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이 도시는 왜 설명을 시민에게 떠넘기는가

by Peppone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도시


나는 시민들이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도시의 길이 얼마나 헷갈리는지,

보행자와 자전거가 어떻게 무리하게 섞여 있는지,

표지판과 플랜카드가 왜 매번 다른 말을 하는지,

사고가 나면 누구에게 책임이 돌아가는지까지.


모두 안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걸 하나하나 지적하는 건

그 자체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들고, 에너지가 들고, 감정이 닳는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에게

A부터 Z까지 설명하라는 요구는

참여가 아니라 소모에 가깝다.


나도 먹고 살기 바쁘다.

그래서 더 잘 안다.

이 구조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구도심의 길은

걷는 사람이 기억한 길과

차가 요구하는 길이 다르다.

원래 느린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차의 규칙이 덧씌워졌고,

그 위에 다시 자전거의 속도가 올라왔다.


혼용이라는 말로 모든 충돌을 정리해 버린다.

하지만 혼용은 해결이 아니라

책임을 흐리는 방식이다.


광주천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걷는 사람들 사이로

속도를 낸 자전거가 씽씽 지나간다.

위험은 이미 발생했는데

행정은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서로 조심하세요.

서로 배려하세요.


속도가 다른 존재들을

같은 공간에 두고

배려를 요구하는 건

구조적 책임 회피다.


이 도시에서 플랜카드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를 가린다.


한때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조류독감을 앞세워

동물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동물에게 위협을 가하면 처벌받는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구조는 그대로인데

경고의 방향만 바뀌었다.


십수 년 동안 바뀐 건

플랜카드의 문장뿐이다.

길도, 속도도, 책임 구조도 그대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자체 공무원이라는 직군을

가장 혐오하게 되었다.


개인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규정상 어렵다.

검토하겠다.

추후 반영하겠다.


이 문장들이 쌓여

도시는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민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이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몸에 남은 기억을 믿고,

확신을 유보한 채,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이 도시가 제대로 작동해서가 아니라

아직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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