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필립,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 토마, 유다, 마태, 마르크, 루가, 마티아, 막달라 여인 마리아, 살로메 등이 예수의 초기 제자입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열두 제자를 언급했는데, 12(도오데카)에서 완전성과 계획성을 연상하는 유대의 관습을 따라 스승과 처음부터 함께해왔다고 알려진 사람들을 12에 맞춰 선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마태와 마르크가 언급한 타대오와 루가가 언급한 유다를 동일인물로 봅니다. 이스카리옷 사람이 아닌 유다가 바로 타대오라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에는 필립과 안드레처럼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사람도 있습니다. 요한이 체포되기 전의 예수는 여러 사람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게 하는 등 요한과 비슷한 방식으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체포 직후부터는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곳은 인구밀도가 높은 편이어서 지켜보는 눈이 많았고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감시하기에는 다소 떨어져 있는 촌락입니다.
마태와 마르크는 요한이 왕의 미움을 사 체포당해 결국 살해당했다고 서술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이복형제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이 불의하다고 그가지목했기 때문이죠.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사건의 이면에는 좀 더 정치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이 활동한 베레아 지방과 국경을 접하는 곳에 나바태아라는 유목민의 국가가 있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국가 안보를 위해 베레아 일대에 요새를 운영하는 한편, 이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았습니다. 하지만 헤로데가 이복동생의 부인인 헤로디아와 불륜에 빠지자 그의 아내가 본국으로 가버립니다. 헤로데의 눈에 베레아에서 활동하는 민중 지도자 요한은 반정부 세력의 우두머리인 요주의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예수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마태와 루가의 복음서에서는 감옥에 갇힌 요한이 측근을 예수에게 보내 '오실 그분이 당신인가?' 물었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당시 요한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있었음을 이야기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이 돌아온 엘리야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요한이 죽자 예수가 혹시 대망의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했을 겁니다. 심지어 갑자기 나타난 예수를 부활한 요한으로 생각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 운동은 얼핏 보아 요한 운동과 비슷해 보였지만, 곰곰 들여다보면 그 형태와 전략이 매우 달랐습니다. 요한을 만나려면 민중은 사는 곳을 벗어나 그를 찾아 광야와 강가로 가야 했습니다. 엄격하게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요한과 달리 예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제사를 요구하지 않았고, 더 이상 호수나 강가에서 물세례를 주지 않았으며, 다만 권위 있는 말로써 죄사함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니 장소를 가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율법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적인 규율보다는 입법취지에 따른 조언으로 민중의 사고방식에 자유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핍박당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해방시킬 왕 또는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