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대해 어떤 역사가가 될 것인가? (2)

우리는 어떤 역사가가 될지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지난 ]

우리 모두는 이미 역사가이다

내 삶에 대해 어떤 역사가가 될 것인가(1)?


지난 글들을 요약하자면 우리는 모두 이미 자기 삶에 대해 역사가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왕 역사가인 것, 좀 더 좋은 역사가가 되는 것에 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서 참고할 문장으로 [역사의 역사]란 책에서 골라봤습니다.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위대한 역사가는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로 엮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독자의 내면에 인간과 사회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지난 글에서는 성실한 역사가의 요소에 해당하는 '사실 수집'에 관해 생각해봤습니다. 이번에는 뛰어난 역사가에 해당하는 '인과관계 파악'에 대해 알아볼께요.



뛰어난 역사가의 일 : 사건의 인과관계 파악하기

내가 겪은 사건들 사이의 원인-결과 관계를 밝혀내서 내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 내 삶이 변화해온 패턴을 알아낸다.


인과관계 파악? 연구하는거 아니잖아요.

이전 글에서 '사실 수집을 정확히 하자' 정도는 일상 일기에서 약간 더 신경쓰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인과관계 파악'이라니 뭔가 학교에서 조사연구, 과학 관련 수업에서나 들을 법한, 다소 차가운 듯한(졸립기도...) 느낌이라 일상 일기에 적용하기엔 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뭐 굳이...일기쓰는데 거창하게 인과관계 까지 파악을...'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이미 해온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과관계를 아주 집요하게 파악하려고 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퉜을 때를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누구 잘못인지 따지는 상황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역사가가 됩니다(특히 내가 억울한 상황에서는요). 주로 이렇게 상당히 '자극적인' 상황이 있을 때 역사가적 정체성이 수면위로 떠오릅니다.



이런 상황에 맞딱뜨리면 우선 팩트 체크 부터 하기 마련입니다. 이전 글에서 살펴본 '사실수집'이죠. 우선 자신의 기억(또는 기록)을 살피고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의 기억도 물어보며 사실을 검증을 합니다.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실이 충분히 모아졌으면 이제 '인과관계'를 파악합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누구의 책임이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습은 어떻게 할 것인지 최종 결정하게 됩니다. 이후에 이 사건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걸 계기로 다음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까지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이미 '좋은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기록까지 하신다면 그야 말로 '뛰어난 역사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파악(사실기록), 인과관계 파악(과학), 의미 산출(예술) 3박자가 다 맞춰졌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데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 유시민, [역사의 역사]


셀프 티칭 Self-teaching

하지만 다툼과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상 일기는 주로 감정 및 의미와 관련된 글을 쓰는 경우가 잦습니다. 즉, '사실수집' 및 '인과관계 파악'과 관련된 질문은 덜하게 됩니다. 경험의 당사자인 나 자신이 쓰는 일기이다보니 감정을 쏟기 바쁠 때도 많구요. 그리고 그게 뭐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일기야 말로 마음껏 주관적일 수 있는 장소이니까요. '그런 건 일기장에나 써'란 말을 핀잔주는 의도로 언급되는 걸 간간히 들을 수 있는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편한 마음으로 아무것이나 써둘 수 있는 곳이란 말도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그저 감정을 쏟아버리고는 끝나버립니다. 물론 감정의 해소 자체도 가치가 있습니다만 대신 마음껏 쓰고 난 다음에 다시 읽어보면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과거의 나'란 인물 및 함께 엮여있는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읽어보며 영화, 드라마의 리뷰를 작성하듯 소감을 쓰는 것입니다. 원작자에게 '다음엔 좀 다르게 이야기를 전개해보는게 어때요?'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가 원작자이기 때문에 과거 자기 작품을 리뷰하는 것이긴 해서 주관적인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만, 기록으로 기억을 실체화 시켜놓으면 객관성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무래도 기록은 기억처럼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는 것이니까요.


일단 이렇게 기록과 다시 읽기를 반복하다보면 보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됩니다. 인물들 간의 중요한 대사를 놓쳤다는 것을 느끼고 다음에는 어떤 말을 중점적으로 들어야 하며 잊기 전에 기록해보자는 식의 '역사가적 성장'이 조금식 나타납니다. 당시에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잘 이해가지 않았는데 다시 떠올리며 기록을 해보니 문득 깨달아질 때도 생깁니다. '왜?'라는 인과관계적 의문에 답하는 '통찰'이라는 보상을 맛보기 시작하면 기록과 다시 읽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 집니다.



저 같은 경우 뭔가 '찝찝한 마음'일 때 그것이 뭔지 찾기 위해 무조건 떠오르는데로 써봅니다. 희안하게도 그렇게 쓰다보면 찝찝한 구석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연상 작용의 힘인가봅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서 일단 훅 털어내는 느낌도 나서 시원합니다. 물론 꺼내놓고나면 상당히 복잡한 일인 경우도 있지만, 뭔지 모르고 찝찝한 상태에 있는 것보다는 낫더라구요. 일단 글로 보이게 만들어 놓은 다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코멘팅하며 복잡한 인과의 실타래를 풀어나가 보기도 합니다.


좋은 역사가됨의 좋은 점

우리는 항상 역사가로서 살고 있으며 때론 삶의 상황이 우리에게 ‘뛰어난’ 역사가가 되도록 압박하기도 한다는 점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좀 더 좋은 역사가로 살아가서 나쁠 것 없어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쯤 되어 좋은 역사가가 되는 것의 좋은 점을 한번 짚고 넘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기쓰기가 피트니스 센터에서 평소에 스스로 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체중감소가 절실한 상황일 때만 바짝 잠깐 운동하고 위기상황만 지나면 이후엔 안해버리면 꾸준히 신체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지방간이 있는 지라 이런 비유를 쓰기가 좀 부끄럽습니다만, 아무래도 운동은 보편적인 관심사 중 하나인 것 같아서요.



학교 시험은 알려주고 다가오지만 우리 인생의 시련은 미리 공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은 평소의 습관이 평가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직장이든, 가정에서든 우리가 역사가가 되어야 하는 순간, 평소의 기록습관 및 역사가처럼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면 후회할만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뛰어난 삶의 역사가가 된다고 해서 완벽하게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지어 후회되는 상황마저도 기록하며 그것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좋은 판단 재료를 하나 얻는 것임 또한 확실합니다.


위기의 파도가 지난 다음 잔잔한 일상이 돌아오면 위기상황을 되짚어보며 다음 파도가 올 땐 어떻게 대응할지, 나 자신과 환경을 어떻게 정비해둬야 할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저 위기가 올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그저 잊어버리려고만 한다면, 시련으로부터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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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좋은 역사가가 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나의 주위 사람들에게도 유익합니다. 나 자신의 역사를 헤아려보는 습관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헤아려져야 할 역사가 있다는 것에 민감해집니다. 즉, 타인의 말에 경청하는 태도를 증진하는데도 유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정을 제대로 헤아려주지 않는 상사, 후임, 동료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일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구요. 반대의 경우라면 또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직장 같이 험악(?)할 수도 있는 곳에선 나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복 받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좋은 역사가가 된다면 다른 이들에게 '복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좋은 역사가의 요소 중 ‘경험에서 의미와 이야기 만들어내기’를 알아보겠습니다.



[그래프 일기장 양식을 나눠드려요]

나만의 역사를 그래프로 - 이야기 맥박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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