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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로미 Jun 14. 2020

저는 'People person'입니다.

그냥 a person이면 어땠을까?

※ 2018년 겨울에 쓴 글입니다. 제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필명을 '외로미'로 정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글이 너무 어두워서 다시 쓸까 고민도 했지만 그때의 감정을 다시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수정 없이 발행합니다. 마냥 밝지 않은 글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people person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누구하고도 금방 쉽게 친해집니다. 이런 제 친화력을 바탕으로 항상 좋은 직장 분위기를 만들어 낼 것이고..."


 나를 소개하는 자기소개서에 항상 등장하는 키워드는 'people person'이었다. 어느 직종이든 직무든 직장에서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래서 저 키워드가 무수히 많은 기업에 통용되는 프리패스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혼자 하는 것을 즐기지 않고 무엇이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로 인한 북적북적한 분위기도 꺼리지 않는다. 바쁘게 일상을 보내다가 주말에 하루쯤은 혼자 집에서 쉬거나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여유조차 내게는 무료함으로 느껴진다.


 예전에는 애쓰지 않아도 함께 할 친구가 적지 않았는데 어느새 30대 중반에 접어드니 곁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 모두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해서 남편이나 자식, 그리고 새로 생긴 가족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직장 동료와 근근이 말이라도 섞지 주말이 되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확 몰려온다. 


 남들은 월요병이 있다는데 이제 주말병이 생길 정도이다. '이번 주말에는 도대체 뭐를 해야 하지? 집에 있고 싶지는 않은데......' 매일 새로운 모임을 찾아서 나가보고 좀처럼 깊어지지 않는 피상적인 관계를 접하고 나니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쇼핑을 하는 이 일상이 좀처럼 즐거워지지 않았다. 내가 좀 유명한 사람이고 카메라만 있으면 이게 '나 혼자 산다'랑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게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사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함께 한다는 안정감과 함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전자는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후자는 절대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박탈감이 갈수록 커진다. 최근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실망한 순간이 있었고 내가 받은 상처를 한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언니, 나는 가족을 제외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을 버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 않아? 난 함께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인데?"

 "그건 언니가 아직 순수해서 그래. 사람들한테 너무 잘해주지 말고 정도 주지 마. 난 기대하는 게 없어서 실망하는 것도 없거든"


 실제로 그녀는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한 말이 전혀 틀린 것이 없고 그런 스탠스를 취하는 게 이 삭막한 세상에서 덜 상처 받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해야 인간관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노력하면 혼자 하는 모든 행위를 즐길 수 있을까? 평생 외로움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 성향이 저주스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성향을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꾸라고 노력해 보라는 조언이 '육식동물로 태어났는데 네 주변에 고기가 없으니 이제부터 풀을 먹어보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낀다. 


 이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서 글을 써보고자 한다. 글은 철저히 나 혼자 써야 하는 작업이며 나처럼 사계절을 겨울처럼 살고 있는 외로운 사람들은 공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저 밝고 행복한 글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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