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프레임 밖으로 - 역사학적 사고방식과 일기(2)

미스토리언의 탄생

[지난 글]

누구든 이야기가 있다 - 역사학적 사고방식과 일기 (1)


*맥락편을 올렸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아예 다시 써봅니다!

자신의 삶을 역사가처럼 바라보며 기록하는 미스토리언 Mistorian : Me + Historian 을 소개하며 역사와 일기쓰기를 잇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역사학적 사고방식 Historical Thinking 을 개인의 삶에도 적용해보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적 사고방식의 3요소]

1. Change Over Time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

2. Context 맥락

3. Multiple Causality 다중 인과관계


오늘은 맥락에 관해 살펴보려고합니다.


손을 뿌리쳤다?

최근 카타르 월드컵에서 역사를 쓴 대표팀의 리더 손흥민 선수와 벤투 감독 간의 갈등을 암시하는 듯한 제목("손흥민, 벤투 감독 손 뿌리치다?"란 식)과 사진 1장이 뉴스기사에서 보였습니다. 가나전 패배 직후의 사진이었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


이 사진만 보면 사실인 것 같아보입니다. 이런 뉴스가 몇개는 더 나오고 나서야 반박 기사가 올라옵니다. 한 유튜버가 현장 상황을 영상으로 촬영한 것을 가지고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출처 : 달수네라이브 (중아일보 기사 사진)


최초에 돌았던 사진은 사실이었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경기 패배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손흥민 선수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손을 뿌리쳤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후에 벤투 감독이었던 것을 확인하고는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는 영상입니다. 이 영상에 논란이 사그라드는 듯했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난다고 누구든 간에 저렇게 손 뿌리치는게 맞느냐는 식의 댓글이 여전히 드문드문 보이기도 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흔히 목격하듯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은 정말 겪한 몸싸움을 합니다. 손 뿌리치기 정도는 애교수준이죠. 그런 겪한 부딪힘 후 패배까지 한 상태에서 여전히 경기장 안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리더로서 책임에 대한 압박도 큰 스트레스였겠죠. 이렇게 손선수가 그 순간에 처해있던 '맥락'을 고려한다면 저는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저는 사진 1장의 장면으로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있지 않냐는 식의 해석이 나오는 것을 보며 맥락의 중요성이 이렇게 크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축알못인 제가 혹시 과거 갈등설을 놓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은 반박 영상이 나왔기 때문에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계속 글을 써보겠습니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몇몇 기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자극적인 제목을 만드는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동조하는 댓글이 꽤 있어서 놀랐던 것 같습니다. 사진 1장이라는 프레임 안에 있는 한 가지 행동을 그럴듯한 가설적인 맥락(벤투감독과의 갈등 등)과 결합하면 이렇게 키메라*같은 해석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게 SNS를 통해 산불처럼 삽시간에 퍼져나가기도 좋은 시대이구요. 누구든지 손가락 끝으로 언제든지 이런 키메라를 만들고 퍼뜨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걸 만약 의도적으로 했다면 이걸 '프레이밍'이라고 부릅니다. 정치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나온 묘사에 의하면 '신의 혈통이나 사람은 아니고, 앞은 사자, 뒤는 뱀, 중간은 끔찍한 지혜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을 내뿜는 염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사진 및 설명 출처 : 나무위키


키메라 해체

이 '키메라'를 해체한 것은 전체 맥락을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손 뿌리치기' 장면의 앞 뒤 상황을 보여준 것이죠. 물론 사진도 앞 뒤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성이 있다면 충분히 전체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과 관련된 역동적인 상황인 경우 사진보다는 영상이 좀 더 강력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영상이라고 해서 항상 전체 맥락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되려 영상의 설득력이 악용 당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 큰 영화관에서 개봉하진 않았지만 [존 덴버 죽이기]라는 필리핀 영화는 영상이 맥락을 조작하는데도 강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줄거리는 SNS에 올라온 거짓(과 진실이 혼합된) 영상 때문에 한 학생이 죽음을 택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두 학생 간의 다툼이었지만 한 쪽을 '악마'로 만드는 맥락으로 편집된 SNS 영상과 글이 많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며 매우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SNS의 부작용을 강조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과 거짓이 섞인, 맥락이 조작된 영상'입니다.


출처 : 시네마 뉴원


SNS에 올라온 영상에는 주인공이 상대방을 구타하는 장면만 영상으로 찍혀있고 그 앞의 상황은 영상에 없습니다. 글에도 언급이 없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강조하며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식의 글들만 적혀있습니다. 이것이 입소문을 타게 되며 결말은 결국 주인공의 비극으로 치닿게 되죠.


영상을 보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영상에 담겨지지 않은 맥락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카메라 '프레임 밖'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해둬야 합니다. 그리고 영상에서 어떤 의도가 진하게 느껴지며,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이라면 우리는 이것이 혹시 '키메라'가 아닌가 의심해봐야합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며 영상속 얼굴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 기술은 앞으로 더욱 정교하게 발전할 일만 남았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뭐든 음모론으로 귀결되는 수준이 아니라면, 합리적인 수준의 의심정도는 갖추고 인터넷 정보들을 대해야 합니다.


관찰과 기억의 빈곳

미스토리언들이 일기를 쓰려고 할 때도 사실 의도적이지 않게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애초에 주의깊게 관찰하는 장면도 몇개 없으며 그중 기억에 남기는 것은 더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효율을 위해서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1분 1초 단위로 모든 걸 기억, 기록하려고 하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 몇가지만 기억하는게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사람마다 어떤 일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예로 앞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다 기록하는게 효율적이지 않다고 했지만, 만약 '시간관리'를 한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일상을 10 - 30분 단위로 기록하는 것이 상당히 가치있는 일이 됩니다. 이런 기준들이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관찰과 기억'의 프레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장점은 중요한 것들이 눈에 잘 띄고 양이 적어 기억 또는 기록하기 수월합니다. 하지만 대신 카메라 프레임처럼 '사각지대'를 가지게 됩니다. 이 사각지대의 사실들은 관찰 및 기억에서 생략되며 그나마 관찰 프레임 안에 들어온 사실들도 우리 마음 속의 강렬한 욕망에 의해 '변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 기억력의 한계는 맥락의 부분부분에 구멍을 뚫기도 하구요.



그런데 '관찰과 기억의 빈곳'은 그저 빈곳으로 남아있을까요? 그런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종종 우리의 현재 맥락이 그 빈곳을 채워버리기도 합니다. 손흥민 선수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해외 축구팀의 감독과 그 팀의 유명한 선수 사이에 다툼이 난 이야기를 한참 하던 중 '손 뿌리치기' 사진과 '불화아니냐'는 기사제목을 우연히 접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기사의 제목에 '그럴지도?'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한참 빠져있던 친구와의 대화 내용이 맥락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이 기사 제목과 사진이 퐁당 빠진 것이죠. 유사한 점이 많은 이야기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기사를 더 읽다보면 '전체적인 맥락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에 대해 이런식의 검토를 하지는 않습니다. 즉, 엉성하게 조립된 채로 기억의 한켠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스토리언들의 상상력

이런 '관찰과 기억의 빈곳'을 의식하는 미스토리언들은 역사가들의 지혜를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맥락에서 과거를 보려고 하지말고 과거의 맥락에서 과거를 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입니다. 또 다시 동일한 예를 사용해보면, '내가 만약 그때의 손흥민 선수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의 '입장바꾸기'를 하기 더 수월할 것입니다. 저런 경기 후 어떤 맥락 속에 놓이게 되는지 직접 경험해본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월드컵' 수준의 압박을 받아본 적은 없을테니 이 또한 한계는 있지만서도요. 아니면 직장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의 리더 역할을 맡았지만 실패해서 화났던 순간은 없었는지 살펴보며 '감정적 이입'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Mothership

중요한 것은 집 소파에 편안히 앉아 '불화아니냐?'는 뉴스기사를 보고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다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로운 '현재 내'가 속해 있는 맥락에서 상황을 보지 않고 90분 넘게 온 힘과 마음을 다 쏟았지만 실패한 직후 그라운드에서 실패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리고 있던 그 당시 손선수의 관점, 즉, 과거 맥락 속에서 그 사건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맥락'에서 벗어나 '과거의 맥락'에서 상황을 보기 시작합니다. 역사가들은 이것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 듯 합니다.


좋은 역사가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것을 피하고 최대한 과거 그 사회의 기준으로 그 사회를 보는 능력이다. (약간의 의역 by 펜메모덕후)

A distinguishing mark of the good historian is the ability to avoid judging past ages by the standards of the present, and to see former societies (to the greatest extent possible) as those societies saw themselves.

J. Salevouris, Michael. The Methods and Skills of History: A Practical Guide (p. 127).


이 말을 미스토리언들에 맞게 살짝 바꿔본다면 아래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미스토리언들은 상상력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최대한 그 당시의 맥락에서 과거를 평가한다.


입장 바꿔보는 상상력

나 자신의 삶을 역사가처럼 대하려는 미스토리언들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이런 '입장 바꿔보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와는 다른 맥락에 있었습니다. 그때 직장에서의 위치, 가정에서의 위치, 또래들 사이에서의 위치가 지금과 달랐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 받았던 압박감이 지금과 달랐을 수 있습니다. 바랐던 목표가 달랐을 수 있습니다. 10년, 20년 전 먼 과거가 아니라도 당장 오늘 아침에 내가 처했던 상황이 오후에 내가 처한 맥락과 다를 수 있습니다. 미스토리언들은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맥락으로 돌아가봐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가적 상상력'을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것을 넘어 타인에 까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위 예시에서는 우리가 최대한 손흥민 선수의 입장이 되어보려했는데 우리 주변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맥락과 함께 쓰는 일기

중요한 장면만 효율적으로 기억해야하기 때문에 '관찰과 기억의 빈곳'이라는 한계는 완벽하게 극복될 수 없지만, 미스토리언들은 일기쓰기라는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맥락에 대한 힌트들을 남길 수 있습니다. 맥락을 고민하기 시작한 이들이라면 점점 더 이에 대해 기록을 하게 되어있으니까요. 간단하게라도 맥락이 고려된 일기는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데 좋은 '역사적 사료'가 되어줍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며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역사가들의 방법을 개인적으로 활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과거의 맥락을 고려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당시 문화나 역사이해, 대중의 가치관 등까지 조사를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미스토리언들은 당시 나 자신의 가치관이나 직장, 가정의 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스토리언들에게는 역사가들처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문헌이 없습니다. 그런 맥락을 담은 일기를 스스로 쓰며 내 삶의 역사적 사료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나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나의 역사를 써줄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전 글 : 자신의 역사는 자신 밖에 쓸 사람이 없다.] 사실 또 그렇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록이니까요.


이런 맥락을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일기를 다시 읽을 때 '입장 바꾸기'가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과거 나의 입장은 내가 속한 집단의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군대문화가 있습니다. 단순히 '이등병 때 또는 병장 때 이런 행동을 했다'라고만 쓰면 그 행동의 무게가 잘 와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행동을 압박하는 군대문화에도 불구하고' 라든지 '그런 군대문화 때문에'라는 식의 간단한 언급만 해도 행동의 무게가 확 다르게 느껴집니다. '입장 바꿔보기'가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군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이나 가정도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기를 쓸 당시에는 그 문화가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생략해버리기 쉽지만, 당연한 것도 써두면 시간이 갈수록 귀한 자료가 됩니다. 나중에 문화가 바뀌었을 때는 '과거의 그런 당연한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역한지 15년 가까이 되었는데 지금은 군대문화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의 두 아들이 10년 쯤 뒤에 가게될 군대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지도요. 좋은 방향의 건강한 군대문화가 더 많이 정착해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맥락편은 여기서 일단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역사적 사고방식 중 '다중 인과관계 Multiple Causality'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미스토리언들은 현재 내 삶의 맥락을 기록하고 과거의 맥락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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