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심해 — 이후의 시간

by Peppone

그 이후의 시간은 오래 깊어졌다.

파열은 처음에 소리를 냈고, 이탈은 한동안 형태를 남겼고, 잔해와 부유는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그 모든 국면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도착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심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더 이상 큰 파도도 없었고, 격렬한 몸부림도 없었다. 대신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깊이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적막이 있었다.


심해의 시간은 무너지는 시간과 다르다.

무너질 때 사람은 오히려 자기 상태를 더 분명히 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흔들리면 흔들린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깊은 곳으로 내려간 뒤에는 감각조차 달라진다. 고통은 여전한데 표면으로 잘 올라오지 않고, 피로는 지속되는데 정확한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마음이 비어 있다기보다 압축되어 있는 상태. 말을 줄이고, 반응을 줄이고, 웬만한 일에는 표정을 바꾸지 않게 되는 상태. 나는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 시기의 나는 차분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누군가를 붙잡지도 않았고, 지난 일을 반복해서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정리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온이라기보다 수압에 가까웠다. 깊은 곳에서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조금만 더 흔들리면 안쪽이 먼저 터질 것 같은 압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무거워진 쪽에 가까웠다.


심해에서는 감정도 모양을 바꾼다.

처음의 분노는 오래가지 못하고, 선명했던 상처도 언젠가부터 탁해진다. 그렇다고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가라앉은 채 오래 남는다. 표면의 파문은 사라졌는데, 바닥의 침전물은 그대로인 상태.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보다, 어떤 일을 겪은 뒤 내 안의 결이 영영 달라졌다는 감각이 더 오래 남는다. 나는 그 변형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예전의 나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겠다는 사실을, 심해에 내려간 뒤에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 시간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극적인 장면은 이해하지만, 그 뒤에 오는 깊고 조용한 시간은 잘 알아보지 못한다. 이미 끝난 일 아니냐고, 이제는 괜찮지 않느냐고, 왜 아직도 그 안에 있느냐고 묻는 시선들 앞에서 나는 자주 침묵했다. 그 질문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심해의 시간을 겪는 사람은 대답할 언어를 쉽게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고, 더 이상 매달리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직 완전히 육지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이후의 시간은 늘 아름답지 않다.

어떤 상실은 곧장 성숙으로 이어지지 않고, 어떤 파열은 좋은 문장으로 바로 정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뒤에는 길고 무뚝뚝한 시간이 온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드라마 같은 전환도 없고, 그저 살아야 하니까 살아내는 시간. 나는 그 평범하고 무거운 시간을 심해라고 불렀다. 거기서는 누구도 나를 구하지 않았고, 나 역시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았다. 다만 버텼다.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도 못한 채, 그렇다고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나날들을.


나를 오래 봐온 친구는 처음부터 화를 냈다.

아주 오래전, 내가 그 관계를 처음 입 밖에 냈을 때였다.

그 친구는 거의 울먹이듯 말했다.

왜 너의 빛을 사라지게 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니.


나는 그 말을 오래 잊지 못했다.

그때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사람 곁에서 내가 조금씩 소모될 것이라는 것,

내가 가진 어떤 밝음이 관계의 이름 아래 오래 닳게 되리라는 것을.


그런데도 들어갔다.

어리석어서라기보다 자만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의 빛이 꽤 강하다고 믿었다.

조금 나누어주어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두운 사람 곁에서도 나는 나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더 많이 견디고 더 많이 비춰도 끝내는 남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믿음은 다정함이면서 동시에 오만이었다.

빛은 무한하지 않은데,

나는 한때 그것을 마치 끝없이 증식하는 것처럼 다루었다.

사람 하나쯤은 견딜 수 있다고,

조금 더 어두운 곳에 들어가도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떤 관계는 빛을 나누는 방식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한쪽이 오래 비추면, 결국 먼저 희미해지는 쪽이 생긴다.


그 친구는 아마 그것을 나보다 먼저 본 것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성격보다, 그 사람 곁에서 달라질 내 결을.

내가 점점 줄어들고, 스스로를 접고, 설명되지 않는 피로를 오래 품게 될 방향을.

나는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가진 것을 너무 믿었다.

내 밝음이 나를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심지어 조금은 나누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 자만이 나를 더 늦게까지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내 안쪽이 너무 조용하다고 느꼈다.

그 조용함은 안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이 지나간 뒤에 남는 공백, 혹은 말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의 안쪽 같은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반응했을 일들 앞에서도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어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깊이 내려가 있어 표면의 자극이 잘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조용함을 오래 오해했다. 무감해진 줄 알았고, 메마른 줄 알았고, 어쩌면 예전보다 더 나빠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것 역시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 안이 스스로 깊은 곳으로 내려가 있었던 것이다.


심해의 시간에는 고독이 있다.

그 고독은 외로움과는 조금 다르다. 누군가가 없어서 생기는 빈자리라기보다, 내가 겪은 깊이를 다른 누구와도 정확히 나눌 수 없다는 감각에 가깝다. 사람들은 곁에 있을 수는 있어도, 대신 잠겨줄 수는 없다. 결국 어떤 수심은 혼자 통과해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심해에서 배웠다. 위로가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위로만으로는 닿지 않는 깊이가 있다는 뜻으로.


그 깊이에서 내가 붙잡은 것은 대단한 진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하루를 끝내는 일, 밥을 먹는 일, 해야 할 답을 하는 일, 정리해야 할 것을 조금씩 정리하는 일. 심해에서는 거대한 의미보다 반복이 더 중요해진다. 살아 있는 사람은 결국 리듬으로 버티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의미를 잃은 채 리듬만 남은 사람처럼 살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리듬이 나를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회복은 감동적인 깨달음보다 그런 무표정한 반복 속에서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심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영원히 같은 깊이로 머물지는 않는다.

아주 천천히,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느리게, 사람은 다시 떠오를 준비를 하게 된다. 그 준비는 의지라기보다 변화에 가깝다. 한때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감각들이 미세하게 되살아나고, 전에는 모두 같은 어둠으로 보이던 것들 사이에 조금씩 결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그 변화를 그때는 몰랐다. 심해 안에서는 언제나 지금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러나 지나온 뒤에야 안다. 그 깊이 또한 하나의 구간이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심해는 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후의 시간이 나를 통과하는 방식이었고, 한 번 뒤집힌 삶이 스스로 다시 균형을 찾아가기 전 거쳐야 했던 깊이였다. 나는 거기서 더 현명해지지도 않았고, 더 너그러워지지도 않았다. 다만 몇 가지를 잃었고, 몇 가지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몇 가지는 영영 바뀌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깊이가 교훈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어떤 깊이는 그저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심해라고 부른다.

빛이 닿지 않았고, 말이 잘 닿지 않았고, 누구도 대신 잠겨줄 수 없었던 시간.

그러나 그 깊이에서도 나는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천천히 숨을 이어가고 있었고,

끝내는 다시 올라오기 위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이후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소리 없이, 깊게, 오래.

그리고 나는 그 깊이를 지나온 사람으로

이제 겨우 다음 장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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