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역사가가 될지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지난 글에서는 우리가 이미 자기 삶의 역사가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어떤 역사가가 될 것인가에 관한 것 뿐임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오늘은 그렇다면 어떤 역사가가 될 것인가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일단은 기록하는 역사가임을 전제하겠습니다.)
‘역사의 역사’란 책에 보면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단계처럼 나열되어 있지만 사실 좋은 역사가가 되기 위한 3가지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단계가 아닌 요소로 목록화 하고 '사회역사'에서 '개인 삶의 역사'라는 스케일로 조절해보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성실한 역사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실한 역사가'에 대한 정의를 '사회'가 아닌 '개인의 삶'으로 바꿔봤습니다.
내 삶에서 일어난 일들의 사실들을 수집해 그것이 실제로 사실인지 검증하며 기록한다.
저 같은 경우 시간관리를 위해 오늘 하루 시간대별로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요한 일이라면 위 문장처럼 ‘실제로 사실인지 검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봐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일 뿐이지만요!) 위 문장에서 말하는 '성실한 역사가'로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돌아보면 자기성찰도 할 수 있고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대화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어 다음에 이야기할 때 참고하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황들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평온한 일상은 약간 관심만으로도 쉽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만 갈등 상황, 성공과 실패가 걸린 상황, 자존심이 걸린 상황 또는 바쁜 상황에서는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갑자기 어려워집니다. 감정과 욕망이 솟구칠 때는 지성이 흔들리고 인지가 굴절됩니다.
어떤 강렬한 감정이 마음을 급하게 만들면 팩트를 정확히 파악했는지 살피지 않고 사실에 대한 나의 해석, 추측이 먼저 달려나옵니다. 뉴스 기사 댓글에보면 내용을 읽지 않고 분노나 비난을 쏟아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기사에서 이미 반박된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누군가가 ‘뉴스 읽고 말하는거냐’라고 핀잔을 주죠. 일상에서도 일어나기도 하는 일입니다. '너 내 말은 듣고 하는 말이니?' 라는 말이 어디서 들리면 아마도 이런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정이 치솟는 상황에서 팩트를 먼저 보려고하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지속적으로 훈련해야하는 부분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어제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심지어 무엇을 관찰할 것인지 결정하는 첫 단계부터 우리는 이 강력한 마음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쉬운 예로 ‘사랑에 씌이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주위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실시간으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며 시야적 제한도 있죠.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지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놓치는 사실이나 부정확한 기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적 한계로 놓치는 기록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선별적인 관찰 및 기록’에 대해서는 개입이 가능합니다. 일기 쓰고 난 뒤 다시 읽어보시면 은연 중에 내가 기록할 사실들을 ‘선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는 저는 어떤 사실은 무시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실은 선택해서 기록합니다. 이때 선택의 기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 걸까에 대해 고민해보면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카도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선별작업’의 필요성을 ‘무지’란 단어로 강조합니다.
무지는 역사가들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건이다. 왜냐하면 무지는 모든 사실들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며, 또한 선택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저같은 맥시멀리스트들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릴 수 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CCTV로 녹화하면 그것이야 말로 완벽한 역사의 완성 아닐까’ 라는 식으로 반박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대체 그런 역사 영상을 누가 볼까요? ‘필요한 장면’만 보고 싶지 수십억명의 인생의 온갖 사소한 일들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역사 교양책을 읽다가 이에 딱 맞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일 뿐 역사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 영상을 보고 인류에게, 국가에게, 집단에게, 개인에게 중요한 이야기들을 ‘선별’해야합니다. 이 이야기에 필요한 장면들만 붙여서 이야기로 ‘편집’해야합니다. 즉, 과거를 역사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좀 더 쉬운 예로는 스포츠 경기 중에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선수들의 모든 행동은 여러개의 비디오로 경기 시간 동안 계속 촬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독요청이 들어오면 고작 5초 정도의, 논란의 장면만 잘라내어 보여줍니다. 나머지 장면은 적어도 ‘이 때’만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선수들의 활약 정리’라는 목적이라면 이 ‘논란판정’이란 목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장면들이 ‘선별’될 것입니다. 선수들의 패스횟수, 슛 횟수, 어시스트 횟수 등을 보여주는 더 다양한 장면들이 전체 영상본에서 선별되고 편집될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에 따라 ‘중요한’ 장면들만이 우리 기억 또는 기록에만 남는 것입니다.
역사가들 또한 수많은 역사적 사료에서 의미있는 사실들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사회에 유익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성실한 역사가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초단위로 모든 행동을 수집하게 되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실들만을 모아 잘 편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생 역사를 위해 누군가가 ‘사료수집’을 해주지는 않습니다(위 예시로 치면 경기 전체를 촬영하는 행동).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사료수집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삶의 역사가이면서도 ‘사실 수집가‘의 역할도 겸해야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는 카메라 처럼 일분 일초를 모두 관찰하고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한계를 의식하면서도 최대한 정확하게, 하지만 선별 및 요약하여 일상을 기록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성실한 역사가로 성장하는데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계속해나가야하는 ‘기본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기본이야 말로 꾸준히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저는 ‘성실한 역사가’가 1단계로서 ‘통과’하고 나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요소’로 정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지속적으로 의식해야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를 바랐습니다.
저의 경우를 다시 언급하자면, 저는 시간관리를 위해 하루 있었던 일들을 시간대별로 요약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이것이 일상적인 사료수집 작업입니다. 그러다가 큰 일(?)이 터지면 그 일은 따로 기록을 합니다. 역사가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죠. 그리고 이 때 활용하는 것이 '이야기 맥박 그래프'입니다. [이전 글 : 나만의 역사를 그래프로-이야기 맥박 그래프]
중요한 이야기를 따로 쓰기는 하지만 평소 기록하던 일상에서 완전히 떼어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일상 기록 때문에 중요한 사건의 전후에 있었던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후 맥락 속에서 특별한 사건을 보게 되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예로 다툼 후에 나의 잘못인지, 상대방의 잘못인지 혼동스러워 하며 후회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렇게 감정에 휩싸이면 그 순간의 상황에만 깊이 몰입을 하게 됩니다. 머리속에 일종의 '연극무대'가 세워지게 되고 거기엔 나와 상대방 밖에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다툼의 원인이 오직 상대방 아니면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문제에만 집중하게 되는 '터널 비전'하고도 비슷해보입니다.
하지만 일기를 보니 전날 수면 시간이 평소보다 짧았고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한 뒤 실수로 빠뜨린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었던 겁니다. 즉,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연극무대'위에 또 다른 원인, 또 다른 인물, 또 다른 환경이 등장하게 됩니다. 나에게도 이렇다면 상대방에게도 이런저런 상황이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확장됩니다.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죠. 배경 장소는 1곳, 등장인물은 2명, 러닝타임도 10분정도 밖에 안되는 짧은 이야기가 아닌 프리퀄도 있고 장소도 다양해지며 시간도 몇시간으로 더 늘어난, 약간은 더 굵직한 이야기로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 예시의 경우에는 '내가 쉽게 짜증, 부정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어쨌거나 이 사건에 한몫 했다고 조심스럽게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멈춰버리면 그냥 내가 자기관리를 안해서 생긴 일로 치부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실제로 상대방과 나 사이에서 어떤 말과 행동이 오갔는지를 천천히 기록하며 성찰해봐야 결정적인 원인 및 부차적인 원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어느 누군가의 100% 잘못일 때보다는 환경, 나, 상대방의 잘못이 애매하게 배분되어 있을 때 고민이 더 깊어지더라구요. 말그대로 복잡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럴 때도 성실한 역사가의 기록습관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사실 기록에서 기록의 편집으로, 그리고 기록에서 의미를 건져올려 나 자신이 성장하고 변화한다면, 그리고 그 경험을 가지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의 역사가로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에는 다른 두가지 요소인 사건 인과관계 파악과 의미 건져올리기를 살펴볼까합니다.
[그래프 일기장 양식을 나눠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