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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ntimental Vagabond Mar 09. 2019

1. 결혼식 대신 시작한 인생 프로젝트 아이스크림가게

우리의 작은 출발, 가게 자리 찾기부터


2013년 늦여름 한 LP바에서 만난 짝꿍과 나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오고 있다. 함께 한지 4년이 되던 해인 2017년엔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온 짝꿍과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국적도, 피부색도, 살아온 환경도 그 모든 것이 다른 우리. 언제부터 미래를 함께 하자 했는지라고 하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냥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왔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남은 인생을 함께하자는 약속으로 많은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고 제삼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인 '결혼식'을 통해 세상에 공표한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우리는 '결혼'은 하되 '결혼식'과 거창한 혼수 대신 그동안 우리가 꿈꿔오던 우리 둘의 꿈을 함께 이뤄보기로 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라는 꿈을.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 짝꿍은 단지 자기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한국에 없다는 이유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금씩 혼자서 홈메이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왔다. 둘이서 나눠먹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어졌을 때쯤 친구들의 가게에서 팝업스토어를 열며 다른 사람들과도 나눠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어린아이들과 학생, 어른들까지 남녀노소 모두 찾아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사랑과 행복과 재미가 넘치는 아이스크림가게'를 오픈하고 싶다는 꿈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혼수나 결혼식으로 쓸 수 있었던 작은 종잣돈을 모두 털어 아이스크림 가게 오픈이라는 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낭만적으로만 들리는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아이스크림가게'의 첫걸음도 감당하기 힘든 서울의 부동산 자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넉넉지 않은 예산에 괜찮은 가게 자리를 찾는 게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순진한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우리한테 꼭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꽃피는 봄쯤에는 가게를 오픈할 수 있길 기대하며 추운 겨울부터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가게 자리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권리금이 없고 보증금이 낮을 것

2. 가게 매출이 낮아도 본업 월급으로 낼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임대료 일 것

3. 10평 이하의 휴게음식점업 허가가 나올 수 있는 공간 일 것

4. 우리가 사는 집과 10분 내 거리에 있을 것

5. 번화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유동인구가 있으며, 캐릭터가 있고 운치 있는 골목길일 것

6.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기 어려운 곳일 것


1월 25일. 드디어 한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에게 딱 맞는 자리가 생겼다고. 옛 일본식 적산가옥들이 빼곡히 모여 있는 좁은 골목길, 동네 산책을 다니며 수도 없이 좋다고 말했던 그 골목이었다. 하물며 가게 자리 맞은편에는 아이스크림 주재료인 우유와 크림을 파는 우유 대리점도 위치 해 있었다.

 

아이스크림가게 옆에 위치한 옛날 적산가옥을 개조해 만든 운치있는 카페 아나키브로스. 가게를 준비하며 큰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지금은 골목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곤 3월이 되어 드디어 가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6평 남짓의 공간과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백지상태에서 다시 아이스크림 가게와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은 두렵지만 참으로 설레는 일이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로 계약한 곳



미약한 시작이지만 결혼과 함께 우리의 인생 프로젝트인 아이스크림가게 도전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골목길의 작은 가게에서 여러 시간을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그런 아이스크림이 되길 바라며 그 시간의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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