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2020) 5호
"지금까지 가 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스페인이요. 스페인 그라나다."
나의 최애 여행지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이라는 나라도 물론 매력적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았다. 첫 번째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유랑'이라는 여행 카페에서 만난 동행과 전체 동행을 한 적이 있는데 타인과의 여행이 쉽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성향과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친구처럼 편하게 말하기도 어려웠기에 여행 내내 서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장기 여행의 경우 동행을 구하는 것은 망설여지는 일이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스페인을 혼자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스페인에 가려고 했지만 서로의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 따로 가게 되었고 이미 발권한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기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동행을 구하게 되었다.
처음 구한 동행은 대학생 A였다. 그리고 A가 직장인 B를 구했다. 나는 또 직장인 C를 구했고 사전에 구한 동행 A, B, C와 일정에 맞춰 따로 또 같이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B가 길에서 대학생 D를 우연히 만났고 우리(나, B, C, D)는 함께 마드리드 근교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만난 사람들 같지 않게 죽이 참 잘 맞았다. 다음 날 B와 C는 세비야로, 나와 D는 그라나다로 가는 일정이었다. 사실 나는 오후에, D는 오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으나 나는 D와 함께 가고 싶어서 미리 예약한 버스 시간을 바꿨다. 모든 동행이 떠난 후 혼자 남겨질 마드리드가 너무 무료하고 심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라나다는 술을 시키면 '타파스'라는 작은 안주가 무료로 나오는 곳이어서 우린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맛집을 검색하며 무척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지역 주민들이 타는 버스로 갈아타야 했고 마침 퇴근 시간이 겹쳐서 아주 복잡했다. 유럽의 소매치기야 워낙 유명해서 크로스 백을 앞으로 메고 경계했지만 너무 복잡했던 나머지 버스의 흔들림인지 전문가의 손길인지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소매치기는 내 가방에서 교묘하게 작은 반지갑을 가져갔고 그 안에는 여행 자금 일부와 신용카드, 체크카드와 신분증이 담겨 있었다. 소매치기를 처음 당해봤기 때문에 패닉이 왔지만 일단 미리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카드 분실 신고를 했다. 다행히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고 물품 보상이 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지갑에 대해서 보상 처리를 받을 계획이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경찰서에 가서 '폴리스 리포트'를 받아야 했는데 문제는 그날이 주말이어서 경찰서 문이 닫은 상태였다. 나는 1박만 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머무는 동안 경찰서 문은 열지 않는다고 했고 보상 처리를 위해선 지도상 보이지 않는 경찰청(정확한 명칭은 아닐 수 있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경찰서 앞에 머뭇거리고 있는 순간 한 노신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황하는 우리에게 그곳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저 차 타도 될까요?"
"언니, 언니 혼자는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냥 포기해야겠죠?"
"음, 언니 저 궁전 예약 시간 남았어요. 같이 가요."
그렇다. 돌이켜 보면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낯선 땅, 낯선 사람의 호의는 쉽게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테이큰'처럼 무서운 영화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차를 봤을 때 누군가를 납치하기에는 정돈이 되지 않고 몹시 작았다. 우리에게 자신의 아내를 소개해 주면서 방금 장을 본 봉지들을 급하게 트렁크에 싣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오지랖은.'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아내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그 노신사의 선한 인상과 유창한 영어 실력에 긍정 회로를 돌리면서 마지막 희망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의 촉은 놀랍게도 잘 맞았고 우리는 안전하게 경찰청에 도착해서 원하는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정신이 없는 나를 그녀와 노신사가 차분하게 도와줬다. 노신사는 일처리가 끝날 때까지 우리를 기다렸다가 시내까지 돌아오는 길에 주요 관광지를 소개해 주었다. 이미 해가 진 후였다. 그는 알고 보니 그라나다 대학교의 교수였다.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을 듣고 평범한 유럽 사람보다 유창한 그의 영어 실력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었다.
"뭐라도 주고 싶은데 정말 줄 게 없네요?"
"그러니까요. 지금 한국 돈도 없고 그렇다고 유로를 주기는 좀 아닌 것 같고."
가방을 털어 무엇이라도 건네도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줄 게 없다고 말하자 그는 마치 탈무드의 한 구절처럼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돼요.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일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도와주면 돼요."
그때 서툴게 '그라시아스(스페인 말로 고맙다는 뜻.)"를 수백 번 말하면서도 마지막에 이메일 주소라도 묻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라나다 대학교 홈페이지도 뒤져봤지만 사이트는 스페인어로 되어 있었고 사진도 한 장 없어서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름도 몰랐다. 굉장히 혼란스럽고 힘들었지만 스페인, 그리고 그라나다를 사랑하게 만든 것은 이 노신사의 따뜻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함께 해 준 동행이 없었다면 그 호의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 혼자 차를 타고 갈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작 하루를 여행한 사이였고 어떻게 보면 다시 안 볼지도 모르는 사이였다. 이런 타인에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주며 위험을 함께 감수한 그녀에게 정말 감사했다. 결국 우리가 계획했던 타파스 투어는 물 건너갔고 급하게 궁전 시간에 맞춰 뛰어가는 그녀를 배웅했다. 그다음 날 잠깐 타파스 집에서 만났지만 나머지 여행 일정은 달랐다. 그녀와 만날 수 없었지만 우리는 메신저를 통해 여행 내내 연락을 이어가고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자 보험 보상금을 받은 후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녀 외에도 이렇게 잘 맞는 동행을 찾은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에 스페인에서 만난 동행들과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함께 와인을 마시고, 츄러스를 먹고, 한강에서 피크닉도 하면서 스페인을 추억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에게 중요한 우선순위가 생겼고 사진과 추억 속에 서로를 간직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유일하게 그녀와 연락을 계속 이어갔다. 아니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에 내가 계속 인연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변화의 흐름 또한 비슷했다. 그녀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서로 졸업을 하고 직장을 찾는 시기도 비슷했으며 그녀 역시 나와 같은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는 시간도 비슷했다. 같은 업계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환경에 처하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매우 어른스럽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성숙하다. 그리고 하고 있는 일도 상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친절함이 탑재되어 있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굉장히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상담사로 일을 하고 난 이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어 힘들다는 고민을 듣게 되었다. 타인의 인생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어 한동안 영화도 보지 않게 되었다는 말에 최소한 나와의 만남이 일과 같은 느낌을 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나 역시 사람 때문에 힘든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너무 잦은 만남보다는 가끔씩 얼굴을 보면서 그간의 일상을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꼭 자주 보는 것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결혼을 해서 곧 엄마가 될 예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먼저 다양한 경험을 했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산도 현명하게 넘겨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특별히 도와주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미래에 일말의 슬픔도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 아주 작은 고난이나 시련이 찾아온다면 누구보다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때 그 스페인의 추억이 아직도 나에게 큰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박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 좋은 사람이 남아있다고 믿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