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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Dec 14. 2023

이 없으면 잇몸으로

허리디스크 집게 is 뭔들

출산후유증으로 찾아온 허리디스크.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지만 허리는 통증이 심하지 않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MRI 촬영결과 허리디스크 중기로 확인되었다. 오히려 심한 통증으로 큰 문제일 거라 생각했던 목, 어깨보다 허리가 더 안 좋은 상태라고 하니 이야말로 인체의 신비다.

     

출산을 하면 별문제 없이 건강했던 사람도 몸이 많이 상한다. 그 와중에 여러 가지 육체노동이 수반되는 육아까지 감당해야 하니 산 넘어 산이다.     


더군다나 나는 다친 곳 치료 중에 임신이 되었고 전자간증 의심으로 응급제왕절개 수술까지 했더니 가만히 앉아 있는 일조차 힘겨웠다. 임신 후기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내야 했고 출산 후에도 바닥에 떨어진 휴지조각을 줍는 게 힘들어 눈물이 났다.     


결혼 5년 만에 기적처럼 힘들게 찾아온 아기였지만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버겁기만 했다. 아기에게는 많이 미안하지만 왜 하필 다친 곳 치료가 필요할 때 갑작스럽게 찾아왔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내 옆에 도와주는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열 달간 내가 복용할 수 있는 약이라고는 타이레놀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병원 시술 또한 불가능했기에 하루하루 불안했지만 아기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된 지금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기를 보고 있으면 충분히 감당할만한 고통이었음을 저절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아기는 나을 듯하면서도 또다시 반복되는 나의 만성통증을 해결할 의지를 북돋워주는 원동력이다. 우리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건강해야겠구나.

     

내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육아할 때 조심해야 할 자세, 통증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생활습관 등 내 몸의 건강도 공부해야 하는 영역임을 다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기에 오늘도 호기롭게 허리디스크 집게로 아기 장난감을 정리한다.


허리 안 굽히고도 아기 장난감을 정리할 수 있는 세상이라니. 이건 혁명이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 조각 줍기 힘들다고 울지 말고 허리디스크 집게 사용하면 될 것을. 걸핏하면 울던 과거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단돈 5,490원에 기분이 이만큼이나 좋아질 수 있다니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 같아 행복해진다.


불평과 원망의 터널을 뚫고 나올 힘은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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