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 아시시의 향기
아시시는 인구 3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이다. 도시 전체에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영적 향기가 들꽃처럼 만발한 곳이다. 그 향기는 이탈리아를 넘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겸손의 영성으로 교회를 쇄신하고, 형제애와 단순성으로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모든 피조물을 향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는 오늘날 환경 파괴와 지구촌 분쟁의 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아시시를 1박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 스테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와보니 아쉬움이 컸다. 여유와 평화가 넘치는 이 도시에서 한 며칠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맑고 고요한 영혼의 땅. 순례라는 목적마저 내려놓고 그저 한동안 머물고 싶었다.
아시시 주변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머물거나 발길이 닿았던 장소가 흩어져 있다. 기사가 되려고 출전하던 중 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스폴레토 계곡, 동료들과 함께 첫 거처로 삼았던 리보토르토의 헛간, 처음으로 형제들을 위한 회칙을 작성했던 폰테 콜롬보와 은둔소, 처음으로 성탄 구유를 꾸몄던 그레치오의 동굴, 사나운 늑대를 온순하게 길들였던 굽비오 마을, 오상의 은총을 받았던 라베르나 산 등등. 모두가 순례 코스로 답사해 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 과연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는 교회사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거룩한 영적 오누이이다. 비슷한 오누이로 성 베네딕토와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이란성 쌍둥이였다. 남겨진 일화가 많지 않다. 『베네딕토 전기』에는 딱 한 번 스콜라스티카가 등장한다. 밤이 늦도록 대화를 나누다 돌아가려는 오빠를 붙잡기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결국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고, 두 오누이는 밤새도록 대화를 나눈다. 침묵과 기도로 살아가는 수도승의 내면에 이토록 따듯한 인간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는 핏줄의 오누이는 아니었지만, 스승과 제자로서, 영적인 동반자로서 아름다운 일화를 많이 남겼다. 아시시에는 이 두 성인의 삶을 간직한 네 곳의 중요한 성지가 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성 클라라 대성전, 포르치운쿨라와 성 다미아노 성당이다. 두 성인·성녀의 영성을 잇는 프란치스코회와 클라라회가 관리하는 성당들이다.
아시시의 수도원들은 따로 순례자를 위한 손님의 집을 운영하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도시 외곽에 숙소를 정하고 네 곳의 성당을 연결하는 순례 코스를 짰다. 숙소에서 출발해 네 성당을 차례로 방문하는 길은 10km 남짓이었다.
아시시는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도시이다. 옛 성곽이 도시를 감싸고 있고, 그 바깥으로 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그 평원의 초입에 성 다미아노 성당이 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가 결정적인 회심의 계기를 맞은 곳이다.
성 다미아노(San Damiano)는 초대교회 순교자의 이름이다. 이곳에는 아마 9세기나 10세기부터 성당이 있었다. 13세기에는 버려진 채 쓰러져 가고 있었다. 청년 프란치스코는 1205년 늦가을, 이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그는 즉시 성당 복구공사를 시작했다. 나중에 그 말씀은 사치와 부패 등으로 무너져 가던 가톨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음성은 오래전부터 성당에 걸려 있던 십자가로부터 들렸다. 12세기 시리아 수도자가 그렸다는 비잔틴 양식의 십자가였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로 부른다. 이 십자가는 현재 성 클라라 대성전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이곳은 또 성녀 클라라가 수도 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클라라는 18세 때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듣고 수도 생활을 택했다. 클라라와 자매들은 1212년 말경부터 이곳에 살았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가난과 기도, 관상을 실천했다. 이곳은 클라라회의 첫 번째 수도원이면서, 클라라 성녀가 숨을 거둔 장소이다.
자매들의 수가 늘어나자, 클라라는 수도 회칙을 작성해 교황에게 인준을 요청했다. 그 회칙은 너무나 엄격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반려되었다. 1253년 인노첸시오 4세 교황이 회칙을 인준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8월 11일에 클라라는 가슴에 회칙을 꼭 품은 채 59세로 숨을 거뒀다. 2년 뒤에 성녀로 시성 되었고, 1260년에 성녀 클라라의 이름을 딴 대성전이 완공되었다.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성 클라라 대성전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아시시 시내를 향한 오르막으로 1km 남짓 걷는다. 대성전은 아시시 성곽 안에 있다. 성녀 클라라의 유해는 이 성당의 중앙 제대 아래 지하에 안장되어 있다. 철망 사이로 선종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밀랍 인형을 볼 수 있다. 클라라는 임종을 앞두고 동료 자매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사랑에 넘치는 유언을 남겼다.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께서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회개하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쳐 주신 것과 같이 자매들은 거룩한 단순성과 겸손과 가난의 길을 따르며 또한 값지고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항상 노력하십시오.” (유언 17)
다음 날 새벽, 다시 한번 대성전을 방문했다. 성전 중앙의 오른쪽에 있는 경당에서 기도와 미사를 봉헌했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의 진본을 보관하고 있는 경당이다. 전날 낮에 방문객으로 붐비던 성당은 고요했다. 모두 10명 미만의 신자들이 아침기도를 함께 바쳤다.
클라라회 수녀님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제대 오른쪽에 철망이 있고 그 너머에 수녀님들이 있었다. 신자들이 앉은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기도와 성가 소리만 철망을 넘나들었다. 미사가 시작되자 신자들이 조금 더 참석했다. 사제는 수녀님 계신 쪽을 바라보며 미사를 집전했다. 영성체 시간에 철문이 잠깐 열리고 사제가 그쪽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