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과 성인 사이

07-02 성 프란치스코

by Peregrinante in Spem

“가톨릭교회를 대표하여 여러분의 용서를 구합니다. 역사적으로 여러분께 가졌던 비그리스도교적이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태도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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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한 개신교 교회를 방문한 자리였다. 그곳은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당한 발도파의 교회였다. 가톨릭에서 쫓겨난 교회를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는 교황의 모습,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역사적인 화해였다.


발도파는 12세기 후반 청빈과 교회개혁을 주장했던 발도(Petrus Valdus)를 따르는 교파이다. 그는 프랑스 리옹에 살던 부유한 상인이었다.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복음적 삶을 실천했다. 거지처럼 남루한 옷을 입고 거리에서 설교했다. 추종자가 늘어나면서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로 불리며 세를 떨쳤다. 결국 가톨릭교회와의 갈등 속에 이단으로 파문당했다. 가혹한 박해 속에 숨거나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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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고장, 아시시에 와서 발도파를 생각하는 것이 그리 엉뚱한 주제는 아니다. 두 사람은 너무나 비슷한 이상을 공유했고, 비슷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출생 연도를 보면 발도가 1140년으로 프란치스코(1182년)보다 앞선다.


궁금한 대목은 이것이다. 비슷한 청빈을 주장하고도 왜 한쪽은 성인으로 추앙받고, 다른 쪽은 이단으로 파문당했을까. 발도파만이 아니다. 교회 역사에서 교황청의 사치와 부패를 비판하면서 가난과 쇄신을 부르짖은 인물은 꽤 많다.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승이었던 마르틴 루터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결국 파문당했고, 그 파문은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다.


프란치스코는 무엇이 달랐을까. 그는 어떻게 아슬아슬한 이단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교회에 등을 돌리는 분리의 길을 가지도 않았을까. 그의 방식은 발도나 마르틴 루터와 무엇이 달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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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프란치스칸 영성의 으뜸으로 가난을 꼽는다.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러나 과연 가난을 성 프란치스코만의 고유한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태 19,21) 가난은 성경이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사막의 수도승들도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따랐다. 복음적 삶에서 가난은 핵심 요소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보여준 독특한 카리스마는 겸손이 아닐까 한다. 이 평범한 단어로는 부족하다. 작고 소박하고 스스로 낮추는 영성이다. 그는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청빈 운동을 주창하지 않았다. 스스로 가난했을 뿐이다. 교회의 부패와 사치를 질타하지 않았다. 스스로 모범을 보였을 뿐이다. 누구를 꾸짖지 않았다. 감화시켰을 뿐이다. 사실 타락한 부와 권력을 악으로 몰아세우는 일은 아주 쉬운 방법이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물질적 가난을 뛰어넘는 영적 가난이다. 가난한 영혼에서 피어난 꽃이 겸손이다. 그는 수도회를 창설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형제들’로 불리는 소박한 공동체이기를 바랐다. 큰 성당을 짓지 않았다. 큰 수도원도 짓지 않았다. 아름다운 건물과 여유로운 의식주를 갖춘 수도 생활은 그의 꿈이 아니었다. 움막이나 헛간을 수리해서 형제들의 거처로 삼았다. 스스로 일하고 때로는 탁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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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가톨릭의 부패와 일탈은 분명 개혁을 요구하고 있었다. 12세기는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이 움트는 시기였다. 그 어지러운 시대에 복음적 삶을 꿈꾸는 다양한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단이라고 꼭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파문당한 이단이 도덕적으로 더 우위일 수 있다. 이단이냐 아니냐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프란치스코는 겸손과 순명의 자세로 차별적인 길을 걸었다. 그의 방식이 발도나 마르틴 루터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승복을 낳는 더 아름다운 방법이지 않을까. 그는 소리 높여 외친 사람들보다 더 크게 교회를 바꾸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낮춤으로써 진정으로 위대해졌고, 작고 소박함으로 오히려 찬란한 광채를 흩뿌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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