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발생 — 사랑 이전 / 시작

1. 不在 — 사랑

by Peppone



사랑은 없었다.

처음부터.


있다고 믿은 것은

빈 공간이 만들어 낸 착시였다.


우리는 서로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결핍이 빚어 낸 형상에

잠시 맞물렸을 뿐이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고

나 역시 그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어둠을 향해 손을 뻗었고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온기를 붙잡았다.


그래서 시작은 조용하다.

폭발도, 전율도, 운명도 없다.


단지

외로움의 농도만

조금 낮아졌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실체가 생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은 껍질이다.

내용이 없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를 준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착각을 제공했다.


그래서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가 되었을 때 더 선명해진다.


그가 떠난 뒤에야

나는 알았다.


사라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환각이었다는 것을.


사랑은 죽지 않았다.

애초에 살아 있던 적이 없으므로.


남은 것은 부재가 아니라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공간이다.


조용하고

비어 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완전하다.


나는 그 공간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한다.


사랑이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