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수목금 휴가를 쓰는 것은 뭔가 좀 그렇다"라는 일견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나의 휴가 결재를 반려시키고는 자기는 그냥 이직을 해버린 전 실장님의 유지를 받들어, 일주일의 몽골 여행을 취소하고 단기간의 칭다오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뭐 언젠가는 중국 여행 한 번쯤 다녀와야지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여행인데 뭐 별다를 게 있으려나?
여타 다른 나라들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안일 그 자체로 여행을 준비하려다 비자에 당해버린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무비자 여행 가능국 세계 3위에 빛나는 대한민국 여권이 고작 만리밖에 되지 않는 장성에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달콤한 중국몽을 꾸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국 대사관에서는 여권사진과는 별도의 6개월 이내의 사진, 우리 아빠의 전화번호, 내 직장 주소와 전화번호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인정보를 수집해갔고, 3박 4일의 중국 입장료로 8만 원(사진, 대행료 포함) 가량의 부대비용을 청구했다. 재훈이가 이란에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ESTA가 발급되지 않아 200불에 육박하는 미국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은 내 분노한 마음을 이내 가라앉혀 주었다.
아, 비행기! 인천공항!
보통 국제선 내부는 목적지의 영토로 간주한다고 하니, 중국 여행은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에 대한 첫인상은 대단했다. 그들은 무섭게 생겼으며 무서운 냄새가 나고 무서운 눈초리를 보내며 자고 있었다. 무서운 냄새에 대해 함부로 인상을 찌푸렸다가는 1합만에 목이 달아날지도 몰라 조용히 다리를 모으고 공손하게 잠을 청했지만 옆에서 장비같이 생긴 빡빡머리 중국인이 자꾸 가래를 끓이며 내 단잠을 방해했으므로 취침은 이내 그만두었다.
중국 입국과정은 다른 국가들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지만 공안의 만행에 대한 뉴스 기사들과 중국의 거대한 공권력에 대한 상상력은 그 과정을 평소보다 더 무섭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 열 손가락의 지문을 전부 찍어갔으며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녔다. 손가락만 까딱이며 나를 이리저리 조종했던 그 과정은 흡사 대학교 신입생에게 굴종의 의미로 장기자랑을 시키는 것처럼 중국 초심자에게 시진핑과 공산당 공권력의 무서움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칭다오의 날씨는 아주 청명했다. 기온도 서울보다 3~4도 낮았으며 습도도 거의 없고 공기도 청명하여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몹쓸 놈들이 오만 미세먼지는 한국에 오지게 보내고 정작 자신들은 청명한 하늘을 갖고 있다는 것에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공항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
칭다오의 음식
칭다오는 맥주로 유명하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독일이 칭다오 지역을 청나라로부터 조차하여 사용할 때 친히 독일의 맥주 제조 기술을 전수하고 공장을 지어주었기에 칭다오 맥주의 맛은 세계적으로도 꽤 좋다고 한다. 조차는커녕 늑약으로 대한제국 땅을 정복하고 내선일체로 편입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주류제조기술 하나 전수해주지 않은 모 제국주의 국가에 비하면 비교적 혜자였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여행 중에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셨기에 거의 항상 취한 상태로 돌아다녔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다녔던 곳에서는 맥주박물관과 오사공원을 제외하면 한국인을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취한 상태에서 문명인들이라면 응당 하지 않고 해서도 안 될 개소리들을 양껏 하고 다닐 수 있어 여행에 즐거움을 한 층 더하였다. 칭다오에서만 판매한다는 원장 맥주는 1리터에 약 38~45 위안의 시세를 형성하여 일반 칭다오 맥주의 2~3배 가격이었지만 그 맛이 매우 탁월하여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마시고 또 마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칭다오 맥주박물관에서 한 잔, 맛 구별은 못해도 뭐가 맛있는 건지는 안다.
칭다오의 음식은 대체적으로 해산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지인만 가득한 식당에서 재훈이의 한자 실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었는데, 바지락, 가리비, 새우, 생선조림, 미니 가재(샤오롱샤), 양 및 소의 꼬치구이뿐 아니라 오리 대가리(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비주얼이 그다지 좋지 않아 그만두도록 해야겠다), 양의 척수, 심지어는 불가사리도 먹었다. 오리 대가리는 먹을 게 없을뿐더러 나의 약한 비위와 적나라한 비주얼 때문에 끝까지 먹지는 못했다. 양의 척수 또한 뭔가 불쾌한 식감이 느껴져 만족스럽지 못하게 먹었고, 불가사리는 게의 내장 맛이 났고 다리 두 개를 먹긴 했지만 다음에 또 먹고 싶지는 않았다. 불가사리의 껍데기는 먹어본 재훈이의 말을 빌면 아이스크림 콘의 맛이 나지만 씹어도 계속 바삭한 뭔가의 불쾌함이 있다고 한다.
불가사리의 갈색 속살, 게장 맛이 나지만 또 먹고 싶지는 않다.
샤오롱샤, 생각보다 맛이 좋다.
대부분의 음식이 아주 훌륭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일등 술안주는 라 깔라 라고 하는 바지락 요리였다. 아니 방금 라 깔라가 독음이 맞는지 검색해봤는데 백종원 3대 천왕에 나온 요리라고 하네. 어쩐지 맛있더라... 젠장! 더 먹고 올걸! 이 요리의 가장 큰 장점은 한 접시에 10위안이라는 점이다. 약 1700원 돈에 아래와 같은 바지락을 듬뿍 먹을 수 있다. 혜자 누나도 여기 와서 자신의 부족함에 눈물을 흘리고 갔다는 후문. 바지락의 씨알이 너무 작아 이 정도면 지속 가능한 발전을 포기하고 후대를 착취하는 남획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아니 우리 서해를 침범해서 깡그리 씨알을 말려놓는 게 중국 어선 놈들이라더니, 진짜 이 정도 씨알도 다 쓸어가 버리나 싶었다. 나쁜 놈들... 맛있게 최선을 다해 먹어서 혼내주기로 했다. 아,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군.
라 깔라. 아 개꿀맛! 인정이야!
예전에 연수 차 미국에 방문했을 때 북경오리 요리를 먹었던 것 같은데, 그 사진도 없고 먹었던 기억이나 맛도 생각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별 특징이 없었거나, 같이 주문했던 랍스터를 깨 먹는데 신경을 너무 많이 썼거나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먹으러 갈 때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그 맛은 굉장했다. 전취덕이라고 중국에서 유명한 북경오리 체인점인 것 같았다. 우리가 먹었던 음식점 중 유일하게 뭔가 잘 차려진 식당 같은 곳이었고 한국인도 많았으나, 역시 영어가 되는 직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건방진 중국 놈들... 세계정세를 거스르려 하다니, 아! 또 먹고 싶다... 기름이 되어 녹아버린 저 오리의 껍질은 지금쯤 내 하복부로 가서 안 그래도 둔탁한 체형에 항아리함을 더 추가했겠지?
북경식 오리구이, 베이징 카오야.
중국에서 수박주스라고 함은 수박을 갈아서 만드는 그런 음료가 아니라 우롱차의 맛이 나는 중국식 tea에 수박 덩어리를 썰어서 넣은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처음에 받았을 때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의아했지만 맛을 보고 수박을 꺼내어 먹으면서 중국인들이 음식에 있어서는 늘 경건한데 내가 지레짐작하여 비난해 버렸다고 스스로 회개했다. 1인당 PPP가 한국과 2.5배 정도 차이가 나서 그런지, 이 정도 퀄리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최소 5천 원가량 할 것 같은데, 칭다오에서는 2200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맛이 좋아 절로 콧노래가 났기에 스스로 '아 내가 뭔가 좀 늙었나, 맛있다고 아저씨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 음료는 한자를 읽을 수 없어 무슨 음료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타이동 야시장에도 방문했었는데, 1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 2 메뉴가 별로 입맛을 돋우지 못하였다; 3 역한 취두부 냄새를 막을 수단이 없다 등의 이유로 아무것도 취식하지 않았다. 방콕의 야시장은 정말 대단했었지... 이 외에도 다양한 음식들과 음료들을 맛보았는데, 만두와 면 요리도 굉장히 맛이 좋았고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국이 어서 비자를 해제하고 영어 및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들을 대폭 고용하여 일본을 대체할 수 있는 식도락 여행지로 칭다오를 무럭무럭 성장시켜주었으면 좋겠다. 비자 8만 원의 장벽은 대단히 높다. 아, 저 맛있는 것들을 또 먹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 이래서 내가 살이 안 빠지는구나!
관광에 관하여
0. 중국의 구글
나는 일반적으로 현지인들만 있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평범한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게 현지어를 잘 배워가지 않는다. 이는 내 언어능력이 모자라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구글이 다 해주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구글 번역기만 있으면 무슨 메뉴든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립 어드바이저와 에어비앤비, 우버 등의 인프라는 항상 나를 불필요한 삐끼와의 싸움 외 자잘한 곤란들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중국은 그게 다 막혀있다. 구글 맵에는 지하철도 버스도 건물들도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타임라인에는 내가 수면 보행으로 잔교 근처 바다를 배회한 것으로 표시됐다.
구글이 그린 나의 칭다오 첫 날 타임라인. 난 뭘 한 거지?
대신 중국 app 생태계에는 각각의 역할을 대신해 줄 중국만의 app 이 다 따로 있다. 바이두, DD, 투찌아 등이 그것인데, 모든 것을 대신해 줄 바이두는 중국어 외의 다른 언어를 지원조차 해주지 않으며 바이두 지도를 들어가려고 하면 자꾸 내 핸드폰에 apk 파일 설치 시도를 해서 두려움에 설치를 포기했다. (아마 추측컨대 중국 핸드폰을 사용하면 해당 apk를 내 허가 없이 자동으로 설치할 것 같다.) 인구가 14억 쯤 하는 나라는 스스로 모든 인프라를 만들어 사용해도 차고 넘치는 고객 수와 넘치는 인재들의 개발 실력, 유지보수 능력 등의 뒷받침에 힘입어 그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그 자체로 어느 정도 부럽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습근평의 중국몽인가? 함께 하자 중국몽!
1. 중국의 도로
호탕한 일부 중국인들은 왕복 5~6차선쯤 되는 도로라도 손을 들어 차를 멈추며 당당하게 걸어간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대체적인 도로 문화가 차나 사람이나 오토바이나 먼저 들이미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로 되어있고, 분노한 패배자들의 클락션 소리가 도로를 지배하고 있다. 나 정도 되는 운전실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의 도로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90퍼센트가 넘는 오토바이가 EV 모델이어서 시끄러운 오토바이 내연기관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아 좋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 전기오토바이로 바꿔버릴 수 있었을까? 하여튼 공산당 놈들은 한다면 무지막지하게 그냥 추진해버리는 반쯤은 좋고 반쯤은 나쁜 습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도로에는 정말 다양한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도요타, 혼다, 미쯔비시, 마쯔다, 스즈키, 렉서스, 어큐라, 닛싼, 현대, 기아, 쉐보레, 뷰익(정말 많음), 포드, 벤츠, BMW, 아우디, 캐딜락, 지프, 폭스바겐, 포르셰, 벤틀리, 미니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고, 처음 보는 중국차 브랜드들 - BAIC, BYD, FAW, FOTON, HAIMA, JAC 등이 다양하게 도로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실 외제차 브랜드들은 진짜 그 외제차인지 아니면 로고를 따라한 중국의 짭 자동차 인지 확인을 못한 차도 많다. 특히 벤틀리... 지금 찾아봤는데 Riich라는 중국차가 아주 가관이구만. 전설의 더블 현대 마크를 단 차도 하나 봤다. 사진을 찍어놓지 못한 게 아쉬울 뿐..!! 우리나라에도 더 많은 브랜드의 자동차들이 들어와서 도로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내 선택지를 늘려줬으면 좋겠다.
2. 중국의 인민
중국은 사람이 많다. 어딜 가도 많다는 말이 정말이다. 진짜 많았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아 사람 많다, 좀 가생이로 가야지' 하고 계속 가생이로 가도 계속 사람이 많다. 아, 사람 많아. 칭다오 외의 지역에서 주말이라고 많이들 칭다오로 놀러 온 것 같았다. 여행객 차림새를 하고 길을 물어보고 다니는 사람들도 다 중국인이었다. 아, 중국인 진짜 많네.
중국 공공장소에는 문명(文明) 이란 단어가 유독 강조되어 있다. 뭐 해서 문명인 되자, 뭐 하지 말고 문명인 되자, 앞으로의 작은 한걸음은 문명으로의 큰 한걸음, 아! 그럼에도 중국 인민들에게 아직 문명은 요원한 모양이다. 말로만 들어봤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중국 중년 남성들의 베이징식 비키니는 눈의 건강을 해하였고, 길거리에서 삶아서 파는 불가사리에서 풍기는 어딘가 역한 냄새는 코의 건강을 해하였고, 바로 옆에서 대화하면서도 소리를 질러대는 중국인들의 목소리는 귀의 건강을 해하였다. 그중 단연 압권은 화장실 바로 앞에서 바닥에 오줌을 누는 아이였다. 그냥 화장실 앞 길바닥에 갑자기 오줌을 싸는데 그 누구도 말리지 않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여 얼른 사진을 찍어버렸다. 아니 중국 당이 그렇게 문명 문명 노래를 부르는데 중국 인민들이 조금이나마 신경이라도 썼으면 좋겠다.
왜 여기다 싸는 건데...
3. 중국의 공권력
오사광장 쪽에 가면 시 청사 건물 앞 광장에 무서운 붉은색의 표어가 걸려있다. 그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공손하게 손을 앞으로 모으게 된다. 자칫 해당 선전에 모욕적인 언사를 하거나 천안문, 법륜공 등을 입에 담다가 공안에게 걸리게 되면 위치 불명의 어딘가로 가서 취조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내면의 겸손함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우리네 광장이었다면 으레 반정부 시위와 반 반정부 시위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겠지만, 중국에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지녔던 자들은 30년 전 천안문 앞에서 모두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으므로 이 광장에는 체제 선전용 표어만 광장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자,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쉬지 말고 분투하자.
칭다오의 유명한 야경은 해가 거의 질 무렵 해안가의 모든 큰 빌딩에 LED 등이 동시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불빛 쇼가 펼쳐지기 전 약 10여분 동안은 중국 체제에 대한 선전이 먼저 스카이라인을 장악한다. 대충 군대에 대한 이야기, 군대와 국민이 서로 화합하고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 문명으로 가자는 이야기 등이 빨갛게 도시를 메우는데, 자유진영의 인사라면 제법 두려움을 느낄 만하겠지만 중국몽을 꾸는 이들이라면 그에 반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학교 대항 축구경기를 보러 갔을 때 다른 학교에서 하는 카드섹션을 보고 '이야, 저 학교는 대단한 단결력을 가진 경쟁력 있는 학교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초심을 잃지 말고 우리 사명을 기억하자
이런 정부 차원에서의 강요에 의한 단결력이 열심히 따라가야 하는 후발주자로써 굉장한 이득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를 따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강요되었을지 생각해보면 두려울 뿐이다.
4. 기타
- 중국 남성들의 헤어스타일은 아주 한결같았다. 아주 빡빡이이거나 매우 짧은 스포츠 컷. 그 때문인지 중국인들의 인상은 아주 무서운 편에 속했다. 다행히 요즘 내 몸이 지방으로 벌크업 되어있어 어딜 가서 꿀리지 않는 무게가 되었기에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한국어를 하면서 다닐 수 있었다.
- 아직 90년대 한국처럼 아무 장소에서나 담배를 피워댔다. 아이가 있건 없건, 심지어 잠시 구경하러 들어간 중국형 하이마트 같은 전자제품 판매점 내부에서도 담배를 피우더라. DD에서 불러 탄 자동차에서도 담배 쩐내가 가득했다.
- 중국형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어가 보니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빵집 옆에는 새우젓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으면 안 된다던가, 만두집 옆에는 두리안을 진열해놓으면 안 된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 중국 지하철은 입장 시에 공항 게이트 통과하듯이 짐 검사와 신체검사를 수행한다. 밤에 도로에 지나는 차 하나하나마다 전부 플래시를 터트려가며 사진을 찍어놓는다. 이제는 나도 중국에 개인정보를 팔았으니 자동 얼굴인식기가 나도 인식할 것이다. 한국인인 게 다행이다.
- 밤이 되면 길거리에서 부적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데,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문화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안전은 지켰으면 좋겠다.
칭다오의 숙소
나는 칭다오에서 묵은 숙박시설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을 굉장히 고대하고 있었다. 이제 그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나, 혹여나 별 것 아닌 것처럼 쓰게 될까 두렵다.
중국 방문 시 방문 비자에는 반드시 호텔에서 숙박한다고 기입해야 하지만,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였다. 이게 실수였을까? 호스트(인지 중개인인지)가 보내준 지도 사진의 화살표대로 따라 들어갔던 골목에서 우리는 이내 밖으로 나와 그 블록을 한 바퀴 돌았다. 여기는 공사장인데? 지도가 잘못됐나? 나 홀로 집에 2 영화에서 케빈이 뉴욕의 공사 중인 집에 들어갔을 때가 떠올랐다. 골목에는 족히 일 년은 열린 적 없어 보이는 나무문들과 시멘트, 아교, 철근, 환풍기 등의 공사자재들과 옆 건물의 옅은 빛이 있었다. 그 골목의 끝에 공사 중인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놀랍게도 그 문이 우리 숙소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우리는 이 문을 찾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내 생각에 중국의 건물은 우선 철근콘크리트만 다 올려놓고 분양이 되고 나서야 내부 공사 착공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니면 분양사기를 당한 인민 한 명이 외국인들을 골려주기 위해 에어비앤비로 등록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 방을 제외한 옆방들은 분양이 되지 않았는지 창문은커녕 복도 전기설비조차 되어있지 않은 콘크리트 그 자체였다. 숙소 내부로 들어가니 뭔가 있긴 했는데, 사진과는 다르게(사진 기술에 감탄할 뿐) 두세 평 되는 숙소 내부에서는 공사 시멘트 냄새, 지독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급격한 산업화를 따라가기 위해 상경한 농민공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아주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란과 파키스탄에서 더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졌었다고 증언한 재훈이도 중국몽 숙소 퀄리티에 혀를 내둘렀다.
건물 복도. 창문으로 다른 방 내부를 보면 그냥 콘크리트 덩어리만 보인다.
숙소 침대 뷰. ㅋㅋ 살다 살다 나참
하루 종일 여행하고 숙소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기대가 되기는커녕 두려움이 앞을 가렸으므로, 결국 우리는 마지막 날 하루 숙박비 중복 지출을 감수하고 공항 근처 호텔로 다시 잡았다. 그 숙소 또한 원래대로라면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 한 둘쯤 죽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퀄리티를 자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 숙소를 떠올리며 꿀잠을 잘 수는 있었다. 오래된 카펫과 담배냄새, Eagles의 Hotel California 노래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이전 숙소에 대해 에어비앤비에 남길 악플을 생각하며 우리는 웃음을 지었다.
이주한 호텔 객실의 급수장치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중국에서는 분양할 때 인테리어나 내부 수도공사 등의 인프라 작업을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분양을 한다고 한다. 전부 다 입주자가 해야 한다고 하니, 우리가 잤던 그 건물은 그냥 중국의 평범한 건물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쩐지 완다광장에 갔을 때도 바로 옆 부스에 입점이 되지 않아 가림막도 없이 그냥 콘크리트 포대, 아교 통 등이 놓여 있어도 핸드폰이나 옷을 버젓이 팔고 있더라니. 약간 베트남과 한국 중간 정도의 발전 상황을 가지고 있는 사회 같다고 생각했다.
Summary
비자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의 통행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는 점과 개인정보를 모두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중국은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인 것 같다. 중화민국의 본토를 강제로 점거하고 있는 현 습 모 국가수반과 그를 위시한 공산당 정부의 만행은 전혀 탐탁지 않지만 여행지로써의 중국은 많은 것을 충족시켜주는 탁월한 여행지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복수비자를 발급받아 쉬는 형태로 여러 번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