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
프란치스코는 생애 말년에 여러 질환에 시달렸다. 위장병과 눈병이 그를 괴롭혔다. 1224년 그의 몸에는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을 재현한 다섯 군데 상처가 생겼다. 그런 몸으로 당나귀를 타고 움브리아의 여러 마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1225년 봄 성 다미아노 수녀원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았다. 이때 그의 영성을 잘 드러내는 아름다운 문학 작품 「태양의 노래(Cantico di Frate Sole)」를 지었다. 그는 해, 달, 별, 바람, 물, 불, 땅 등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부르며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자고 초대한다. 죽음을 예감하면서 죽음조차도 우주적 형제애로 받아들인다.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최민순 신부 옮김)
1226년에는 형제들이 그를 시에나로 모셔가 눈병을 치료받도록 했다. 프란치스코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아시시로 돌아가자고 요청한다. 그리고 돌아와 저 아름다운 영적 유언을 구술했다.
그리고 우리 생활을 받아들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또한 안팎으로 기운 수도복 한 벌과 띠와 속옷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 더 가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유언 16-17)
10월 3일 해 질 무렵에 그토록 사랑했던 포르치운쿨라에서 자매인 죽음을 맞이했다. 사후 2년이 채 안 된 1228년에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성인의 유해는 인근 성당에 임시로 안치했다가 1230년 대성전 준공과 함께 지하 경당으로 모셨다.
이곳이 성인이 잠들어 있는 지하 경당이다. 유해를 담은 항아리를 석관에 넣어 봉인하고 아래층 성당의 제대 바로 밑 위치에 안장했다. 돌기둥으로 석관을 감싸고, 그 주위에 다시 철제 보호망을 둘렀다.
1년에 수백만 명의 순례객이 이곳에 와 기도한다. 저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다. 나그네도 기둥 주위를 돌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기둥 뒤쪽에서 기도하는 수녀님의 모습이 보였다. 철망에 이마를 댄 채 오랫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어깨를 들썩이는 듯하더니 끝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은 거대한 건축물이다. 성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시성식 바로 다음 날 초석을 놓았다. 2년 만인 1230년에 1차로 아래층 성당을 완공했다. 1239년 다시 위층 성당을 얹는 공사를 시작해 1253년에 완공했다. 이로써 길이 80m, 너비 50m의 웅장한 석조 건축물이 완성됐다.
그토록 작고 소박한 영성을 추구했던 성인의 유해가 온통 육중하고 장엄하고 화려한 성전의 지하에 잠들어 있다. 결코 성인께서 바라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을 위해 지은 성당이나 초라한 집이나 다른 건물이 회칙에 따라 서약한 거룩한 가난에 맞지 않으면 형제들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명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항상 ‘나그네나 순례자’같이 기거하십시오. (유언 24)
성인은 심지어 형제들의 거처를 돌로 지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무와 풀과 흙으로 지은 소박한 거처에서 살도록 요청하고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 그의 제자이면서 동료 형제였던 토마스 첼라노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가르치기를, 거처를 만들 때는 돌로 하지 말고 자그마하고 가난하게 나무로 만들라고 하였다. 검소한 계획에 맞추어 작은 곳을 마련하라고 한 것이다.”(2첼 56)
이 부분은 프란치스코 영성의 핵심 중 하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돌로 하지 말고 나무로 지으라는 가르침은 프란치스코가 추구했던 작고 소박한 삶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그는 이 세상을 스쳐 가는 ‘나그네나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고자 했다. 나그네는 곧 떠날 사람이다. 순례자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호화로운 집도, 화려한 가구도 다 소용없다. 봇짐 속에 챙겨갈 물 한 병만도 못하다. 돌로 지은 집에 살지 말라는 성인의 당부는 정작 당신의 유택에는 적용되지 못했다. 후인들은 그분을 크고 웅장한 돌집 속으로 모셨다.
수녀님이 떠난 자리에 나그네도 무릎을 꿇었다. 그 간절한 기도의 마음을 닮아보려고 같은 모습으로 한동안 이마를 기댔다. 나는 이제껏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던가. 가면을 쓴 채 살아온 거짓의 삶, 그것이 거짓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속일 만큼 속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가면으로 속인 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부끄러운 자화상이여.
내 안에 작음의 영성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가. 진정으로 위대한 가치는 위대하지 않음이다. 작고 소박하게, 단순하고 겸손하게, 이름을 감춘 채 흔적 없이, 나서지 말고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 존경받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뭔가 이루고 싶은가. 그 뿌리에 탐욕과 교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스스로 낮출수록 깊어지리니, 그 작음의 영성으로 남은 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