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탈 — 떠나는 쪽과 남는 쪽

by Peppone



파열 이후에도 관계는 한동안 형태를 유지한다.

금이 갔다고 해서 사물이 곧바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은 남고, 습관은 남고, 심지어 말투와 안부의 형식도 남는다. 그래서 사람은 자주 착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 무언가를 되돌릴 여지가 있다고. 그러나 파열 이후에 이어지는 시간은 대개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지연의 시간에 가깝다. 이미 끊어진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조금 더 늦게 끝나기 위해 붙들고 있는 시간.


그 무렵 나는 오래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빠져나오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결심이라기보다 서서히 일어나는 물러남에 가까웠다. 말수가 줄고, 설명이 짧아지고, 마음이 먼저 한 발 물러서는 종류의 이탈. 육체보다 감정이 먼저 떠나는 방식. 어쩌면 이별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몸은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그곳을 더 이상 집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를 떠날 때마다, 남겨지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다.

떠나는 쪽은 오래전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는 쪽은 대개 마지막 순간에야 그것을 현재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별은 자주 불공평해 보인다. 한 사람에게는 오래된 결론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날 처음 도착한 소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대칭이 곧 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시간은 늘 같지 않고, 끝을 받아들이는 속도 역시 같을 수 없다.


나는 그 불균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선명해진 뒤에도, 그 사실을 너무 서둘러 칼처럼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이 아직 머무는 동안, 먼저 떠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결론은 종종 지나치게 단정해 보일 수 있으니까. 특히 상실을 오래 품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더 그랬다. 나는 이미 한 번 깊게 무너진 사람에게 또 하나의 붕괴를 던지는 방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라기보다,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의는 관계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끝을 덜 훼손되게 통과하게 할 뿐이다.

나는 그 사실도 알고 있었다. 어떤 관계는 더 머문다고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더 머무는 만큼 서로를 흐리게 만든다. 이미 중심이 비어버린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사람은 끝을 받아들이기보다 자기 감각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까지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슬픔을 존중하는 일과, 그 슬픔이 만든 궤도 안에서 함께 무너져주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므로.


그는 한때 내게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마치 내가 삶의 질서를 세우지 못해 스스로를 망치는 사람인 것처럼, 마치 내 혼란이 내 무지의 결과인 것처럼.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나를 향해, 정말 엉망진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상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말들 속에는 그가 끝내 나를 어떻게 읽었는지가 너무 선명하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을 모른 적이 없다. 내 삶에서 그것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 어디까지 무너지면 안 되는지, 무엇을 놓치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지 나는 너무 일찍, 너무 정확하게 배워온 사람이다. 나를 지탱하는 질서는 생각보다 오래된 것이고, 그것은 누군가의 충고로 비로소 생겨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앞에서 잠시 엉망진창의 형태를 허용했던 것은, 정말로 몰라서가 아니었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 질서를 버린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외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틈, 결코 넘겨주지 않았을 시간, 결코 미루지 않았을 판단을 나는 그에게만 잠시 유예했다. 그 유예는 무지의 표식이 아니라 애정의 흔적이었다. 내가 왜곡된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다소 흐트러진 것이다.


사람은 아무에게나 자기 질서의 문을 열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자기 생존의 리듬을 흔들리게 두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단정한 형태로는 아니었을지라도, 다소 흐트러진 모습으로라도, 끝내 닫아버리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는 그 예외를 사랑의 증거로 읽지 못했고, 오히려 나의 결함으로 읽었다. 그가 본 것은 내 본질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잠시 열어둔 예외의 장면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내 상태를 정확히 짚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어디까지밖에 보지 못하는지를 드러내는 문장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읽을 수 없는 것을 쉽게 혼란이라 부르고, 자기가 견딜 수 없는 복잡함을 파손이라 부른다. 그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결을 보지 못했고, 내가 견뎌온 방식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세워둔 질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자기 눈에 감당되지 않는 복잡함을 한 단어로 밀어넣었을 뿐이다. 엉망진창.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너무 성급하게 부르는 방식으로.


그 무렵 나는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떠남은 배신이 아니라 회수에 가깝다는 것을. 오래 유예했던 판단을 다시 가져오는 일, 자꾸만 뒤로 미뤘던 감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 사랑 때문에 잠시 느슨하게 풀어두었던 내 생존의 질서를 다시 여미는 일. 나는 상대에게서 멀어지는 동시에, 나에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관계가 무너질 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대개 사랑이 아니라 습관이다.

익숙한 시간, 반복된 말, 몸에 밴 기다림, 마치 내일도 이어질 것처럼 남아 있는 생활의 리듬. 사람은 그 잔여들 때문에 더 오래 머문다. 사랑이 남아서가 아니라, 사랑이 있었던 자리에 아직 생활의 그림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실체를 대신하지 못한다. 나는 어느 날 그것을 분명히 보았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흔적이구나. 관계가 아니라 그 관계를 둘러싸고 있었던 익숙함의 테두리였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내 마음은 더 조용해졌다.

분노가 커진 것도 아니고, 서운함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 관계의 끝은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소진으로 찾아온다. 할 말을 모두 해서가 아니라, 더 말해도 닿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바로 그 지점에 와 있었다. 더는 증명하고 싶지 않은 자리.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자리. 더는 함께 오해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자리.


이탈은 그래서 조용했다.

대단한 선언도, 드라마 같은 장면도 없었다. 대신 내 안에서 하나씩 정리되는 것들이 있었다. 이제 이 사람에게서 받아야 할 이해는 없다는 것. 이 관계 안에서 회복될 존중도 없다는 것. 내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예의가 내 존엄을 침식하는 방식으로 변해버렸다는 것. 그런 깨달음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을수록, 떠남은 결심이라기보다 필연에 가까워졌다.


남는 쪽과 떠나는 쪽의 차이는 마음의 속도에 있다.

한 사람은 아직 같은 자리에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떠나는 사람은 갑자기 떠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먼저 떠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내가 잔인해서가 아니라, 오래 견뎌본 끝에 마침내 내 감각을 믿기로 했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보면 그 이탈은 상대에게서 멀어지는 일이기 이전에, 나에게 돌아오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유예했던 판단, 자꾸만 뒤로 미루었던 감각, 처음부터 아니라고 말하던 내 안의 목소리.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다시 데리러 가고 있었다. 사람은 떠나면서 잃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떠남을 통해서만 회수되는 것들이 있다. 오래 미뤄둔 자기 자신, 훼손되기 전에 지켜야 했던 존엄, 끝내 양보해서는 안 되었던 어떤 내면의 질서. 나는 그 무렵 비로소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떠나는 쪽과 남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아픈가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고통은 각자의 시간 안에서 다른 얼굴로 도착하니까.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떠나는 사람 역시 아무것도 잃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는 다만, 더 늦기 전에 자기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일 뿐이다.


그 무렵의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돌아갈 수는 없는 사람. 관계의 이름 아래 더 오래 머무는 것이 애정이 아니라 소모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사람. 그래서 조용히 물러나며, 끝내 스스로에게로 되돌아가기 시작한 사람.


이탈은 배신이 아니었다.

붕괴 이후에도 무너진 그 안에 남아 있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

그것뿐이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09. 파열 — 붕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