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은 이유

광주·전남 행정통합과 시민 동의에 관하여

by Peppone

시민이 적어서가 아니라, 묻지 않아도 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민의 의견은 처음부터 절차에서 제외됐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는 이미 방향을 정한 상태에서 공개됐다.

광역자치단체만 통합하고, 기초자치단체의 행정구역과 기능은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AI·에너지·문화 수도, 자치경찰과 교육자치,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 같은 목표도 함께 제시됐다.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절차다.

이번 통합 과정에서 주민투표는 고려되지 않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비용이 크고, 시간이 걸리며,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시·도의회 의결이 ‘현실적인 선택’이 됐다.


하지만 행정통합은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권한 구조와 재정 흐름, 지역의 장기적 방향을 바꾸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시민은 이 과정에서 설명의 대상도, 선택의 주체도 되지 못했다.


광주는 시민 수가 많은 도시가 아니다.

행정통합의 이해관계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지역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적은 시민들의 의견조차 직접 묻지 않는 방식이 선택됐다.


이 선택은 실수가 아니다.

법적으로 가능했고, 행정적으로 편리했기 때문에 내려진 판단이다.

절차를 생략한 것이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최소선만 정확히 밟은 결정이다.


그 결과 시민은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사후에 인용되는 여론조사 수치나 통계 값으로만 남았다.

행정은 합법성을 확보했지만, 동의를 얻으려 하지는 않았다.


이 통합이 남기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단순하다.

주민 참여는 원칙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호출되는 선택지라는 인식이다.


합법은 확보됐을지 모르지만,

공동체가 동의했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 차이를 설명하지 않는 한,

이 통합은 설계가 아니라 처리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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