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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Apr 13. 2021

비워야 쓰이지…

수분과 나무, 그리고 인생 2막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어야 할지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 나무도 나도, 먼 훗날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성장 일변도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노동은 더욱 소외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많아진다. 좋은 말로 인생 2막을 이야기하지만 만만치 않은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두 번째 삶은 이전의 삶에서 가져온 것을 모두 버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많이들 충고한다. 새롭게 던져진 것들 앞에서 이전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자주 들르는 공방 사장님의 호출에 달려가 보았더니 공방 뒷마당에 세워진 트럭에 나무가 한가득이다. 어디서 이 많은 나무를 사 오셨냐 했더니 공짜란다. 구청에서 가로수 정비사업으로 버려지는 것을 본인이 다 떠안겠다고 했단다. 그걸 제재소에서 켜 들여오는 중이었다. 나무는 공짜였지만 켜느라 들인 돈은 적지 않아 보였다. “남들이 보면 엄청나게 규모 큰 공방에 돈도 많이 버는 줄 알겠다”며 흘리는 너털웃음에 고민도 함께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베어지고 난 후에도 자꾸 변한다는 점이 나무로 가구를 비롯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고민거리다. 사람은 숨을 거두는 즉시 사라지지만, 나무는 아주 서서히 사라진다. 수분 때문이다. 수분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수분이 사라지지 않은 나무는 땔감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아마도 오래도록 살아온 시간만큼 내보내야 하는 시간을 거치도록 하는 죽음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금방 이용할 수 있었다면 그만큼 쉽게 버려지고 사라지지 않았을까. 아무튼 수분이 빠져나가야만 나무는 목재로 제2의 삶을 살 준비가 된다.     


목재가 품고 있는 수분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겪는다. 수축하거나 휘고 뒤틀리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충분한 건조과정을 거쳐야 한다.


잘린 직후의 생나무는 세포벽과 세포강이 수액과 수분으로 채워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 물관 등에 있던 ‘자유수(free water)’가 모두 증발하고, 세포벽에 ‘결합수(bound water)’만 남는 상태가 된다. 섬유포화점(fiber saturation point)에 이르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나무에 변화가 없다. 이 지점을 지나고 건조가 계속되어 결합수가 증발하기 시작하면 세포벽에 변화가 생기고 나무에 수축이 발생한다. 대기의 조건과 균형이 유지되는 수분을 함유한 상태가 되어야 일반적인 재료로 목재를 쓸 수 있는데, 국내의 경우 대체로 평균 15%의 함수율을 기준치로 하고 있다.(대기 중의 온·습도 조건과 평형을 이룬 평형함수율을 기건함수율이라 한다. 국내 기건함수율은 지역 및 계절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 14%이고, 그 범위는 12~16%이다. 일본의 경우는 평균 15%, 범위 12~18%이며, 미국의 경우는 12~15% 범위로 알려져 있다. 산림청, 『산림과 임업기술 제4권 임산물 생산이용』, 2000.)      


함수율(moisture content)은 건조되지 않은 목재의 무게에서 건조 후 목재 무게를 뺀 다음 건조 후 목재의 무게로 나눈 후 100을 곱한 값을 말한다. 적어도 10% 이하로 떨어져야 실내에서 쓸 수 있는 가구를 만들 준비가 되고 7~8%가 적당하다고 한다. 적절하게 건조되면 사용 중에 수축하거나 부풀어 오르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당연히 비틀림이나 갈라짐 등과 같은 결함의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공방 뒷마당에는 이미 이전부터 건조를 기다리며 쌓여 있는 나무들이 있다. 천연 건조되고 있는 나무들이다. 천연 건조란 목재를 야외에 쌓아 대기에 노출시켜 건조하는 방법이다. 공기가 흐르게 하기 위해 목재 사이에 사잇대를 넣고 목재를 쌓는다. 비틀림을 방지하고 균일한 통풍을 위해서다. 천연 건조는 기건함수율 이하로 건조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전문적으로 나무를 건조하는 업체에서는 건조로에서 열을 이용해 수분을 없애는 방법이 동원된다. 열기 건조는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실내에서 수종과 두께별로 건조하는 방법이다.     


목재로 쓸 만큼 수분이 적당한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나무의 활동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주위의 습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미세하지만 수축과 팽창을 거듭한다. 목재는 방향별로 다른 수축률을 보이는데 길이방향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고 폭 방향으로 변화가 생긴다. 이를 수축이방성이라 한다.      


나무를 켤 때 어떤 방식과 모양으로 켰는지에 따라서 모양이 다양하게 휘어지거나 틀어지고 변화하기도 한다. 그것도 나무마다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 습기 많은 여름날에 부재를 잘라 바로 제작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휘어버리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제작을 위해 재단한 목재를 당장 쓰지 않을 경우에는 꽁꽁 동여매 두어야 한다.     


목재를 구매하게 될 경우 왜 이리 비싼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곧바로 쓸 수 있는 목재란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고 거기에 비용이 첨가된 것이다. 나무의 두 번째 삶은 이런 적응 과정을 거친 후에야 시작되는 셈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젊은 시절을 산다. 시간이 지나 노쇠하거나 생각이 달라지면서 다른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도, 내던져지기도 한다. 그 다음의 시간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겪어야 할 날씨와 낮과 밤이 다르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 중 많은 부분을 내려놓거나 다시 재장전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전의 지식과 경험이 그대로 통하지도 않는다. 맞춰가야 하는 삶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어야 할지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 나무도 나도, 먼 훗날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이 글은 브런치에 가끔 내용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인의 공방에 드나들며 작업한 내용과 나무에 대한 생각을 모아 최근 발간한 『자라지 않는 나무의 모험』 중 일부입니다. 앞으로도 가끔 나무와 목공에 대한 글을 올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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