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양돈까스나라

음식은 기억의 매개체이다.

by 펭귄 박


나에게는 특정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음식들이 있다.


예를 들어 두부김치는 나에게 군대의 아침을 떠오르게 한다. 두부김치는 군대에서 항상 아침 메뉴로 나오는 음식이었는데, 다음 날 두부김치가 식단표에 있는 날이면 저녁 점호할 때부터 설레곤 했다.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끔은 음식이 힘든 시절을 이겨내는 큰 위로가 되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 또한 있으니, 바로 돈가스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강동구 고덕역 인근에 주양쇼핑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주양쇼핑 지하 푸드코트는 돈가스로 유명했다. 그곳에는 따닥따닥 어깨를 맞대고 장사하는 작은 돈가스 가게들이 많았다. 주방을 둘러싼 바테이블 좌석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형태의 식당들이 대다수였는데, 두 가게가 하나의 주방을 공유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런 가게들은 오로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식당 팻말로만 구분이 가능했다. ㅁ자의 한쪽 절반은 A가게, 반대쪽은 B가게, 이런 식이었다. 돈가스는 어떤 가게를 가도 맛이 다 비슷했는데,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그 조금의 차이로 인해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단골집을 다녔다.


주양쇼핑 지하에서 파는 돈가스를 우리는 통칭 '주양 돈가스'라고 불렀다. 주양돈가스는 무한리필이 특징이었고, 그래서 근처 학교를 다니는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저녁 급식이 먹기 싫은 날 야간자율 학습 전에 친구들과 담 넘어 주양쇼핑에 가서 돈가스를 먹고 돌아오곤 했다. 우리는 그런 주양돈가스를 제2의 급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주양쇼핑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생일 때였다. 소문에 의하면 노후화된 주양쇼핑을 철거하고 재건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동안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다. 오랜 기간 그곳을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주양쇼핑에는 이런저런 상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많이 입점해 있었고, 그만큼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었기 때문에 재건축을 추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폐점하는 가게 수가 늘더니, 결국은 모두 문을 닫고 말았다. 지하 1층 돈가스 가게들은 그 유명세가 남달랐던 만큼, 마지막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버텼다.


주양돈가스의 마지막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가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 어두워진 지하 공간에 돈가스 가게는 몇 개 남지 않았었고, 남아있는 가게들은 발전기에서 공급되는 전기 불빛에 의지하여 힘겹게 장사를 이어갔다. 그때까지도 그곳을 찾던 나 같은 손님들은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다가올 주양돈가스의 종말을 애써 모른 채하며 여전히 맛있는 식사를 하곤 했다.


돈가스 가게 중에서도 눈치가 빠른 사장님들은 주양쇼핑 안에서의 장사를 남들보다 먼저 정리하고 멀지 않은 곳 상가 건물에 가게를 새로 차렸다. 내가 다니던 단골집 아주머니는 마지막까지 장사를 하시다가 결국에는 주양쇼핑과는 조금 먼 하남에 가게를 새로 차리셨다.


주양쇼핑을 벗어난 돈가스 가게들은 이전의 저렴한 가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갑자기 인상된 가격과 달라진 환경에 가게들은 단골들을 잃고 말았다. 나 역시 멀어져 버린 단골가게를 좀처럼 쉽게 방문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한 번씩 고등학교 시절 제2의 급식이 생각날 때, 학교와 부모님의 안전한 품 안에서 생활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 하남까지 그 가게를 찾아간다.


돈가스는 가격이 올랐지만 여전히 맛있다. 전보다 가게 규모가 커져 이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아직도 주방을 지키고 계신다. 나는 다 먹고 계산할 때 굳이 주방 안쪽을 들여다보며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사장님은 낯익은데 누군지 가물가물한 사람을 본 것과 같은 표정으로 반갑게 내 인사를 받아주신다.


음식은 단지 칼로리와 맛 이상의 것을 전달한다.

사장님은 모르실 것이다. 당신이 튀긴 돈가스가 많은 이들의 학창 시절을 간직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