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내 나라와의 애증관계

by 펜얼티밋


나는 처음 출국할 때 한국에서 살 수 없어서, 한국에서 살 용기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서 한국을 떠났다. 나를 낳고 길러준 나라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차석 졸업을 할 때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주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대입에 의문을 가지자 나를 차갑게 내쳐버린 내 나라였다. 내 조국은 여기는 정글이니까 못 버티겠으면 죽던가 나가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곳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수긍하는 것이었다. 기존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비판하지도 말 것을 요구했다.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어도 어쩔 수 없다, 다들 그 부조리에 맞춰 잘만 산다, 부조리한 사회에 맞춰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네 잘못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은 사회개혁을 바라지 않는 듯 했다. 대신 사회에 반창고를 붙이고 싶어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정작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까도 내가 깐다는 심리인 걸까, 한국사회는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를 뼛속부터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 정도로 큰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살기 너무 힘들다, 죽을 것 같다, 이야기하면서도 해결책으로 전반적인 수준의 사회개혁(예를 들어 대학평준화 정도로 완전히 사회 기반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하면 반대하는 이들이 더 많다. 혹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자기가 찾아낸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을 고수하고 싶어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회를 바꾸려고 해봐야 반창고를 붙이는 것 이상으로는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은 보완 정도로 나아질 수 없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도 '평범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 살겠지, 생각하면서 그 수준의 삶을 따라잡기 위해 스트레스로 머리를 잃고 가족들을 잃고 건강을 잃는다. 생명을 잃는 사람도 많다.


나도 고민했었다. 80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뭐하러 고통으로 가득찬 길을 가야 하는 걸까. 그냥 지금 죽어도 되지 않나. 어차피 앞길에 있는 거라고는 고통과 잠재적 실패뿐인데 하루라도 일찍 죽는 게 고통을 줄이는 길 아닐까,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사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게 안 됐다. 그게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한국의 제도권 안에서 하루에 한 번 카페 갈 수 있고 자취할 수 있고 가끔 친구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나를 깔보고 막 대하는 사람들을 견디며 일을 하는 게,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게, 내가 왜 대학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수업을 듣는 게 안 됐다. 지금은 다 할 수 있는 일들 같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전제는 모래바닥처럼 그 위에 내가 세우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집어삼켜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타인들과 나를 비교하며 의미없고 나약해빠진 내 삶을 혐오했다. 대학 안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기성 제도권 안에서 버티지 못하자 한국은 아무 미련없이 나를 버렸다. 노동하지 못하고 공부하지 못하는 자는 국가에 부담만 될 뿐이었다. 직장이 없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되자 나는 순식간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다. 다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도움을 제공하는 곳도 없었다. 내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딱 죽지 않을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야 했지만 나는 불태울 만한 것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불태워봐야 비틀린 사회에서 살아남을 비틀린 방법을 찾아낼 뿐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gadiel-lazcano-ulPAVuxITEw-unsplash.jpg


나는 사회에서 나가떨어졌다. 버려진 인형처럼 방구석에 팽개쳐졌다. 그러다가 죽으려고 여행을 떠났다. 어차피 죽을 거 한국에서 죽으나 외국에서 객사하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재수없어 외국 무장 강도를 만나 살해당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살 용기도 능력도 없는데 외국 나가 죽지 뭐, 생각했던 게 결론적으로는 내게 한국에서 살아갈 용기와 능력을 주었지만 이 용기와 능력은 한국이 준 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한국을 싫어했다. 집나갔던 미운 자식이 집에 돌아가듯 나를 받아주는 곳이 이 곳뿐이라 돌아온 것이다. 한국도 나를 받아주기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나를 쳐낸 나라,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하자 가차없이 버린 나라, 하지만 동시에 내 가족과 친구들을 준 나라, 좋은 사람들과 좋은 문화를 가진 나라. 성숙한 정치 문화는 없을지언정 선진 정부 서비스를 가진 곳, 영국에서 코로나 록다운을 보내며 애愛가 좀 더 깊어진 나라, 내게 한국은 그런 곳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4. 영국에서 코로나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