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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Dec 15. 2023

230원의 쾌감

이랜드 포인트로 찾은 야무진 행복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도착한 한 통의 문자메시지.

확인해 보니 올해 12월 말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포인트가 소멸되니 얼른 사용하라는 기분 좋은 독촉장이었다.

     

억지로 써야 하는 돈이 생기다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포인트 25115점. 우리 가족의 소비가 남긴 훈장을 아무렇게나 취급할 수는 없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 다른 날에 갈지 고민했지만 지금은 12월 15일. 12월이 끝나간다. 동생에게 운전 좀 해달라고 SOS를 요청했고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오늘 가라는 하나님의 계시구나.

     

몇 가지 식품을 사 오라는 엄마의 특명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의 마음으로 출발했다. 필요한 식품 목록을 메모하고 장바구니까지 챙겼으니 출전 준비 완료!  

   

우리 집 가까이에 있어 자주 갔던 NC백화점. 인터넷 상거래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쇼핑하러 자주 오던 곳인데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예의상 의류, 잡화 코너  한 바퀴 빙 돌아주고 본격적인 미션수행을 위해 지하에 있는 킴스클럽으로 내려갔다.     


요플레, 우유, 바나나. 엄마가 주문한 식품들을 다 사고도 포인트가 남는다.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먹고 싶은 과자랑 잡다한 것들을 카트에 넣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도착하니 나 말고도 포인트 쓰러 온 듯 보이는 분들이 몇몇 줄을 서 있다. 내 차례가 되자마자

     

“포인트로 구매하려고요.” 다부지게 용건을  했다.     

그렇게 계산이 시작되었고 포인트를 1만 점 이상 사용할 경우 신분증을 확인해야 하는 절차에 따라 운전면허증까지 내밀었다.      

“포인트가 3000점 정도 남네요.”     

아뿔싸! 내 계산이 잘못됐다.      

“그럼 이 3000점은 어떻게 하죠?”     

“5000점 이상 모아야 사용하실 수 있어요.”  

   

그건 안될 말이다. 이런 단순한 계산을 틀리다니. 스스로에게 실망스럽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기는 이르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궁여지책을 떠올렸다.     

“혹시 지금 구매한 것 결제취소하고 3000원짜리 물건을 추가해서 다시 계산할 수 있을까요?”    

 

원칙은 포인트를 5000점 이상 모아야 사용할 수 있지만 나의 간곡한 부탁에 그렇게 하라셔서 후딱 마트로 들어가서 3000원을 넘기지 않는 품목 중 후회하지 않을 소비는 무엇일지 스캔을 한다. 그 사이 동생이 이미 계산한 물건들을 보초병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완벽한 팀워크란 이런 것일까.    

  

메로나 우유 5개 묶음이 눈에 띈다. “바로 저거야!” 잽싸게 집어 들어 계산대로 달려간다. 그 사이 줄이 제법 길어졌지만 이 정도쯤은 전투의 승리를 위해 감당할 수 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추가로 230원 결제하시면 됩니다.”     


결국 내 돈을 230원 썼지만 3000원을 버리는 것보다는 230원을 쓰는 게 나으니 꽤 괜찮은 소비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난 참 합리적인 여자야.’     


사실 이 정도 포인트면 그동안 소비한 돈이 훨씬 많겠지만 기적의 계산법으로 일상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 실제로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합리적이지 않으면 어때?’     


사실 일상의 행복은 옳고 그름, 합리와 비합리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지만 포인트로 야무지게 찾은 행복.


행복은 내 마음에 달린 것임을 이렇게 또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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