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더캄머약전

꽃을 처방하는 공간, 시간을 다루는 꽃가게

by Peppone

분더캄머약전은

디자인 플라워를 판매하는 공간이면서

부서진 나무 간판 약전약국을 그대로 두고 있는 자리다.


그 간판은 연출이 아니다.

복원하지 않았고, 새로 만들지도 않았다.

시간이 남긴 상태 그대로다.


약전약국은

내 아버지가 약사로 일하던 자리였다.

사람들이 몸이 아플 때 찾아오던 곳,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건네던 공간.


나는 그 자리를

지우지 않았다.

대신,

꽃을 올렸다.


약 대신 식물을,

처방 대신 계절을,

즉각적인 효능 대신

시간이 걸리는 회복을 들였다.


그래서 분더캄머약전은

꽃을 파는 가게이면서

완전히 다른 것이 되지 않았다.

치유라는 기능이

형태만 바뀌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식물을 기른다는 건

식물을 다룬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시간을 파악하는 일에 가깝다.


언제 심고,

언제 기다리고,

언제 손대지 말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히는 일.

성장은 늘 지연되고,

결과는 나중에 온다.


그래서 나는

도시농부 과정을 이수했고

전문가가 되었다.

자격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새로 심은 것이 아니다.


내 건물 앞

아스팔트를 뚫고

이미 자라나고 있던

등나무의 줄기를

내 건물을 지지대로 삼게 했을 뿐이다.


그 생명을 제거하지 않았고,

정리하지 않았고,

방해물로 취급하지 않았다.

자랄 수 있는 방향을 열어주었다.


이건 조경이 아니라

판단이었고,

관리라기보다

존중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린 인프라스트럭처를

내 자리에서 스스로 만들어냈다.


도시가 제공하지 않는

미세한 완충,

속도를 늦추는 장치,

사람과 차 사이의 여백,

계절에 반응하는 구조.


그린 인프라스트럭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예산도 없고,

정책 발표도 없고,

준공식도 없다.

하지만 일상의 안전과 리듬은

늘 이런 낮은 층위에서 결정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내 건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꽃가게를 한다.

금동꽃가게 Wunderkammer약전의 대표다.


하지만

내가 꽃을 판매하는 기준은

장식도, 유행도 아니다.

꽃 처방—Flower Prescription이다.


이곳에서는

꽃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꽃이 필요한 이유가 먼저 온다.

그래서 나는

사전 주문만 받는다.


왜 이 꽃이 필요한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그 설명이 있어야

나는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나는

국가공인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절화를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절화는

이미 잘려 나온 생명이다.

그래서 더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수분을 어디서 끊고,

줄기를 어떻게 열고,

어떤 상태에서

어떤 꽃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꽃을 다룬다는 건

예쁘게 묶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주문을 받지 않는다.

어떤 상태에는

꽃보다 기다림이

처방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전공은 인문학이다.

그중에서도 문학이다.


그래서 나는

꽃을 기능으로만 보지 않고,

절화를 재료로만 다루지 않는다.


문학은

사물을 즉시 소비하지 않게 만드는 학문이다.

의미를 늦추고,

맥락을 묻고,

말해지지 않은 상태를 읽는 훈련이다.


국가공인자격과

절화를 다루는 기술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고,

문학은

그 도구를 함부로 쓰지 않게 만드는

윤리에 가깝다.


그래서 분더캄머약전은

상품 진열로 말하지 않고,

문장처럼 구성된다.


나는 꽃을 판다.

하지만 전공이 문학이기 때문에

먼저 읽고,

그다음에 묶는다.


꽃은 여기서

말 대신 놓이는 문장이고,

처방은

한 사람의 상태에 맞춰

조심스럽게 완성되는

하나의 텍스트다.



이 글은

가게 소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왜 이렇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도시가 하지 않는 일을

내 자리에서 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시간과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는 것을

나는 남겨두고 싶었다.


금동에서,

나는 그렇게

꽃가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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