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는 지문처럼 유일하다.

나 자신을 선명하게 해주는 일기




대충 보면 손가락은 모두 비슷합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사람만이 가진 유일한 모양, 바로 지문을 볼 수 있습니다. 지문이 얼마나 독특한지, 이걸로 스마트폰 회사들은 ‘열쇠’를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나만의 상징이죠.





사람 인생도 멀리 서서 대충 보면 다들 비슷합니다. [탄생-죽음] 정도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과하긴 합니다만). 하지만 둘 사이에 상당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현미경의 배율을 높일수록 매우 독특한 경로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손가락의 지문처럼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인생의 발자취를 모두가 걸어간다는 점만 동일합니다. 묘한 모순입니다.





좀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자면, 만약 마음이 맞는 친구 1명과 오늘 하루 똑같은 장소에 가고 똑같은 사람과 만나고 똑같은 활동을 하기로 결정한다고 해봅시다. 오늘 하루가 끝날 때 쯤 소감을 이야기해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정말 단순하게 ‘재미 있었어?’ 란 수준의 질문이라면 마음 맞는 친구일수록 비슷한 답이 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미경 배율을 높여 질문하면 다른 답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이런 하루가 매일 쌓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세상에 수십억명의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숨막히는 다양성입니다. 물론 배율 조정을 하면 또 비슷한 삶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끼리 묶을 수도 있겠지만요.




여기 한 가지 변수를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독특한 이야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며 매순간 나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전개가 더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정된 과거’와 ‘고정되지 않은 미래’의 조합이 바로 나만의 역사입니다.



형태없는 모래같은 미래가 현재라는 불 속을 지나가면 과거로 굳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고정된 과거라는 확실성과 고정돠지 않은 미래라는 불확실성을 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문은 여전히 인쇄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무엇을 인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 나 자신의 선택과 이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는 주위 환경입니다. 오늘 내가 한 행동과 생각 그리고 느낀 감정 등이 독특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것마저도 나의 역사로 남겨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탄생은 불가항력적이고 불가역적입니다. 그래서 노스텔지아라는 감정도 존재하는 것이겠죠. [나의 노스텔지아 트리거 : 여름밤 산바람​]





지난 글 [자신의 역사는 자신 밖에 쓸 사람이 없다​]에서 저는 ‘나 자신됨’을 더 선명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자신만의 역사를 일기로 쓰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비공개일기가 좀 더 솔직한 나 자신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시간이란 차원을 더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이란 과거 없이 그냥 현재에 뚝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 됨'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 나 자신이 되기 까지의 다양한 과정을 다시금 짚어보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습관을 예로 들면, 좋은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과거 누군가의 영향력 때문임을 일기를 통해 다시 알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바빠서 정신없이 살다가 (즉, 그 사실 말고도 기억해야할 사실들이 많아져서) '내가 잘 해서 다 해냈다'는 식의 자기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시다. 과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기를 통해 타인의 영향력을 깨닫게 되면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사뭇 겸손해집니다. 즉, 나 자신의 노력과 타인 영향력의 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이 일은 나 자신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일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환경을 좀 더 선명하게 그려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 자신을 그릴 때 백지에 나라는 인물 하나만을 그릴 수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됨은 맥락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말하는 '나 자신됨'이 선명해진다는 것은 MBTI성격유형검사에서 말하는 오롯이 개인 1명에 대해서, 나 자체에 대해서만 알게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 즉, 주위 사람들, 특별한 사건 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내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그 과정 또한 좀 더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일기는 '살아 있는 인생 이야기 속의 나'를 현재라는 단층이 아닌 역사라는 다층의 시간 속에서 보게 해줍니다. 이런 면에서 일기를 통한 자서전적 자기이해는 성격유형적 자기 이해를 포괄하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자기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일기는 '살아 있는 인생 이야기 속의 나'를 현재라는 단층이 아닌 역사라는 다층의 시간 속에서 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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