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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경험으로 열을 배우게 해주는 비밀일기장 1

[일기에 진심인 편입니다-개정판] 2장 1부

"경험에서 배우고 희망으로 나아가다" by ChatGPT4 Image Generator


일기는 훌륭한 인생 자습이라 할 수 있다.

이태준, <문장강화>


경험에서 배운다고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해도 누군가는 더 잘 배운다. 왜일까. 우선은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탁월한 선생의 열정적인 수업도 쓸모없는 법이니 그럴만하다. 두 번째로는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학습 효과, 효율이 나지 않을 때일 것이다. 첫 번째 경우보다는 낫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다 보면 도움 받아서 차차 나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기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과 비슷하다. 배우려는 의지가 생긴 학생들을 보면 하나같이 필기를 한다. 수업의 핵심을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녹여낸다. 나중에 다시 읽고 복습도 할 수 있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인생이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일기라는 필기노트를 꺼내 들면 경험이란 선생에게서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 


특히 비밀일기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구석구석 탐구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의 온갖 실패를 블로그나 SNS에 모두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성공의 경험을 매번 업로드하다가는 자랑질한다고 핀잔받을지도 모른다. 비밀일기장이 낫다. 


성공과 실패를 기록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요즘 흔히 듣는 '월 천만 원' 벌게 되는 성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크고 작은 성공을 모두 포함한다. 극단적으로 작은 성공의 예를 들자면, 별 탈 없이 출근하는데 '성공'했는가란 식이다.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싸울 때 '성공'적으로 화해시키는 일이 꽤 의미 있다. 저녁 채식으로 체중감량과 정서적 안정을 얻는데 '성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때로 설레게 만드는 큰 성공은 말할 것도 없이 기록대상이다. 대단한 목표가 아닌 별 탈 없는 하루 보내기라는 소박한 목표도 작은 성공들이 모여야 이뤄낼 수 있다. 작은 성공들을 기록하고 되새김질해서 다음에도 반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록할만한 성공은 우리 일상에 항상 존재한다. 


실패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다만 반복이 아니라 끊어내는 것을 목표로 기록하고 성찰한다. 일상의 작은 실패들이 쌓여서 큰 실패를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에 평소에 잘 점검해둬야 한다. 예로 말실수 같은 것이 있다. 말실수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 같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절제를 훈련해 두는 것이 좋다. 


기분이 좋을 때, 그러니까 뭐든지 말해도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 말하는 것을 잘 살펴야 한다. 참 중요하다. 이럴 때 말 실수하기 쉽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만 치우쳐진 상황 설명, 객관적이기보단 주관적인 상황 해석 등이 이런 상황에서 나오기 쉬운 것 같다. 

2009년 9월 4일 일기


돌이켜보면 얼굴이 붉어지고 대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안 가는 말실수들이 있다. 이런 경우들을 일기장에 상황을 소상히 기록해 두고 다음에 그러지 않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 같은 것을 고민해 본다. 그렇게 해두면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나도 모르게 말을 꽤 잘 절제할 수 있다. 


한 때 긍정적인 것, 성공적인 것만 의식하는 과한 긍정주의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또한 심적 고통을 겪으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이점을 경험해 보았지만, 결국 성공과 실패, 긍정과 부정을 균형 있게 대하는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실패도 기록할만하다. 


역사가들의 사고방식

비밀일기장에 경험을 솔직하게 쓰는 것만으로도 배움의 태도를 함양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바로 '역사가들의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경험에서 지혜를 짜내는 전문가들이다. 그들이 만드는 역사책은 국가적 성공과 실패 경험의 정수를 모아놓은 고농축 일기장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 나는 역사수업하면 사건과 연도 그리고 암기를 떠올렸다. 그러다 에드워드 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접하고는 인식이 바뀌었다. 역사가들의 사고방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상적이었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다만 깊이와 넓이가 더해져 있었다. 그 책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소개해본다. 


(*요약 및 환언) 존스는 파티에서 평소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음주 운전을 했다. 수리를 받았지만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를 운전했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담배를 사러 가던 로빈슨을 친 것이다. 로빈슨은 결국 사망했다. 이 사망사건의 원인은 무엇인가. 음주 운전한 존스의 탓인가, 브레이크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정비원의 탓인가, 담배를 피우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던 로빈슨 탓인가.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당연히 음주운전 탓이지'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좀 더 자세히 읽어보니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고 했지 판단력이 떨어질 만큼 마셨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으로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명확해 보였지만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였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진정한 원인'으로 음주운전만 탓하기 어려워 보였다. 


마지막에 '담배 욕망' 탓이라는 이야기는 '내 주먹이 얼굴에 맞았다' 같은 황당한 주장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길을 건너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틀림없는 사실이기는 하다는 점이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는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구 탓인가

예시에 주어진 정보로만 판단한다면, 결과적으로는 3명 모두가 일정비율로 사망사고라는 결과에 기여한 원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여 정도가 다르고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차이가 있다. 예로 음주운전이나 브레이크 고장은 자동차 사고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만 담배욕망은 그렇지 않다. 폐 건강 악화로는 직접적으로 이어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흡연자인 로빈슨의 탓이라고 말하기에는 억지스럽다. 자동차 사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음주운전 방지 홍보와 각 정비소의 브레이크 점검을 강화해야 할 일이지 금연운동을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사실이라는 이유로 한 가지 원인에만 집착하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일기에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기록하며 역사가들의 사고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성공과 실패는 하나가 아닌 여러 원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중에는 직접적인 원인도 있고 간접적인 원인도 있다. 어떤 원인은 더 많이 기여하고 다른 원인은 그렇지 않다. 이 판단이 결국 현재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이 선택은 나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단 하나의 원인만을 찾아내려는 것이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상황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다.

J. Salevouris, Michael, <역사학의 방법과 기술 : 실용지침서(The Methods and Skills of History: A Practical Guide)>


'여러 원인에 대한 예민성' Sensitivity to Multiple Causation이라고 부르는 역사가적 사고방식 중 하나이다. 다음장에서는 나머지 두 개의 사고방식도 간단히 다뤄보고 싶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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