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는 이렇게 기록된다.

민원이 이동하는 동안 책임은 어떻게 문장으로 사라지는가

by Peppone



회피는 이렇게 기록된다


처음 민원을 넣은 곳은 광주 동구청이었다.

돌아온 답변은 질문에 답하지 않는 방식의 문장이었다.

문제가 틀렸다는 말도, 맞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책임이 사라지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답변을 그대로 들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

새로운 요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피라는 태도 자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부터 민원은 이동하기 시작했다.


권익위원회에서 광주광역시로,

광주광역시에서 다시 동구로.




알림만 보면 같은 곳으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민원은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동하는 동안

민원에는 이송 기록이 남았고,

상급 기관의 검토 흔적이 붙었고,

담당 부서와 조사관이 지정되었고,

처리기한이 연장되었다.


같은 동구청이다.

하지만 같은 국면은 아니다.


나는 이 민원이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한 번 겪었다.

행정은 마지막까지

인정 대신 문장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오류로 보기 어렵다.”

“당시 기준으로 적정했다.”

“유감이나 책임은 없다.”


이런 문장이 돌아올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그래서 나는 결과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회피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문장으로 남는지는 끝까지 보려고 한다.


이 글은 항의가 아니다.

억울함을 설득하려는 글도 아니다.

그저 민원이 어떻게 이동하고,

책임이 어떻게 얇아지거나 두꺼워지는지를

차분히 기록한 메모다.


행정은 빠르게 답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남은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해결을 요구하는 위치가 아니라,

회피가 더 이상 가볍게 사라질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글은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해결보다 기록을 택했다.

회피는 늘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은

이길 거라 믿어서 쓰는 글이 아니라,

도망치는 방식을 정확히 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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