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이미 역사가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역사가가 된다.

사실, 학생일 때 역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한참 지나서 입니다. 일기를 쓰는게 즐거웠고 때론 일기를 쓰는게 생존이기도 했습니다. 어디든 뱉어내야 할 쓴 감정들이 있었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기는 저에게 보물 중 하나가 되었죠.


a4 1000페이지가 넘어버린 15년간의 일기.


사회역사와는 다르게 일기는 매우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 자신의 이야기, 경험을 기록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일기를 계속 쓰다보면 역사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사회'라고 부르는 거인이 자신에 관해 쓴 '거대한 일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역사가들은 사회 속 여러 사람들의 주장을 골고루 평가하여 기록할 것을 선택함으로서 이 '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란 '사회'라고 부르는 거인이 자신이 관해 쓴 '거대한 일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는 개인의 역사에서 더 큰 사회의 역사로 관심이 전이되기 쉬운 점이 일기쓰기의 여러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때 대학교 졸업 후 덮어버린 역사책에 다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내 관심이 꺼저버리곤 했는데, 관심사 밖의 수많은 연대별 사건들이 열정의 불을 식혀버렸습니다. 당시에 워낙 직장에서 할일이 많았다보니 폭포같이 쏟아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실들에 머리를 두드려맞기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다시금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해준 책이 중고서점에서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에드워드 카의 '역사라 무엇인가'란 책입니다. 공감갔던 문장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 영국, 미국 등에서는 무미건조한 사실의 역사와 사실의 바다 속에 흔적도 없이 침몰해 버릴 하찮은 사실들을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사이비 역사가들의 세밀하고 전문적인 연구 논문들이 엄청나게 양산되었습니다.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무미건조한 사실의 역사와 사실의 바다'란 부분이 무척 와닿았습니다. '내가 역사 시간에 흥미를 잃어버린 이유가 있었다구!'라며 합리화가 꿈틀거리긴 합니다만, 제가 접한 책들이 정말 그런 부류였는지 확신하진 못하겠습니다. 제가 암기에 약하다는 점이 흥미를 식히는데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어쨌건 이 문장으로 인해 '다시 한번 역사책들을 찾봐야겠다' 라는 동기가 살짝 살아나긴 했습니다. 아직도 못읽고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도서 [한국근현대사]도 떠올랐습니다.


혹시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추천합니다. 뭐랄까요. 읽다보면, '아니, 이거 우리 자신 역사에 대한 것이기도 한데?'란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에드워드 카의 박식한 역사 예시들이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만, 예시여서 좀 넘겨 가며 읽어도 큰 주제를 이해하는데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제가 내린 결론은 태어나면서 부터 우리 모두는 자신에 대한 역사가이며 서로 간의 차이점은 '어떤' 역사가인가 뿐이란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바로 일기죠. 다른 이들은 기록하지 않고 그냥 기억 속에 보관합니다. 어떤 이들은 과거를 최소한으로 활용하고 또 다른 이들은 최대한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에드워드 카가 말한대로 우리는 모두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결국 ‘그래서 미래를 위해 내가 현재 해야할 건 뭐야?’란 식으로 자주 끝맺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아주 아기 일 때부터 과거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걷는 방법, 부모님의 야단을 피하는 법,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 등 기록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과거에서 배워 현실에 적용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회역사가들이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다만 우리 개인역사가들은 역사적 사건을 1인칭 시점으로 직접 경험하고 기록하는 일도 한다는 점입니다. 역사가들은 오랜 과거의 사건에 대해 사료 등을 모아 사건의 중요도를 평가한 뒤 이야기로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미 역사가라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는 어떤 역사가가 될 것인가에 관한 것 뿐입니다. 먼저는 기록하는 역사가가 될지, 기억하는 역사가가 될지 아니면 그냥 잊어버리는 역사가가 될지 말입니다. 성실성의 측면에서는 엉성한 역사가가 될지, 꼼꼼한 역사가가 될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며 진정성의 측면에서는 솔직한 역사가가 될지 아니면 역사 왜곡자가 될지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역사가이며, 역사가로서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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