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와 루가의 복음서에만 있는
가장 먼저 쓰인 마르크의 복음서와 가장 나중에 쓰인 요한의 복음서에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없습니다. 마태와 루가만이 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기록 사이에는 내용이 다른 부분이 꽤 있습니다.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발끈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성서학자들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 상당 부분을 설화 곧 창작물로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는 이집트와 인도 등의 신화들과 중복되는 장면이 많습니다. 집필 당시 돌아다니던 예수 어록과 구전 설화를 기초로 삼아 복음서를 작성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태가 서술한 예수 탄생 이야기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사이였다. 그들이 아직 가정을 이루어 부부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마리아는 자신이 아비를 알 수 없는 아기를 잉태했음을 알게 된다. 요셉은 율법을 엄수하는 사람이었고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아 조용히 파혼하고자 한다. 그의 꿈에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아기가 하느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알린다. 요셉을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고 아기를 낳을 때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예수가 태어날 무렵, 동방에서 온 박사 셋이 헤롯 왕을 찾아와 묻는다. “유다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왕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온 백성이 이 소식에 놀란다. 헤롯에겐 이미 청년이 된 자식들밖에 없었고 왕비나 후궁 누구도 임신한 여성이 없었으니 박사들이 알린 소식은 그에게 있어 곧 정적의 탄생이다. 왕은 박사들로부터 유다인의 왕이 태어날 장소가 베들레헴이란 말을 듣고 그들이 아기를 찾거든 자신에게 꼭 알려달라고 당부한다. 궁궐을 떠난 동방박사 세 사람은 별을 따라 가다 마침내 아기를 찾아내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친다. 그들을 헤롯에게 알리러 가지 않고 그냥 자기 고장으로 돌아간다.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할 것을 명하자, 요셉은 그대로 한다. 헤롯은 동방 박사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냥 돌아갔음을 알자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
몇 년 뒤 헤롯 대왕이 죽자 하느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명한다. 요셉은 헤롯의 큰 아들 아르켈라오스가 다스리는 지역으로 돌아가기가 무서워 갈릴리 지역 나사렛이라는 고을에 가 자리를 잡는다.
루가가 서술한 예수 탄생 이야기
예수에 앞서 요한이 먼저 잉태되고 태어났다. 유다 임금 헤롯 시대의 지역 사제 즈카리아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에겐 늙도록 자녀가 없었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후손이다. 어느 날 제단을 돌보는 즈카리아 앞에 하느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의 아내에게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 예고한다. 루가복음 저자는 요한의 잉태에도 '기쁜 소식(루가 1:19)'이란 표현을 쓴다. 엘리사벳은 자기 몸에 아기가 생겼음을 안 뒤부터 숨어 지낸다. 이 일이 있은 지 여섯 달 후, 가브리엘은 갈릴리 지역 나사렛 마을에 사는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나타나 처녀인 그녀의 몸에 장차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위대한 자가 탄생할 거라 예고한다.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고, 마라아는 엘리사벳의 친족이다. 요한은 아버지가 현역 사제이며 어머니는 아론의 후예이니, 예수는 아버지는 다윗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아론의 후예라는 뜻이 된다. 이 설정은 요한과 예수의 혈통에도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방문하여 석 달 정도 머문다. 마리아가 방문하자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아기 요한이 기뻐 뛰논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으로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가 시행한 제1차 호구 조사 때에 요셉은 나사렛을 떠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간다. 마리아는 그곳 어느 여관의 구유에서 아기 예수를 낳는다. 이처럼 마태와 루가의 출생 기록에는 1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예수의 나이는 적게 보면 서른세 살이고 많게 보면 40대 초반이다. 다른 곳까지 참조하면 40대 초반이 더 타당해 보인다. 밤새워 양떼를 돌보던 목자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첫 번째 목격자가 된다. 아기가 출생하고 팔 일째 되는 날에 요셉은 율법을 따라 아기에게 정결예식 곧 할례를 받게 하려고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간다. 부부는 그곳에서 경건한 노인 시메온과 과부 노인 안나를 만나 축복을 받는다.
루가복음에는 특이하게도 예수의 소년 시절 일화가 하나 적혀 있습니다. 요셉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어김없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방문해 절기의 관습을 행했는데, 그만 사흘이나 소년 예수를 잃어버립니다. 부모가 예수를 찾았을 때, 그는 회당에서 랍비들과 성경 구절을 놓고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놀라 책망하는 부모에게 그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어째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물론 부모는 예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날 이후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사렛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효자이자 똑똑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사회적 비중에 비해 예수는 갑자기 튀어나온 인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마태와 루가가 탄생 이야기를 서술한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로서 갖추어야 할 정통성에는 혈통은 물론 세례자 요한과의 연계성도 중요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