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한동안은 시간이 앞으로 가지 않았다.
지나가기는 하는데 쌓이지는 않는 날들이 있었다.
아침이 오고 해가 기울고 다시 밤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하루를 보냈다는 감각보다 하루를 견뎠다는 감각에 더 가까운 시간. 나는 그 물 위에 가볍게 떠밀린 사람처럼, 방향 없이 며칠을 건너고 있었다.
무언가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바닥으로 가라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먼저 오는 것은 침몰이 아니라 부유였다.
가라앉기에도 아직 늦고,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어진 상태. 손에 잡히는 것은 없는데 몸은 계속 어딘가를 통과하고 있는 시간. 해야 할 일들은 남아 있었고, 정리해야 할 것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잠시 내 바깥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움직였으나 목적을 가진 사람처럼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 무렵의 나는 무감과 예민함 사이를 오갔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비워냈고, 어떤 날은 사소한 소리와 기척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렸다. 울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것도 아닌 상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잃은 채 얕은 수면 위를 떠다니는 상태. 나는 그 애매한 시간을 통과하며, 사람이 무너질 때 반드시 극적인 슬픔만 겪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때로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무 이름도 붙지 않는 미세한 떠다님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가 잠시 손에서 미끄러졌다.
정리하고 치우고 답하고 움직이는 일들은 계속되었지만, 그 모든 행위의 중심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 생활이 여전히 굴러가고는 있으나, 그 안에 들어 있는 나는 조금 늦게 도착하고 있는 사람처럼. 몸이 하루를 먼저 살고, 마음은 한참 뒤에야 그 자리에 닿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는 실제로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시기였다.
내 바깥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격들이 이어졌고, 처리해야 할 일들은 줄어들지 않았고, 하루는 자꾸만 다음 날의 압박으로 이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나는 바로 그 상태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둔해진 감각, 떠 있는 듯한 무중력, 현실과 나 사이에 얇게 생겨난 막 같은 것이 있었기에 겨우 하루씩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수영을 못한다.
물을 몹시 무서워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앞에서는 지금도 몸이 먼저 긴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렵 나는 자꾸만 물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혼자 바다 위에 떠 있었고, 때로는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한 바다에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홀로 떠 있으면서도, 완전히 공포에 잠식되지는 않았다. 무서웠지만 동시에 어딘가 이상하게 자유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은 그 시절의 내 상태를 닮아 있었다.
나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 위에 떠 있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곳, 언제든 가라앉을 수 있는 곳, 누구도 대신 건너줄 수 없는 물 위에서. 그런데도 이상하게 떠 있었고, 아주 서툰 방식으로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안정이 아니었고, 평온도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움과 해방이 한몸처럼 붙어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아무것에도 완전히 붙들리지 않는 감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멈춰 서 있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이유를 잠시 잃어버린 사람처럼. 방 안에서, 길 위에서, 일을 하다가도 문득 문장 하나 없이 멈추어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정지는 게으름과는 달랐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이 지나간 뒤에 오는 일시적인 무중력에 가까웠다. 바닥은 분명히 있는데 발은 아직 닿지 않는 상태. 나는 그 감각을 오래 설명하지 못했다.
부유하는 시간에는 죄책감이 따라붙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분명 하루를 보냈는데 비어 있는 것 같고, 분명 살아 있는데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모순 속에서 스스로를 자주 다그쳤다. 왜 이렇게 오래 떠 있는가. 왜 아직도 정확한 바닥을 찾지 못하는가.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떠 있는 동안에만 가능한 방어가 있었고, 바로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결이 있었다.
그 시기에는 사람보다 사물이 더 또렷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말은 공중에서 흩어졌고, 계획은 자꾸만 내일로 밀렸지만, 창밖의 빛이나 컵의 무게나 젖은 종이의 감촉 같은 것들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큰 의미는 사라졌는데 감각만 남아 있는 상태. 나는 그 작은 표면들에 자꾸만 시선을 두었다. 그것들이 나를 구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아직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부유는 회복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붕괴도 아니다.
그것은 그 사이의, 이름 붙이기 어려운 구간이다. 사람들은 대개 무너졌거나 일어섰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만 상상하지만, 실제 삶에는 그 중간이 훨씬 길다.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그러나 분명 이전과는 다른 물 위에 떠 있는 시간. 나는 한동안 바로 그 구간에 머물렀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쓸모없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 방향도 없는 듯 보였지만, 물은 아주 조금씩 나를 다른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익숙한 감정의 결이 닳고, 오래 붙들고 있던 문장들이 힘을 잃고, 설명할 수 없던 피로가 다른 형태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부유는 정지가 아니라 느린 이동이었던 셈이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뿐.
그러므로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를 수는 없다.
목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목적을 아직 말로 붙잡을 수 없었던 시간에 가까웠다.
나는 한동안 방향 없는 사람처럼 떠다녔지만, 아주 미세하게나마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다시 가라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서. 언젠가 닿게 될 바닥을 아직 알지 못한 채, 그저 떠 있는 방식으로 버텨낸 시간.
지금 생각하면 부유는 공백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삶이 나를 잠시 물 위에 띄워둔 상태였다.
가라앉기 전에, 다시 숨을 고르기 전에, 내가 잃은 것과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천천히 분리해보라고.
아무 방향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 시간은, 어쩌면 가장 느린 방식의 생존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