없고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도 당당하기 그지없는 예수. 그의 소문을 듣고 유다와 예루살렘은 물론 인근 지방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는 전국적이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 민족에 국한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되 권위적이거나 탐욕스럽지 않았고 언제고 어디에서고 차별 없는 사랑의 도리를 설파했습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한 부분은 아마도 그런 예수 때문에 자신들의 밥그릇이 위협받는 일이었을 겁니다.

  예수의 명성을 듣고 제자가 된 사람들 중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민중은 그를 다양하게 평가했습니다. 어떤 이는 오시기로 한 그리스도라 하고, 어떤 이는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는 예언자라 하고, 어떤 이는 부활한 요한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헤로데조차 자신이 죽인 요한이 부활했다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마르크 6:14-16)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는 민중 속으로 들어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물로 세례를 베풀지도 않고 그냥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예수의 방식은 금욕과 물세례로 대표되는 요한의 방식과는 확실히 크게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좀처럼 종교적 의미의 단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제자가 그 이유를 묻자 예수는 스스로를 혼인 잔치에 나와 있는 신랑으로 비유하며 아리송하게 대답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훗날 예수의 제자들은 저 말씀처럼 기성의 유대 교회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교회를 이룩합니다.

  예수가 저항하는 방식은 다른 민중지도자들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비폭력 저항. 마태와 루가는 그의 가르침에 자신들의 해석을 가미해 복음서를 기록했는데, 둘 사이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 당신의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시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시오.”(마태)

  “당신 뺨을 때리는 자에게는 다른 뺨을 내밀고, 당신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 가게 내버려 두시오.”(루가)

  먼저 마태의 서술을 들여다봅시다. 오른뺨을 친다는 건 상대의 얼굴을 손등으로 침으로써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모욕을 동시에 안긴다는 뜻입니다. 이때 왼뺨을 돌려대는 행위는 '치려면 제대로 치라. 나도 당신과 동등한 인간이다.' 하는 선언을 품습니다. 속옷을 가지겠다는 요구에는 상대를 수치스럽게 하겠다는 모욕이 담겨 있습니다. 벌거벗은 몸은 고대사회에서 금기입니다. 겉옷까지 내어주어 아예 벌거벗은 채로 다니는 행위는 분명 저항이며 고발입니다. 반면, 루가의 서술은 마태의 것과 달리 무저항에 가깝습니다. 마태의 기억이 실제에 더 가까울 거라 추측합니다.

  예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권위는 떨어졌습니다. 중산층의 지지를 받고 일반 계층과 하층민들에 군림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 악의에 가득 차 급기야 예수가 악마의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다른 악마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모함하는 이가 나오기에 이릅니다. 이때 예수는 성령 모독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하는 유일한 죄악이라고 받아칩니다. 회심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뚤어진 영혼은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기 마련입니다. 예수가 베풀고 있는 선량한 가르침과 행위를 악마의 소행으로 볼 정도라면 이미 영원히 회복 불가능한 영혼일 겁니다. (마르크3:20-30; 마태 12:22-32, 루가 11: 14-23)

  규정보다 본질을 우선으로 하는 예수는 종교적 겉치레를 강조하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상류층을 대변하는 사두가이파나 중산층을 대변하는 바리사이파는 평소 반목했지만 예수를 헐뜯고 시험하는 데에서만큼은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들이 혹시 무슨 흠잡을 게 없나 하고 예수에게 기적적인 표징을 구했을 때, 예수는 요나의 표징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며 그들을 떠나버렸습니다. 요나의 표징이란 두 가지를 뜻합니다. 하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여 다가올 징벌을 면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나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고 살아난 일.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갈릴래아 지방과 유다 지방을 오가며 설교하던 예수는 더 이상은 권력의 눈과 귀와 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유명해졌습니다. 그 세력을 규합해 물리적인 행동을 해도 좋을 정도였을 테니 로마 정권에서도 보고받은 바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군중 속에서 지낸 지 3년이 되던 해에는 제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갑니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참으로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예수의 생각을 알 리 없는 군중은 성전 입구부터 열광하며 그를 환영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를 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 예수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쫓아내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었습니다. 물건들을 나르느라 성전 뜰을 질러 다니는 것도 금했습니다.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구나!” 이 일은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모두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두 세력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없애버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모의합니다. 

  예수는 로마 정권과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책잡힐 일은 가급적 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세를 비롯한 세금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자신의 파격적인 가르침을 어리석고 무식한 군중이 자칫 율법을 무시하라는 가르침으로 오해할까 꺼려했는지 율법의 실천을 강조하는 일도 매우 잦았습니다. 율법을 잘 준수한다고 자부하는 어떤 부자 청년에게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래야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예수의 이해는 감동적입니다. 부자들 여럿이 와서 보란 듯이 많은 돈을 넣을 때, 가난한 과부가 동전 한 닢 값어치의 돈을 헌금하는 모습을 본 예수는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 상자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이 사무엘에게 한 말씀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본다.”(사무엘 16:7) 이 감동적인 일화를 헌금 강요의 근거로 악용하는 종교인은 모두 사기꾼이고 악당입니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복음서에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사랑과 그들의 존경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득권층인 로마와 유대 지도층의 불안도 커지고, 이는 곧 예수의 목숨이 위험해짐을 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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