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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로미 Jun 14. 2020

소공녀(2020), 나 하루만 재워줄 수 있어?

오랜만에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보기로 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소공녀. 미소는 정말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먹고 살아간다.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 친구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그녀는 없는 형편에도 이런 것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사에 월세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지자 결국 집을 포기하고 만다. 캐리어 하나만 들고 불쑥 친구를 찾아가는 그녀의 유랑기를 담은 이 영화. 아주 오래된 친구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면서 그려지는 에피소드를 보며 현실적인 듯, 비현실적인 듯한 이 영화가 참 매력적이었다.  내가 갑자기 재워달라고 하면 흔쾌히 수락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 이런 의문도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얼마 전에 봤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장면이 떠올랐다. 게스트인 공효진이 예전에 차승원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선배님, 친구 없죠?"

"있어. 유해진이라고 하나 있어."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난 어떤 대답을 했을까. 난 정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 될까. 그 한 명을 꼽을 수 있긴 할까. 그 한 명도 나를 친구라고 할까.


나도 예전에 친구가 많았던 시절은 분명 있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성격에 생일이 되면 내가 정말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다. 생일 케이크도 질리도록 먹고 두 손에 하나 가득 선물을 가지고 돌아가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니,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서 어느덧 생일은 가장 싫어하는 날이 된 지 오래이다. 크고 작은 상처 때문에 예전처럼 베푸는 것을 즐기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아끼게 된다. 연락을 하는 것도 이 친구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망설이게 되고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새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그때만큼은 눈치 안 보고 연락을 할 수 있어서. 너무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길을 걷게 되니 만난다고 하더라도 대화를 이어가기도 솔직히 힘이 든다. 어느 순간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면 쉽게 만나기도, 연락을 하기도 어렵게 되어 버리고 나니 친구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갑자기 연락을 해도 흔쾌히 자신의 공간을 하나 내어준 친구가 있는 미소가 참 부러웠다. 내 친구는 고작 한 명이지만 그 사람이 누구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차승원 님도 부러웠다. 많이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나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지 못한 것 같다. 난 돈보다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난 미소처럼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물론 난 미소보다 돈도 많고 집도 있지만 하루만 재워달라는 부탁을 해보려고 한다. 이미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친구도 있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친구도 많다. 그리고 분명 예전에는 친했지만 언제가 마지막 연락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친구도 많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집을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사실 영화는 핑계였다. 그냥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싶을 뿐이다.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톡의 친구 목록을 찾아보았다. "안녕! 잘 지내지?" 시작은 인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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