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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Feb 01. 2022

성장하다


성장하다: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자라서 점점 커지다. 이뤄짐(成)과 자람(長)의 결합.


벌써 5년 가까이 키우고 있는 애완식물이 있다. 수경재배 몬스테라이다. 마티스의 그림이나 cut-out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이국적이고 생명력이 강해 보이는 몬스테라. 몬스테라를 들이고 별다른 변화 없이 오랜 시간 똑같이 머물러 있어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구나 했었다. 되려 싱싱하던 큰 잎이 노랗게 변해 죽어버렸다. 오랜 시간 애정으로 키워오던 몬스테라였는데, 이제 멈췄나 보다 하던 그때쯤, 어느 날 몬스테라를 보니 새로운 잎이 불쑥 솟아나 자라고 있었다. 처음 새 잎이 하나 나는가 싶더니, 금세 또 새로운 잎이 한 장 더 자라 그 전의 큰 잎들은 다 지고, 새로운 잎들이 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제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걸까?


지나온 삼십여 년간의 삶을 뒤돌아보며 나의 성장을 떠올려보면 나의 성장은 대나무의 매듭과 같았다. 내가 성장했다고 느꼈던 때는 어떤 한 목표를 달성한 성취의 시점이 아닌 대나무의 매듭처럼 한 시기들이 지나고 나서였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매듭은 사춘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6학년 때쯤 좀 이른 사춘기를 겪었다. 사춘기의 모습이 모두가 다르겠지만, 나의 사춘기는 가득 찬 물 잔을 엎지른 것 마냥 새로운 질문들이 나에게 파도처럼 쏟아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찾아낸 나의 방법은 그냥 새로운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었다.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에 책으로의 도피를 선택했다. 그렇게 1-2년 시간 동안 몇백 권에 가까운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묻고, 그 물음에 답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다음 매듭은 이른 독립과 함께 찾아왔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며 열다섯 나이에 독립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내내 이유 없는 복통에 시달렸는데 돌아보며 생각하니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처음 해보는 독립생활의 외로움과 치열한 입시경쟁의 스트레스 등등.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이 끝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몇 년 동안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끝도 없이 잠을 많이 잤고, 술을 많이 마셨다. 대학생활의 한없는 자유가 좋았지만 상경 생활은 여전히 외로웠다. 십 대의 끝자락과 이십 대 초반, 어른이 되어 그때를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외로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시간의 끝에 외로움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진실된 사랑과 인생을 함께 여행할 파트너를 빨리 찾고 싶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나의 마디는 대학 3-4학년 시기 영국과 독일에서 약 2년을 지내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세상에 내던져진 시간들을 통해 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는지, 세상에 호기심을 갖는 방법, 여행을 통해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방법 등을 배우며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지금까지 여러 매듭들이 쌓여왔다. 몇몇의 사랑과 이별을하며, 혹은 요가매트에서 오랜 수련을 한뒤에. 때로는 고통을 동반한 성장이, 때로는 벅찬 기쁨과 함께 찾아오는 성장들이 공존했다. 마디마디의 시간들을 몸소 통과해내며 몸에 체득한 것들이 나에게는 진정한 성장이었다.


지금 눈앞에 성취해야 되는 목표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져 오지만, 또 이 한마디의 과정들이 어떤 매듭으로 이어져 성장할까 생각하면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아픔과 기쁨들을 기꺼이 다 받아들이고 싶어 진다.


여러 매듭을 짓고 성장해 이제  키만큼 자라 있을  마음의 대나무는 이제서야 폭풍이 불어도 꺾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오면 부드럽고 유연히 움직일 정도가  듯하다.


각자마다 성장과 매듭의 이유와 시간은 다 다르다. 내 몬스테라에게 다 컸다고, 더 크지 않을 거라고 내 맘대로 한계 짓고 속단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쑥쑥 더 자라라, 너의 속도대로! 나도 그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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