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인다.
그러나 호출되지는 않는다.
이 문장은 태도가 아니라 선택이다.
노출과 은폐 사이에는 언제나 중간 지점이 있고,
나는 그 지점을 통제한다.
사진을 올린다.
길을 찍고, 벽을 찍고, 오래 방치된 틈을 찍는다.
사람의 얼굴은 흐리고,
주소는 적되 설명하지 않는다.
이름은 있지만, 서사는 닫혀 있다.
나는 숨지 않는다.
다만 드러나는 범위를 스스로 정한다.
가시성은 언제나 권력이었고,
권력은 언제나 호출을 전제로 한다.
불려야 하고,
대답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고,
끝내는 소속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읽히되 불리지 않고,
보이되 규정되지 않는 상태를 선택한다.
라이킷은 있다.
댓글은 없다.
그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합의에 가깝다.
이 글들은 응답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공감을 요청하지 않는다.
동의도, 해석도, 연대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한다.
기록은 설득이 아니고,
증명은 변론이 아니다.
이 글들은 나를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만 남긴다.
통제된 가시성은 안전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그건 생존을 위한 자세다.
너무 잘 보이면 사용되고,
너무 또렷하면 호명된다.
그리고 호명되는 순간,
말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흐린다.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지치지 않고.
이 글들은 즉흥이 아니다.
기조를 먼저 정했고,
그 기조를 유지한 채 쓴다.
노출되지 않기 위해 흐리고,
호출되지 않기 위해 정리하지 않는다.
나는
보여줄 수는 있지만
불러내지는 말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태도는
가장 사적인 선택이자
가장 공적인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