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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간 써온 5,000쪽짜리 비밀일기장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개정판] 들어가는 말

"일기쓰는 즐거움" by ChatGPT4 Image Generator. 챗봇이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가보다. 꽤 마음에 든다.


어쩌다 이렇게나 썼나

글소재를 고민하다 '내가 오랜 시간 해온 것, 잘하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를 살폈다. 그걸 일기를 읽으며 찾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기 쓰기 자체가 그중 하나였다.


22년 간 일기를 써왔다.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다거나 명예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지금이야 일기에 관한 책을 쓰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나 자신이 신기하다. 왜 그랬는지 돌아보며 도출한 결론을 이 책에 담았다.


내 일기장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를 자주 오갔다. 지금은 구글캘린더라는 앱에다가 일기를 쓰고 이후에는 PDF 파일 1개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다. A4용지로 치자면 대략 5,000쪽이 넘고 중요한 사건을 표기한 책갈피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연도별로, 주제별로 책갈피를 분류까지 했다. 내가 봐도 나 자신이 참 대단하다. 시키지 않아도 공을 들이는 취미활동으로서의 가치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일기 쓰기가 유익했고 또 즐겁다 보니 이렇게나 썼다. 그리고 이제는 독자에게 권하기 위해 글을 쓴다.


내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써두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쓰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날 대신해서 써줄 수 없었겠구나, 나의 역사는 오직 나밖에 챙겨줄 사람이 없구나란 점이다. 나라의 일기장인 역사책이야 증언하고 기록하고 검증할 사람이 많지만 내 역사에 누가 신경 써주겠는가. 역사가들은 사회 각 영역에 쌓여있는 각종 역사적 사료를 선별하고 수집해서 평가하고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각 영역의 전문가들, 특히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매일 그런 역사적 사료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역사를 대신 써줄 사람은 없다.


내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거창한 구호 없이도 우리는 이미 역사가이자 기록자이기는 하다. 다들 기억 속에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도 하고 블로그나 SNS에 업로드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모두 기록가이자 역사가의 일이다. 여기에 일기라는 기록을 꾸준히 더하기 시작하면 성실한 역사가, 탁월한 역사가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일 뿐이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

최근 부작용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블로그나 SNS의 장점 중 하나라면 공개일기를 쓰도록 자극해 준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위인들만 자전적 이야기를 내놓는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이 무한한 이야기의 진열장에서 비밀일기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기는 쉽지 않다. 말 그대로 비공개이기 때문에 어디다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비밀일기를 책으로 권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일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플래너의 할 일이나 일정기록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일기의 사전적 정의인 '매일의 경험에 대한 기록'에 부합하는 것들만 이야기해보고 싶다. 불렛저널, 프랭클린 플래너, 끝도 없는 일 해내기 Getting Things Done 등 탁월한 자기 관리 방법론들은 이미 많으니까. 말하자면 내 인생경험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

이미 발행한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 브런치북을 개정하는 형식으로 이 매거진을 채우고 나중에는 POD 책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브런치북 버전과 마찬가지로 상편과 하편 그리고 별첨으로 나눌 예정이다. 상편에서는 '일기가 좋았던 이유들'에 대해서 쓰고 하편에서는 '일기를 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돌이켜볼 때 내 일기장을 가장 많이 채운 것은 응어리진 속마음들이다.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공개일기와 비교해 볼 때 비밀일기의 가장 차별화된 장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속앓이를 언제 어느 때고 막 털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상편은 '비밀일기에는 속앓이를 막 털어놓을 수 있다(가칭)'로 시작한다. 이외에도 사회적 가면을 벗어두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기록공간이라는 점,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기록이란 점 등 내가 경험한 비밀일기만의 장점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하편에서는 일기 쓰기의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할 것이다. 22년 간 종이노트와 앱, 문서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록도구를 사용해 왔다. 만년필, 기계식 키보드 등 내가 사랑하는 기록도구들로 일기를 어떤 방식으로 써나가는지 구체적으로 알리고 싶다. 나름의 일기 쓰기 원칙과 팁들도 있다. 별첨에서는 일기가 무시당할 때의 대응, 인공지능 챗봇과 일기의 미래에 대해 써볼 것이다.


일기를 쓰는 즐거움

드러내는 글쓰기가 범람하는 시대에 나는 몰래 쓰는 일기를 추천하고 싶다. '인스타 각' Instagramable 이란 신조어에서도 알 수 있듯 인스타그램에, 유튜브에 내놓을만한 이야기만 포착되고 기록되는 시대에 나름의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밀일기 쓰기도 꽤 즐겁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내 경험을 되새김질 할 때 때론 향긋하고 또 때로는 건강에 좋은 즙을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지난 에피소드'를 잘 알수록 '오늘 에피소드'를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은가.


비밀일기는 잘 편집되고 가공된 이야기들과는 또 다른, 날것의 매력이 있다. 요즘 리얼리티 예능이 날것이라고 하지만 비밀일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인스타 각'이 나오는 이야기들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쓰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내 경험을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하면 된다. 꾸준히, 오래 쓸수록 더 좋다. 와인이 숙성될수록 가치가 올라가듯 일기도 그렇다. 이 책이 비밀일기의 이런 즐거움과 가치를 오롯이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무척 공감했던, 일기 쓰기 50년 차 되시는 일기 선배님의 문장으로 들어가는 말을 끝내고 싶다.


"'일기'라는 말만 들어도, 글자만 봐도 나는 가슴이 떨린다."

이경혜,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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