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등에 기대어
엄마의 키가 작아졌다. 어깨를 안으면, 솜사탕 같은 엄마의 머리가 내 턱을 간질인다. 병원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며, 버릇처럼 엄마의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진료실 간호사가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 석 자가 불리는 곳이 병원밖에 없다.'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났다. 안경 너머 의사의 눈과 마주쳤다.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에 마른침을 삼켰다.
"척추가 많이 휘어지셨네요. 많이 아프셨을 것 같은데, 괜찮으셨어요?"
눈앞의 모니터 속에 엄마가 있다. 반듯해야 할 척추가 누가 당기기라도 한 듯 옆으로 휘어져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의사를 향해 웃어 보이셨다.
"내 허리가 S라인이네요. 별로 안 아팠습니다. 여태 이러고 살았는데요. 딸이 자꾸 키가 작아졌다고 하길래 그냥 와 본 겁니다."
엄마의 등골이 휘었다. 나는 그 등에 너무 오래 기대 살았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마음과 다른 말들이 튀어나왔다.
"의사 선생님이 많이 아팠을 거라고 하잖아. 왜 말 안 했어? 엄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정말"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렇게 되셨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내 나이가 몇인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의 등에 기대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았단 말인가. 내 아이를 키우느라 노심초사한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아이들은 할머니 손끝에서 훌쩍 자랐다. 수술적 치료는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심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으시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수술을 해도 연령도 높아서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을 하던 의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괜히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병원을 나와 하얀 곰탕을 마주하고 앉았다.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이 한 그릇뿐이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위기를 좀 바꿔 보려고 어설픈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막내가 대학원에 진학했어. 걔가 내 등에 빨대를 제대로 꽂으려나 봐."
"아이고,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 딸 등골 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어쩌겠노.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는데 시켜야 안 되겠나. 그런데 너는 글 쓰러 다닌다더니 공부는 잘되나?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고?"
"친구?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계셔"
"같이 학교 다니면 다 친구지"
"맞네. 우리 엄마 말이 다 맞네"
사는 내내 나의 든든한 빽(back)이 되어주셨던 엄마의 등이 휘었다. 그토록 눈부시던 등이 작아지고 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당을 나섰다. 작아진 엄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걸었다.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내 속도 모르고 자꾸만 발걸음을 재촉한다.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휘청이는 엄마의 걸음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