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토리언 Mistorian 의 탄생
[지난 글]
누구든 이야기가 있다 - 역사학적 사고방식과 일기 (1)
카메라 프레임 밖으로 - 역사학적 사고방식과 일기(2)
자신의 삶을 역사가처럼 바라보며 기록하는 미스토리언 Mistorian : Me + Historian 을 소개하며 역사와 일기쓰기를 잇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역사학적 사고방식 Historical Thinking 을 개인의 삶에도 적용해보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적 사고방식의 3요소]
1. Change Over Time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
2. Context 맥락
오늘은 다중(복잡한) 인과관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은 얽히고 설켜 복잡했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이 이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승자들은 단 하나의 나라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단 하나의 원인을 강조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지적으로 변명의 여지도 없었을 뿐더러 상상할 수 없는 끔직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번역 by 펜메모덕후)
The causes of World War I were tangled and complex, and many nations participated in the conflict, yet the victors chose to highlight a single cause, to lay the blame squarely on one nation. Not only was the decision intellectually indefensible, but it was to have unimagined, and horrific, consequences.
J. Salevouris, Michael ; Furay, Conal . The Methods and Skills of History: A Practical Guide (p. 87). Kindle Edition.
이런 복잡한 원인이 얽힌 전쟁이 꼭 국가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몇번의 전쟁을 겪으셨나요? 원치 않았지만 참여하게 된 전쟁도 있고 내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쟁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가 내게 전쟁을 걸어온 경우도 있었을 것이구요.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우리네 마음과 성격에 흉터를 남깁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주먹질까지 가는 그런 식의 다툼은 드문편이지만 직장에서 ‘정치질’이란 말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흔해보입니다. 이 전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를 입히고 또 흉터를 남깁니다. 그리고 이런 전쟁은 꼭 직장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질’이란 말 그대로 정치에서는 붉은색과 푸른색 간의 전쟁이 정말 깜짝 놀랄정도로 노골적입니다. 때로 정치뉴스에서 막말과 삿대질,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이 나올 때면 저희 집 초등학생 아이들이 눈치챌까봐 얼른 채널을 돌리고 싶을정도로요. 그 순간에 아이들이 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면 도저히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하기가 난처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회사들 간의 ‘경쟁’적인 전쟁도 있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이윤을 위해, 생존을 위해 매일 단위로 경쟁합니다. 제품과 광고로 전쟁합니다. 댓글부대와 뉴스기사로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합니다. 회사 뿐만이 아니라 유명 연예인들, 가수들의 팬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날 수 있습니다. 국가들 간의 전쟁처럼 많은 것이 걸린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 수준이 되어버립니다.
공정한 경쟁은 이점이 있지만, 어쨌든 경쟁의 요소가 스며들어있는 곳에는 이런 어두운 면도 함께 도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해야하는 것이 경쟁이니까요. 전쟁은 칼날을 날카롭게 만들고 이는 결국 서로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그래도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도전하는 이들도 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그만 멈추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 중에서도 성공한 승자들의 이야기는 유튜브와 서점에 가보면 잔득 있습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패배한 자들의 이야기는 ‘시장의 고객’과 알고리즘의 선택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 글의 가장 첫부분에 언급되었던 인용문장은 그런 승자들이 할 수 있는 행동 중 한가지를 보여줍니다. ‘이 끔찍한 세계대전이란 전쟁이 애초에 왜 일어났는가? 바로 패자인 저 나라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승자는 역사를 기록하기 좋은 위치에 서있습니다. 승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부차적인 원인’들은 대충 넘어가버리고 패배한 나라 탓하기가 더 쉽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승자의 영향력을 악용하는 더 독한 이들은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 패배자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물론 실제로 패배한 나라의 탓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가장 컷을 수도 있습니다. 양심적인 승자와 비겁한 패자도 있을 수 있는 법이죠. 그래서 승자가, 패자가 무슨 말을 하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팩트검증 해봐야 알 일입니다. 하지만 미스토리언들이 의식하고 있어야 할 점은 왠만한 사건은 모두 여러가지 원인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딱 한가지 원인만 있다고 확정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승자들의 발언권이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록을 하기 쉽다는 점도 말입니다.
앞서 서점에 ‘승자들의 책’이 가득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들의 책에서 인생 및 사업 습관, 방법들을 배우면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합니다(그래서 그런지 그런 약속을 대놓고 하는 책도 못 본 것 같네요). 나라간 전쟁의 원인이 다양하고 복잡한 것처럼 개인적인 성공의 원인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뛰어난 판단, 습관 그리고 사고방식 등 개인적인 특성 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했던 환경적인 조건, 기회의 타이밍 같은 것도 성공여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조건만 간단하게 고려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책으로 공개하기 전 과거에는 그 사람만 알고 있는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극소수의 나라만 가지고 있던 핵무기가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가지고 있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핵무기 제조 방법이 공개된 시점을 기점으로 더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또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야하는 것입니다. 환경적 조건이 바뀌면서 '압도적인 무력 국가 1위'라는 식의 동일한 성공은 이제 핵무기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조건 이외에도, 다른 많은 변수들이 개입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승자들이 여태까지 ‘성공에 기여한 조건들'을 완벽하게, 빠짐없이 모두 다 관찰하고 기억하고 있는게 가능할까요? 역사가들은 ‘완벽한 과거의 복원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전쟁 뿐만 아니라 사업의 부진과 성공, 관계의 파탄과 회복 등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역사의 결과들은 모두 여러 원인들이 얽혀있습니다. 지금 내가 커리어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것, 또는 실패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단 한가지 원인’은 없다고 생각하는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건이 그런 복잡한 원인들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로 제가 지금 글을 쓰면서 눈이 따가운 원인은 제가 쉬지 않고 2시간 가까이 글쓰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아주 단순한 원인-결과 파악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더 짧은 에피소드는 더 간단하게 원인 파악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도 관점의 렌즈를 좀 더 다양하게 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른 원인들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좀 쉬었으면 눈이 덜 따가웠을 것 같은데 왜 한번도 쉬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몰입이 끊기면 손해다’라는 신념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타벅스에서 푹신하고 편한 의자를 차지해서 아마도 더 몰입하기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제 휴대용 기계식키보드의 스위치를 오렌지 축으로 바꿨는데, 찰칵거리는 키감이 은근히 기분좋게 만들어줘서, 더 타자를 치고싶게 만들어준 것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밤에는 넷플릭스를 늦게까지 보지 않고 빨리 잠들어 양질의 수면 때문에 가능한 몰입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 단순하게, 알고보니 노트북 화면 밝기가 주변 조명에 비해 너무 밝게 설정되어 있었거나 폰트를 너무 작게 조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죠. ‘눈이 따가운 원인’이라는 일상적인 일에도 이렇게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한 두가지 원인으로만 모든 일들을 설명하는 것은 시원시원하고, 깔끔합니다. ‘단순한게 최고! Simple is the best’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인생이 복잡하단 것을 다들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간단한 원인규명이 ‘잘 팔리는 것’이죠.
하지만 정말 간결하면서도 ‘타당한’ 한 두가지 원인을 제대로 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되려 복잡하게 얽힌 원인들을 잘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원인들이 얼마나 결과에 기여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테니까요. 간결하면서도 타당한 원인을 찾기 위해 복잡한 원인들을 탐구하는 감수를 하는 것입니다.
예로 애플이란 회사는 ‘단순함의 미학’을 잘 실천하는데, 그들의 단순함을 저는 ‘정교한 단순함 Sophisticated simplicity’ 이라고 생각합니다. 별 생각없이 ‘대충 결정한 단순함’의 반대말로 생각해본 표현입니다. 애플의 직원들은 단순하면서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공정과 시행착오의 복잡함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단순함’이 매번 성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란 말 이후에 이어지는 부연설명을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이런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입니다. (...) 미니멀리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잡동사니를 걷어내는 정도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복잡함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보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단순해지려면',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봐야 합니다. (번역 by 펜메모덕후)
스티브 잡스
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 It's not just minimalism or the absence of clutter. It involves digging through the depth of complexity. To be truly simple, you have to go really deep.
*출처 : azquotes.com
이처럼 미스토리언들도 삶의 복잡성을 직면하고, 평소 이에 대해 의식하고 기록해봄으로서 점점 더 크고 작은 인생 문제의 원인 판별에 ‘정교한 단순함’이 깃들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핵심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더 정교해지고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미스토리언들의 일기습관은 이런 역사학적 사고방식을 정착시키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해줍니다.
물론 원인을 파악한다고 해서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좋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를 찾아볼 수도 있구요. 미스토리언들은 이런 점에서 스페셜리스트라기 보단 제너럴리스트입니다. 제너럴리스트로서 삶의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그 중 한 영역에서 스페셜리스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까지의 역할을 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생리적 원인이 핵심이라고 판단하면 의사를 찾습니다. 심리적인 원인이 핵심적이라면 심리상담사를 찾습니다. 경제적인 원인이 핵심적이라면 직업상담사나 컨설턴트, 은행을 찾습니다. 일기를 쓰며 미스토리언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은 ‘일상의 제너럴리스트’로서 성장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역사학적 사고방식은 여기서 마무리할까합니다. 다음글은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미스토리언의 버전으로 바꿔 써볼까합니다.
미스토리언들은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사건들에 다양한 원인이 있음을 의식한다.
1. 미스토리언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물과 사건 뒤에 과정 즉 이야기가 있었음을 의식한다.
2. 미스토리언은 이야기의 한 두가지 장면만이 아니라 전체 맥락을 의식한다.
3. 미스토리언은 대부분의 사건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음을 의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