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착즙기로서의 일기 쓰기.

경험 꼭꼭 씹어먹기


일기를 쓰시는 지요?

쓰신다면 일기에 무엇을 쓰는지요?


감사일기, 운동일기 등 다양한 일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기란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매일 무언가를 경험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하루하루 쓸 꺼리가 생깁니다. 물론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될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뭔가 기록해보겠다 싶으면 똑같아 보이는 하루'들'도 각각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기를 굳이 안써도 우리는 기억속에 나름의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딱히 애쓰지 않아도 우리 뇌는 수많은 정보들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다만,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로 한번 기억을 되짚어보면 사건의 순서가 엉킨 것이나 누락된 행동과 말들이 발견되곤 하죠.


기억속에만 경험을 놔두면 빨리 잊기도 합니다. 지난 일주일 간 있었던 일을 차례대로 한번 떠올려보세요. 생각보다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들 조차도 모든 부분이 떠오르진 않습니다. 한마디로 경험을 꼭꼭 씹지 않고 넘어갈 정도로만 대충 씹어 삼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쁠 때 겪은 일들은 급하게 삼켜버린 경험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키면 소화가 잘 되지 않죠. 체하거나 소화시키는데 애를 먹습니다. '경험으로 부터 배운 것을 써먹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기를 기록해두면 경험의 면면을 요리조리 뜯고 씹어 즙을 짜내기 좋습니다. 즙은 소화가 잘 되서 쉽게 흡수됩니다. 글로 쓴 일기는 천천히 생각해보며 문장 마다 밑줄을 긋고 코멘트를 달 수 있는데 이게 씹고 뜯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 내가 이때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등 지나간 과거의 어느 특정 한 순간으로 돌아가 숙고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건들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일들도 짧게나마 기록합니다. '대체 그때 내 일상이 어땠길래 그런 감정을 겪고, 이런 사건에 이렇게 반응했을까'란 사건 배경에 관해 알고 싶을 때 당시의 일상이 궁금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이유말고도 일상기록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일종의 여행의 가치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장은 지금의 일상이 너무 당연해보여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어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일상이 어느센가 또 다른 당연한 일상으로 바뀌어있기 때문이죠. 여행은 낯선 곳으로 가는 즐거움입니다. 구체적인 일상 일기를 통해 '40대의 나'가 지금은 다소 낯설어보이는 '20대의 나'로 돌아가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시들어버린 열정이나 초심을 되찾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다시 줍기도 하구요.


일기를 '경험의 즙을 짜는 것'으로 비유해서 제목을 정해봤는데, 여기서 '즙'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안했네요. 일기를 쓰고 다시 읽다가 결국에 다다르는 결론을 말합니다. '교훈'일수도 있고 '감사' 일수도 있습니다. '감동'이나 '위로'도 있네요. 물론 이렇게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후회'나 '분노', '불안',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것에 다다르기도 하지만 쓰다보면 자연스레 '다음 부턴 이것들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 등의 '다짐'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마치 밭에서 다양한 과실이 열리듯 우리네 인생 밭에는 날마다 다양한 경험의 열매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굳이 기록하지 않더라도 우리 뇌가 삼킬 수 있을 만큼은 대충 씹어 삼켜도 영양분을 얻을 수 있지만 일기라는 맷돌로 잘 갈아마시면 좀 더 빠르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맷돌에 갈기 전에 한번 살피기도 하니까 불순물은 가려낼수도 있구요. 일기장이란 병에 넣어 보관해서 나중에 다시 마실 수도 있습니다.


마치 밭에서 다양한 과실이 열리듯 우리네 인생 밭에는 날마다 다양한 경험의 열매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일기 몇 병 준비해보시는 것 추천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역사는 지문처럼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