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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이 없는 [나라]와 일기장이 없는 [나]

내 일기장의 쓸모

역사책이 없는 나라?

역사책이 없는 나라를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개인의 기억에만 간직하고 있는 나라말입니다. 아마도 각자 조금식 다른 버전의 역사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이제 서로의 기억이 맞다며 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다고만 말합니다. 자신의 부모에게서 틀림없이 들은 이야기이며 자신의 부모는 그들의 부모에게서 틀림없이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이 나라가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 다들 날짜가 다르고 그 경위가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들 나름대로 정책이란 걸 세워서 실행해보기도 하는데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현실에만 충실해서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이미 5년 전에, 8년 전에, 10년 전에 해봤던 겁니다. 그때는 성공했는데 심지어 이번에는 실패합니다. 나름 이유를 생각해내긴 하는데 그건 벌써 8년전에 한번 해결했던 문제입니다.


이 나라에는 기념일도 없습니다. 역사책을 쓰지 않기로 작정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비참함을 잊지 말자는 기념일, 긴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음을 기뻐하는 기념일 또는 다른 나라를 침범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는 기념일 등이 기록에 없습니다. 전쟁 때 도움을 줬던 국가들의 공적이나 국내 국가유공자들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겠죠. 너도 나도 ‘유공자’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요. 더 최악인 것은 나라의 배신자들이 되려 영웅인양 행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를 역사로 남기지 않는 나라는 과연 나라가 맞는지 의심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국가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국가적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또한 실패의 반복을 피하고 더 나은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행위의 성공과 실패를 세심하게 기록해야합니다.


즉,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역사기록이 필수적입니다.




역사책(일기장)이 없는 나?

끝에 ‘라’자 하나만 빼면 됩니다.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은 '나'라는 국가에 역사책이 없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국가와 나는 의외로 비슷한 점이 꽤 있거든요. 때론 국가가 인간의 몸에 비유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국가정책을 관리 및 통제하는 뇌 역할을 하는 정부기관, 정책을 실행하는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실무자들 그리고 국가가 살아움직이도록 유지해주는 심장 역할을 하는 국민들 등입니다. 마치 거인같습니다. 국가들이 교류하는 모습도 마치 각 개인이 서로 교류하는 것과 비슷해보입니다. 국가는 인간의 확장판입니다.


‘하지만 내가 다스리는 나라는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 부터 주어지는 ‘나라’가 모든 인간에게 다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몸입니다. 그저 물리적인 몸뚱아리 하나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성, 감성, 의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며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나 자신이 바로 나의 나라입니다. 국가처럼 타인과 어릴 때부터 교류하며 성장합니다.


[다스리다]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이라는 집단에 소속된 채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것이 국가의 형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집단의 수장은 내가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즉, 내가 태어날 때부터 다스리는 수장의 역할을 하는 나라는 오직 나 자신의 몸 밖에 없습니다.


몸이 영토로 비유될 수 있다면 국민은 욕망과 필요에 비유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유미의 세포들’이란 웹툰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연애 세포’, ‘감성 세포’, ‘거짓말 세포’, ‘약속 관리 세포’ 등이 마치 ‘마음 속 마을에 사는 여러 명의 주민들’처럼 재미있게 표현되어있습니다. 심리학자 안나 프로이트도 인간 성격을 현실적인 ‘자아’, 도덕적인 ‘초자아’, 본능적인 ‘원초아’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는 ‘다중 인격’처럼 내 속에 어떤 다양한 인격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기선 욕망을 마치 인격인양 표현한 것일 뿐이죠. 하지만 적어도 이를 통해 우리 각자에게는 우리가 다스려야 할 ‘다양한 욕망과 필요’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들의 다양한 욕망과 욕구를 고려해서 정책을 만드는 것처럼요. 여기에 더해 우리 신체의 각 부분도 손가락, 손바닥, 허리, 발, 발등, 심장, 혈관 등으로 세분해서 '보살펴야 할' 국민의 일부로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권과 통치권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원하는대로 몸을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한받는 경우는 장애를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물론 지독한 국가에서 개인의 행동을 법적으로, 때론 심지어 폭력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 자신의 손가락과 팔, 다리를 어떻게 움직이고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자유조차 막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는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주권과 통치권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제 아래 문장들을 나란히 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역사기록이 필수적입니다.
나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역사기록이 필수적입니다.



'필수'라구요? 일기 안써도 잘 사는데요?

일기를 안 써도 큰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 소제목의 반문이 떠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매일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내 삶의 역사기록은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네, 바로 뇌가 쓰는 기억이라는 일기입니다.


국가의 역사적 사건들은 그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기억만으로는 문제가 많이 생기지만 적어도 우리 개인이 겪는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만으로도 어느정도 대응 가능해보입니다. 그래서 국가적 역사기록처럼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역사책이 없는 나라]에서도 봤듯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허물어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지금 무슨 일이 되었든 ‘좀 더 잘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기 습관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꼭 ‘최고가 되겠다’라든지 ‘탁월해지겠다’라는 목표가 아니더라도 내가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더 잘 해내야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저 ‘보통’을 누리기 위해 ‘보통 이상의’ 노력을 해야할 때도 있구요.


‘잘 해야한다’라는 것이 꼭 직장에서 일을 더 잘하게 되거나 시간관리를 더 잘하게 되는 것 등 어떤 퍼포먼스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관계를 좀 더 원만하게 해나가는 것, 내 마음을 편안한 상태로 좀 더 잘 다스리는 것, 여행의 추억을 좀 더 선명하게 간직해서 더 오래동안 여운을 누리는 것 등 일상생활적인 부분도 포함됩니다.  


국가의 역사기록이 국가를 더 잘 다스리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되듯 일기장은 스스로를 좀 더 잘 다스리는데 좋은 역사적 자료가 되어줍니다.



다양한 일기의 쓸모

국가처럼 우리 각 개인도 경험하는 것이 다양하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일기의 쓸모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이것을 일기로 기록하기 시작하면 이 일기장은 살을 빼는데 쓸모가 있는 것이 됩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얻고 싶어서 습관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건 습관만들기에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가족과의 추억을 담은 일기장은 가족과의 유대감을 더 깊어지게 해주는데 쓸모있습니다. 뭘 기록하든 그것을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죠.


저에겐 시간관리가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무엇을 했는지 매일 기록하려고 애씁니다(못할 때도 있지만요.) 그리고 그중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에는 겪었던 상황을 묘사하고 나의 감정, 의견을 보태서 좀 더 길게 씁니다. 그리고 별 표시를 남겨둡니다. 나중에 일기를 다시 읽을 때 중요한 사건들만 빨리 읽어보기 좋거든요. 할일이나 일정, 목표, 나 자신에게 하는 조언 같은 것도 쓰는데 이것들은 일기는 아닙니다. 일기는 경험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할일, 일정, 목표, 조언이 내 삶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쓰게 되는 곳이죠.


다른 글에서는 할일, 일정 그리고 일기 등을 어디에 어떻게 기록하는지를 공유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3년의 시작

글을 쓸수록 퇴고가 자꾸 길어집니다. 이 글도 몇번이나 수정했는지 모르겠네요. 밀리고 밀리다보니 이 글 발행일이 23년 1월 2일이 되어버렸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오늘부터 내 역사를 기록해나가는 것도 추천드려봅니다. 




미스토리언 Mistorian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나(Me) + 역사가(Historian)란  합성어로 ‘나 자신의 삶을 역사가처럼 기록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일기를 쓰고 다시 읽는 것은 미스토리언의 핵심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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