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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이 아빠 Sep 07. 2017

자전거로 기억하기

하카타에서 시모노세키 120Km를 하루만에 달리다.

어느 늦은 봄 하카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이었다. 일본에서의 잉여 생활이 질릴 때 쯤이었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억에 남고, 도전적인 일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해볼까?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디 후지산이라도 한번 등산해볼까? 대한 해협을 수영으로 건너볼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내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에 숙박객 중 한명이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는 북쪽인 삿포레에서부터 남쪽인 큐슈까지 2개월에 거쳐 여행 중이라고 했다. 가고시마가 목표라며, 웃으며 나에게 자전거 여행을 해보았냐고 묻기에 예전에 전국 일주를 해봤다고 하니 그 때부터 죽이 맞아 몇시간을 자전거와 여행에 무용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자극을 받아서일까 그 길로 야마구치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벼운 넋두리로 시작해서, 같이 여행을 하는게 어떨런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네 이 녀석은 한번 시작할이면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오히려 나보다 더 의욕적이었다. 생각할 겨를 없이 그 다음 날 짐을 싸서, 후배가 있는 야마구치로 향하였다. 평일 이른 오전 버스에는 나를 포함해 3명이 버스에 앉아 있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 할 생각에 설레임이 가득했다. 그 설레임도 잠시 조용히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든 것일까? 방송에서는 '야마구치, 야마구치' 하며 목적지에 다 닿았음을 알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기사 아저씨께 목적지를 확인하고 내렸다. 마중 나오기로 한 녀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는 편의점 하나와 건너편에 라면 가게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는 너른 들판과 학교로 보이는 건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캔커피 한잔을 마시며, 자전거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멀리서 후배인 K군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반가움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k군의 안내로 야마구치 대학내로 들어가 잠시 구경을 하였다. 대학의 분위기는 한국과 일본의 풍경은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밖에서 하는 동아리 내에서 하는 활동 모습이나 캠퍼스 내에서 있는 모습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래도 대학 내에서의 낭만은 어디를 가나 비슷해 보인다. k군은 짐을 가지러 올라간 사이 스트레칭으로 굳어 있는 몸을 풀어 보았다. 자전거로 여행을 할 생각에 설레임이 가득했다.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페달에 힘을 주었다. 초여름의 날씨에 벌써부터 온 몸에 땀이 흥건했다. 야마구치(山囗) 한자로 풀면 산의 입구라는 지명답게 오르막 길이 많았다. 흠뻑 젖은 옷과 흐르는 땀은 멈출 줄 몰랐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몸이 내 맘 같지 않았다. 잠시 멈추어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어디로 갈 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아직 유학 중인 k군은 졸업 기원을 위해 학문 신사인 호푸 텐만구에 가보고 싶어했다. 가는 길 목에 있다고 하여,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2시간여를 달려, 호푸 텐만구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k군은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는 듯 했다. 나는 기도하는 모습만을 멀리서 바라 보았다. 경내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전형적인 신사였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종종 등장하는 풍경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나에게 신사란 낭만적이거나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건 야스쿠니 신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느끼는 이질감과도 같았다. 그 나라에는 여러신을 지역마다 모시고 있다. 하지만 일제 시대 때부터 우리 민족에게 강요하는 신사 참배라는 말과 더불어서 그렇게 좋은 인식만을 갖게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기도를 마친 k군과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식당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먹을까 고민하던 중 길가에 도시락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배고픈 마음에 자전거를 내팽겨 둔 채 가게로 후다닥 들어갔다. 메뉴를 보지 않고, 덮밥과 세일 하고 있는 샐러드를 집어들고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근처, 공원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흙바람이 불어왔다. 밥에 흙이라도 들어갈까봐 화장실 벽을 등지고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더럽다는 생각도 잊은 채 배가 고프니 생각없이 먹을 것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디저트로 사 놓은 찹쌀떡과 커피를 마시고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몸에 스태미너가 돌고 있는 느낌이다. 화장실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코 끝을 찔렀고, 그제서야 화장실인걸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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