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
벽에 걸린 시계가 무심하게 째깍거린다. 알람 소리에 비비적거리며 눈을 뜨고 죄도 없는 시계를 괜히 한 번 째려보고는 '끙' 소리를 내며 돌아누웠다. 여느 때처럼 그이가 보이지 않는다. 주방에서 조심스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어났구나' 하며 안도한다. 차려주지 않는 아침을, 알아서 챙겨 먹는 남편의 생존 본능을 나는 그만의 서툰 사랑 표현법이라 여긴다. 이렇게 무심하게 시작된 하루가 축복임을 이제는 안다.
하루가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늘 보여주는 부스스한 얼굴이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치 처음인 듯 아침 인사를 건넨다. 어제와 다르게 좀 더 소리를 높이거나 손을 흔들거나 말없이 엉덩이를 두드린다. 나만의 하루 행복 시작 리셋 버튼이다.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나이 들어가는 육신은 리셋이 되지 않는다. 매일 혈압과 혈당을 체크해야 할 나이가 되었고 간헐적이지만 무릎에서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목디스크 진단을 받고 목에 핏대 세울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더 이상 젊은 날의 내가 아니다.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고의 문제일 뿐이다. 안달 낸다고 나이 듦이 나만 쏙 빼놓고 비껴가는 것도 아니다.
출근해서 책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매일 오 분 쓰기'이다. 잡글이든 일기든 뭐든 쓴다. 글쓰기를 내 삶에 들여놓은 작년부터 시작한 하루의 루틴이다. 오 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고 때로는 깊은 시간이다. 여전히 비몽사몽인 마음에 전원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잠시 멈칫한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이 되어갈 마음을 깨우는 의식이다. 이 오 분이 하루를 살게 한다. 이제는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아니, 잃어버린다. 기록하지 않으면, 나조차 잊고 말 생의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난 이런 마음이야, 넌 어때?' 물어주고 귀 기울여주며 공감해 주는 이가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몸은 비록 따라주지 않을지라도 마음만은 펄떡이는 생동감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리셋버튼이다.
단 하나의 버튼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리셋 버튼을 상상하며 맘속에 저장한다. 늙어버린 모습 말고 첫 입맞춤의 설렘을 다시 불러오게 하는 '사랑 리셋', 철딱서니 없는 불평 대신 작은 것 하나에도 뭉클해지는 '감사 리셋', 지금은 엉터리 글일지라도 언젠가 모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 리셋'.
이 색색의 버튼이 달린 멋진 슈트를 입고, '오늘'이라는 문 앞에 다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