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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씨 Aug 21. 2019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집밥이었다

타지에서 배운 엄마 밥의 힘




매일 저녁 해가 기울어지면 나는 부엌에 간다. 우리 집 주(主) 요리사는 엄마지만 나는 어엿한 보조로서 저녁을 짓기 전 부엌을 정리하고, 요리 재료를 다듬는다. 그건 이제 성인이 된 내가 어깨너머 배울 수 있는 '살림'이었고 일종의 '밥값'이기도 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안다. 고작 한 끼 식사를 만드는 데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일찍이 보고 느낀 나는 엄마를 돕는다는 명목과 꼬박꼬박 집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늘 엄마를 돕는다. 대학생이 되면 학식에 외식에 같이 밥 먹기는 통 힘들다더라, 는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딘지 지나치게 달고 짠 바깥 음식 대신 나는 가능하면 집에 와 밥을 먹었다. 찬밥에 물 말아서 밑반찬만 하나 얹어 먹어도 여느 바깥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든든함'을 나는 어릴 적부터 몸에 익혔나 보다.


엄마의 충실한 보조이자 집밥 사냥꾼인 내가 부엌 출입을 못하게 된 것은 중국 상해로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된 곳이 서울도, 제주도도 아닌 중국이 되자 엄마의 걱정은 언어도 공부도 아닌 온통 '밥'으로 향했다.

"너 집밥 그렇게 좋아하는데 가서 어떻게 살래?"
"에이, 엄마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무궁무진한 미식의 세계로 떠나는 거라고!"


호언장담을 늘어놓고 패기 있게 떠나온 중국 대학교 기숙사에서 나는 고작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만두와 볶음밥도 먹고, 정체모를 빨간 탕과 중국식 채소 볶음도 먹어보았는데 어쩐지 배가 부르질 않았다. 아마도 낯선 외국생활에 긴장하고 겁을 먹었나 보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익숙한 것이라곤 신라면 몇 개뿐인 작은 기숙사 방 안에서 나는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택배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이름마저 반가운 OO참치 박스 안에 든 것은 작은 밥솥과 전기팬, 잡곡쌀과 깨가 잔뜩 뿌려진 엄마의 밑반찬과 말린 나물들이었다. 심지어 건미역과 물 끓여먹으라는 말린 우엉까지. 나는 그 날 콧구멍만 한 기숙사에서 쌀을 씻어 밥솥에 밥을 안치고, 미역과 소고기를 볶아 국을 끓였다. 밑반찬을 잔뜩 늘어놓고 마지막으로 우엉 끓인 물 한 잔을 상에 내려놓자 5성급 호텔 뷔페 부럽지 않은 밥상이 완성되었다.


타지에서의 적응이 수월해진 것은 그 날 그 밥상의 몫이 컸다. 단순히 한식을 배불리 먹어서가 아니었다. 나의 결핍은 내 손으로 밥을 짓는 시간, 엄마랑 반찬을 만들며 나누던 대화, 다 먹은 밥상을 치우며 하던 다음 날 메뉴 고민-이런 것들이었다. 딸내미 먹인다고 하루 종일 온 부엌이 어질러지도록 만들었을 반찬과,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꾹꾹 쑤셔 담은 꽉 찬 택배 박스에 담긴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낯선 땅,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지금도 어김없이 주방에 노을빛이 물들면 냉장고를 열어본다. 셀 수 없이 많은 밥상이 차려졌다가 치워졌다가를 반복했다. 대개는 멋들어진 고급 요리라기보다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찬이 전부였으리라. 그러는 동안 나는 제법 그럴듯한 요리를 해내는 딸이 되었고, 여전히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어김없이 내일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나는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매일 다른 하루를 쌓아간다. 그럼에도 소담한 행복이 담긴 부엌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지탱하는 것은 이곳에서의 시간 그리고 이곳에서의 식사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집밥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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