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압니다. B형 여자이고 딱 나이만큼 보입니다. 결혼했지만 밥은 잘하지 못합니다. 못해서 안 하는 건지, 안 해서 못하는건지, 둘 다 일 겁니다. 하는 일과 목소리는 남자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집에서 듣는 소리입니다.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싫은 사람은 쭉 싫어합니다. 약간의 활자중독 증세를 보입니다. 읽을거리가 없으면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나는 모릅니다. '너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누가 물으면 대답이 한 보따리였다가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합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과는 달리 '글쎄요'라는 말을 삼키곤 합니다. 까맣게 몰랐던 건 제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진작 좀 알았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그랬다고 달라졌을 건 별로 없었을 겁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조그만 횃불을 하나 들고 어둠 속으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깜깜한 구멍 속에는 나와 횃불 그리고 그림자 하나만 존재합니다. 평지인 줄 알았더니 내리막입니다. 한 계단씩 헛디디지 않으려 용을 쓰며 내려갑니다. 손으로 더듬는 벽의 감촉이 의외로 까끌까끌하지는 않습니다. 웃음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 한 정체 모를 소리를 따라 내려갑니다. 동굴 속에 샘이라도 있는 걸까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똑똑'하고, 나를 노크합니다.
여태 살아놓고도 '나는 누구다,' 라고 말하지 못한 게 못내 쑥스러워서 나선 길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데 기분은 낮처럼 밝습니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길을 걷는 듯, 스며든 공기가 싸합니다. 기대가 큰가 봅니다. 본 적 없으니 바랄 수밖에요. 이렇게 어렵게 찾아가는데, 별거 아니면 슬프겠지요.
길을 잃지 않으려 벽에 나만의 표시를 새깁니다. 아주 단단하고 지워지지 않을 그런 눈물 자국입니다. 나이만큼 숫자를 세며 걸어갑니다. 금방 끝날 것 같아서, 다시 살아온 날짜만큼 세며 걷습니다. 아주 멀리 가야 할 듯합니다.
나를 안으러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