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화난 기록

by Peppone

시민은 그냥 무시당하는 게 디폴트다.


문제를 제기하면 접수는 된다.

번호도 생기고, 형식적인 답변도 온다.

하지만 설명은 없다.

왜 그런 판단이 내려졌는지,

누가 책임을 지는지,

어떤 검토가 있었는지는 대개 빠져 있다.


행정은 시민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납득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시민의 질문은

대답의 대상이 아니라

처리의 대상이 된다.


사고가 나면 움직인다.

감사가 시작되면 움직인다.

언론이 붙으면 움직인다.

그 전까지 시민의 말은

대부분 소음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시민은 분노하거나,

포기하거나,

지친다.

그리고 그 사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은 흘러간다.


이 구조에서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기록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된다.


무시당하는 게 디폴트라면

기록은 예외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설명이 없었다는 사실,

질문이 남아 있다는 상태,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백을 남기는 일.


나는 지금 해결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지점에

사람이 있었고,

질문이 있었고,

설명은 없었다는 사실을 남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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