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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Nov 07. 2021

소비하다


소비하다 : 돈이나 물자, 시간, 노력 따위를 들이거나 써서 없애다.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비를 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물건이나 콘텐츠뿐 아니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까지 소비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니 나의 가치관 내지 패턴은 여러 단계에 걸쳐 변화해 왔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며 당연하고 의심 없이 소비했고, 그런 소비는 즐거움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부모님 덕분에, 용돈이 항상 풍족했었고, 원하는 것은 항상 다 살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물론 원하는 것들이 옷, 장난감 같이 대단히 비싼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다 소비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아빠의 사업실패로 더 이상 용돈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채 갑작스레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 했다. 원하던 것들을 큰 어려움 없이 항상 소비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내가 번 돈으로 소비를 하려고 하니 내 소비가 나의 경제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건 많은데, 대학생 4학년 졸업반인 나의 경제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좌절을 느끼며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모님이 내주시던 등록금과 해외 연수비, 명품가방과 생활비 등등. 부끄럽게도 그때까지는 사고 싶은 옷을 못 사고, 등록금을 스스로 벌던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소비습관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집세와 생활비 등을 내고 나면 항상 마이너스였고, 신용카드값도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차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이렇게 살면 정말 미래가 없겠다는 무서움이 들어 소비습관을 고치고,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개인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소비에 대한 억제와 저축과 투자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소비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고, 소비하는 사람보다는 생산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차가 쌓이고, 결혼을 하고 수입이 늘어나도 그렇게 몇 년을 아끼고 저축하며 소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살아오다가, 최근 오래된 매트리스와 세탁기를 바꾸면서 소비에 대한 나의 생각의 변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오래되어 사용에 불편이 생긴 매트리스와 세탁기를 바꾸기 위해 꼼꼼히 이것저것 따져보고,  비용이었지만 마침내 바꾸고 나서는 일상의 질이  배는 상승했다. 매일 잠을 자는 매트리스와,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하는 빨래, 그리고 매일 입는 옷의 달라짐.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비를 통한 행복이었다.


消費(소비) 사라질 소. 슬비. 써서 사라지는 것이 소비라고 하면 쓰는 동안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특히 그것이 세탁기나 매트리스처럼 일상에서 자주 쓰는 것들이라면 말이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물건들은 비용이 좀 들더라도 제대로 된 좋은 것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소비습관이 많이 고쳐진 지금은 ‘소비하지 않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소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저 좋은 물건을 싸게 산다거나 안 사는 것이 ‘현명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른 중반, 삶의 목표와 가치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춰 소비를 하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반대로 지난 몇 년간의 재무제표를 돌이켜보니 지금 내 삶에 어떤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소비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건강, 가족, 여행과 배움에 가장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소비할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무한대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욕망과 욕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진짜 좋아해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혹은 어떤 이미지에 현혹되어 가짜의 욕망으로 원하는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적게 소비하고, 적게 소유하는 삶, 그러나 더 많이 경험하고 더 풍요로운 삶. 집을 사고, 차를 사는 소비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기보다는, 사랑, 가족, 건강, 행복과 갗은 인생의 중요한 톱니바퀴들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한 윤활제가 되는 삶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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