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토리언 Mistorian 의 탄생
[지난 글]
역사와 일기를 잇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역사학적 사고방식 Historical thinkikng'으로 과거를 이해하고 해석한다고 합니다. 역사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단순한 팩트 나열 이상의 것을 해야한다는 의미이겠죠. 일기를 쓰고 읽는데도 이 사고방식을 적용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이후 역사방법론 쪽의 책들을 더 찾아봤습니다. 그러면서 '역사학적 사고방식'이란 단어를 접했습니다. 예전에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떠오르면 일종의 '역사학적 상상력'같은 내용인 것 같아 좀 더 읽어봤습니다. 보니까 이걸 3가지로 분류하는 책도 있고 5가지로 분류하는 책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Why Study History?]란 책에서 '5c'로 소개하는 부분이 이니셜로 되어 있어 기억하기 좋더군요. 역사학적 사고방식의 5가지 요소, 특징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역사학적 사고방식의 3요소]
2. Context 맥락
3. Multiple Causality 다중 인과관계
오늘은 먼저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 하나는 시간일 것입니다. 현재의 경험이라는 단면 아래로 길게 뻗어있는 시간의 축을 보는 이들이 역사가들입니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높고 낮은 건물들, 차가 다니기 좋게 만들어진 도로들…무엇하나 ‘그냥 거기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수면 아래로 저마다의 장대한 이야기를 살다가 거리라는 수면 위로 반짝 보여진 것 뿐이며 도로와 건물들은 만들어지기 까지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된 역사가 있습니다. 즉, 시간의 축에 대한 눈을 가지게 되면 이 모든 문명이 여기까지 오기 위해 걸어온 시간, 즉, 변화의 과정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역사가들은 변화의 과정에 예민하다고 합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로 과정 탐색을 생략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보는 사람들입니다. 그 과정 중 잘한 것, 못한 것, ‘우연’이었던 것 등을 총망라해 보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를 낳은 과거를 읽는 이들입니다. 어떤 과거가 어떤 현재를 만드는지 이해하고나면 어떤 현재가 어떤 미래를 만드는지도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결국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변화를 지향하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역사가들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우리도 역사가들처럼 과거 시간축으로 시선을 돌릴 때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주로 큰 문제가 터졌을 때입니다. 큰 피해가 발생했고 책임 소재를 찾아내야 할 때는 정말 누구든지 냉철한 역사가가 됩니다. 또는 현재의 삶에 큰 불만족이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삶을 돌아보며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친구나 멘토, 유명한 강사의 이야기도 알아봅니다. 그래서 내 삶과 비교해보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불규칙적 임시직' 역사가들입니다. 이에 비해 인류사회의 역사가들은 ‘규칙적 고정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임시직’ 역사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고정직' 역사가처럼 살펴보는 사람들을 미스토리언 Mistorian 이라고 불러볼까 합니다. Me(나) + Historian(역사가)라는 합성어로 아직 입에 안붙지만 제가 고민해본 나름의 명칭입니다. 주로 인생의 후반부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대중에 공개하는 '자서전' 쓰기나 일상의 에세이를 쓰는 것과는 다소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임을 표현해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토리언은 역사학적 사고방식으로 일상에 접근하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성장하는 개인을 말합니다. 일상을 기록하는 활동이 포함되기 때문에 자서전이나 에세이를 쓰는데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을 평소에 비축하는 이들일 수는 있겠지만 자서전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이 주 목표인 사람은 아닙니다. 좀 더 자기개발적인, 자기성장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학적 사고방식의 첫번째 주제와 연관짓는다면, 미스토리언들은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매일 과정과 결과를 맛보는 것의 연속입니다. 오늘의 나란 여태까지의 결과이고 오늘 만들어갈 나 자신은 또 다른 결과를 위한 과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새로운 과정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과정이 있다면 이를 반복하면 좋을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결과를 낸 과정이라면 피해야하겠죠. 간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밑에서 살펴볼 것처럼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분명 지난번에는 좋은 결과가 나왔던 사업전략을 이번에는 더 준비해서 펼쳤는데도 미적찌근한, 애매한 결과물이 튀어나옵니다. 아니, 심지어 나쁜 결과를 만나기도 합니다. 이유가 뭔지는 과정을 들여다봐야 압니다. 누군가의 잘못일수도 있고 시장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지난번에 잘됐던 것은 그냥 ‘운’이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해서 무작정 좋은 과정을 내다버려서는 안됩니다. 되려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하죠. 하지만 대체 무엇이 결과를 망친 ‘진짜 원인‘이었는지를 잘 파악하는 이런 판단력을 기르려면 우선은 적어도 다시 과정을 되짚어보려는 의지가 필요할 것입니다. 조용한 장소에서 머리속으로 기억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충분할 때도 있지만, 일기 등을 통해 기록하며 돌이켜보는 것은 좀 더 ‘역사가처럼’ 나 자신의 기억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내 인생의 역사적 사료를 만드는 작업이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지금 함께 살펴보고 있는 이 ‘역사학적 사고방식들’로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글에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미스토리언들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과정 돌아보기’를 꾸준히 하게 된다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스토리언의 기록 습관은 성찰의 태도를 의도적으로 정착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성찰의 태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판단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효율을 위해 잊혀져버린 과정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어줍니다.
'야, 그건 안돼. 내가 다 해봤어.' 라는 말이 스스로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게 정말 그런가?'하고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야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경위, 즉, 과정을 세세하게 살펴보게 됩니다. 바쁘거나 큰 관심을 주지 않아서 과정과 결과를 다시 한번 성찰하지 못하고 후딱 넘어가버릴 때 그런 무의식적인 판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일기 쓰는 습관이라도 없으면, 과거의 과정을 의도적으로 다시 떠올려볼 일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일단 일기쓰는게 습관이 되면 기록할 때 무조건 한번은 과거를 성찰해보게 됩니다. 만약 여기에 일기를 다시 읽는 습관까지 만든다면 몇번이고 다시금 ‘선명하게’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쓸모가 좋습니다.
그렇게 과거를 다시 떠올린다는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머리 속에서 과거의 장면들을 다시금 재구성해보는, 나름 '상상력'을 쓰는 일입니다. 근육도 안쓰다가 쓰면 쥐가 나듯이 이것도 자주자주 안하다가 갑자기 해야하면 어버버할 때가 있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위기의 상황에서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는 법입니다. 미스토리언들은 급할 때 곧바로 ‘과거 재구성의 뇌근육’을 제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겠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일기를 쓸 때를 제외하고 낮 시간 동안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을 잘 살펴보면 그렇게 순식간에 판단해야할 때가 꽤 많습니다. 특히 바쁘게 일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더 그렇죠.
흥미로운 점은 과정을 다시 떠올리는 일을 하다보면 관찰에도 더 예민해진다는 것입니다. 기록을 하며 있었던 일을 시간순서대로 떠올리다보면 ’그림에서 빠진 부분들‘이 점점 더 보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빠진 부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관찰의 눈을 더 뜨게 됩니다. 즉, 과거 과정을 계속해서 ’다시 재생‘하다보니 현재 진행 중인 과정에 더 예민해지게 되는 것이죠. 이 부분은 따로 또 언급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스토리언들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상에 시간축을 더해 자신과 주변을 입체적으로 알아가려는 이들입니다. 이 시간축은 과거로도 뻗어있고 미래로도 뻗어있어서 현재를 다채롭게 바라보도록 도와주고 미래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순간적으로 드러난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을 단편적으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함부러 확정적인 예측을 하지 않게 해줍니다. 더불어 예측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도록 노력하게 해주고 만일의 사태에는 대비하도록 부추겨줍니다.
다음글에서는 두번째 특징인 맥락을 살펴보겠습니다.
미스토리언의 사고방식 1번.
미스토리언은 과정을 의식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