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역사를 그래프로 [이야기 맥박 그래프]

나의 경험 착즙 도구

지난 글에서 일기를 쓰면서 경험에서 교훈을 쥐어짜낸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경험 착즙기로서의 일기 쓰기]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저는 어떤 방식으로 경험을 파고드는지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그래프 양식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양식 없이 그냥 종이노트에도 매우 쉽게 바로 그릴 수도 있습니다.)


일기는 딱히 정해진 방식은 없지만 그래프로 있었던 일들을 그려보니 다시 읽을 때 상황이 한눈에 들어와서 보기 좋더라구요. 시간 순서대로 좋았던 일, 안좋았던 일을 그래프로 그리는 방식입니다. 심리상담 등에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라이프 그래프'란 이름의 도구가 있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스크린샷 2022-09-21 오전 11.05.47.png 출처 : Counselling Tools – Life Graph by REBECCA MORRELL


이 그래프를 접했을 때 왜 범위가 ‘인생 전체’여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긴박했던 30분이든 이든, 특별한 행사에 참여한 3시간이든, 오늘이든,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십년이든 상관없이 원하는 기간에 대한 그래프를 그리는 것도 가능해보였습니다. 딱 1개의 그래프로 어떤 범위의 기간이든 커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에서 인생 전반을 뜻하는 '라이프'를 빼고 떠 짧은 기간도 의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그래프가 일렁이는 것이 꼭 맥박 같아서 '맥박'이란 단어도 좋겠다 판단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맥박이 뛰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딱 맞다 싶어 '이야기 맥박 그래프' Story Pulse Graph 라고 이름을 바꿔봤습니다.


스펄그예시1.jpg 실제 저희 첫째 아이가 6살때 다쳤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계선'을 추가했습니다. (+) 방향의 한계선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일들, 최고!', '매우매우 좋은 일들'을 뜻하고 (-)의 한계선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 좋았던 일, 최악!'을 의미합니다. 양극단이죠. 이건 선택사항입니다.


스펄그예시1.jpg


그래프는 직관적이고 여백도 군데군데 있어 한눈에 상황파악하기가 좋습니다. 그리기 간단해서 점 격자 또는 일반 격자 양식의 노트면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태블릿의 디지털 노트를 쓰시는 분들을 위해 파일을 남겨드립니다. (그림파일 및 PDF)


스펄그 그래프.png


이야기 맥박 그래프 그리기

제일 처음 점을 어디에 찍을지 조금 애매할 수 있는데, 중간 선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입니다. 얼만큼 여기서 떨어진 곳에 점을 찍어야 '약간 좋음'인가? 는 각자 편하신대로 정하면 됩니다. 일단 처음 점을 몇개 찍으시면 자연스럽게 상대평가가 되면서 아래 점들을 찍으실 수 있습니다.


45FAEF83-61F3-4094-AB84-DA2E975E67B7_1_102_a.jpeg 아주 간단하게 그린 이야기 맥박 그래프 예시. 펜은 카웨코 브라스 만년필 B촉입니다. 황동이라 냄새가 좀 나지만...묵직하고 사각사각 느낌이 좋네요.


수학처럼 그래프가 딱 정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기록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 순서가 맞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정확하게 시간까지 기록하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중앙선에 눈금을 그리시면 됩니다. 시간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이구요. 그런데 이런 저런 디테일이 추가되기 시작하면 그래프 그리는게 조금식 힘들어집니다. 처음엔 그냥 편하게 하시는게 최곱니다.


점 격자 또는 그냥 격자 양식의 종이노트라면 처음엔 선 2개만 그어도 바로 그릴 수 있습니다. 한계선 그리기는 나중에 익숙해진 다음에 그려도 됩니다. 최대한 편하게 시작하는 것이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 일기를 쓰는 것으로 먼저 시작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상, 출근, 업무, 퇴근 등 일상적인 일들부터 그래프로 그려보면 됩니다. 예로, '정시에 기상함'을 이야기의 시작으로 정했다고 합시다. 누군가에겐 '정시 기상'이 (+)에 있어야 할 일입니다. 저희 집 1호(초2)는 가끔 꿈을 꾸고 매우 심하게 울면서 깨기도 하는데, 어제 그런 일이 있어서요. 2호(6살)도 가끔 영상보겠다고 떼를 쓰기도 하구요. 오늘은 평안한(?) 아침이어서 (+)에 점이 찍혔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아침은 누군가에겐 매우 당연한 일이어서 중앙선(0점)에 표시 될 겁니다. 꼭 다른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매일 정시 기상이 습관이 된다면 점점 더 중앙선으로 점이 찍히게 됩니다. 소위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중앙선에 있기 마련입니다.


4755BF3A-CD13-43C6-BA70-4900A5094806_1_105_c.jpeg 이렇게 나란히 두고 정리합니다. 위 사진 속 그래프는 예시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이렇게 곧바로 그래프를 그릴 수 있지만 메모를 보면서 좀 더 정교하게, 선별해서 그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낮에 일할 동안에는 먼저 캘린더 앱에 메모를 남깁니다. 폰이 항상 손에 있다보니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상황 직후에) 언제든 빠르게 메모를 남길 수 있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저녁에 시간이 나면 폰과 노트를 나란히 두고 메모를 보며 그래프를 그립니다. 예전에는 그래프 일기를 매일 썼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좀 더 중요한 이야기인 경우나 고민해보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만 그래프 일기를 남깁니다. 파고 들어서 즙을 짜내고 싶은 경험을 선별하는 것이죠. [경험 착즙기로서의 일기 쓰기]


모든 그래프에는 제목이 붙입니다. 제목 쓰는게 조금 귀찮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 제목들을 목록으로 잘 정리해놓으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정말 편합니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면 SNS처럼 해쉬태그로 키워드 몇개를 써놓는 것으로 대신해도 됩니다.


IMG_2864.JPG 날짜, 제목, 페이지는 필수로 써주시는게 좋습니다. (참고로 오른쪽 밑에 날짜는 앱 컨셉(1998 필름)입니다.)


그래프 목록표 만들기

제목 목록표는 뒷장부터 거꾸로 작성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습니다. 종이노트마다 페이지 수가 다르고 어떤 그래프에는 코멘트를 할 것이 많아서 노트 1권에 총 몇개의 에피소드를 그릴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목록표를 뒷장부터 작성하면 몇개 그릴 수 있는지 미리 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디지털 노트를 쓰시는 분들은 해당되지 않지만요.


목록은 선택사항입니다만 일기 다시 읽기를 위해 정말 추천하는 작업입니다. 일일이 긴 글을 읽어보며 '무슨 일이었더라?'를 파악하려면 4-5권이 넘어가는 일기장 다시 읽기에 저항이 생겨버립니다. 목록은 이런 저항을 돌파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과거 책 고르는 법을 배울 때 '책 목록을 먼저 읽어보라'는 조언이 도움이 되었는데 목록의 힘을 보여주는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목록이 쌓이다 보면 1년, 3년, 5년 간의 요약 그래프도 그릴 수 있습니다. 이걸 위해서 별표를 해놓는 것이 유용합니다.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골라내기 좋고 일일이 선택할지 말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어서 좋습니다. 좀 더 긴 기간동안의 역사 그래프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죠. 목록표의 쓸모입니다.


목록표를 그림파일과 PDF로 공유해봅니다. 여러분만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즐거움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펜메모덕후 목록표.png




[펜메모덕후의 일기 글들]

- 여러분만의 보물 같은 기록이 있나요?

-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눈이라도 떠보기

- 나의 역사는 지문처럼 유일하다

- 자신의 역사는 자신 밖에 쓸 사람이 없다

- 경험 착즙기로서의 일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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