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작고 초라한 것들을

07-04 포르치운쿨라

by Peregrinante in Spem

포르치운쿨라(Porziuncola)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조각’이라는 뜻이다. 아시시 시내에서 좀 떨어진 들판에 있던 작은 경당의 이름이다. 13세기에는 폐허처럼 버려진 이곳을 프란치스코가 직접 고쳐서 기도하는 장소로 삼았다. 그는 이 볼품없고 허름한 성당을 무한히 사랑했다. 작고 가난하고 초라한 것들을 사랑한 그의 영성이 이곳에서 싹텄다고 할 수 있다.


“내 아들들이여, 이곳을 절대로 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한쪽 문으로 밀려나거든 다른 쪽 문으로 다시 들어오십시오. 왜냐하면 여기는 정말로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완덕 83)


20250917_170544_AI-cut_w.jpg


이십 대 후반의 프란치스코는 어느 날 이 성당에서 사제가 봉독하는 복음 말씀을 듣게 된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마태 10,9-10) 이 말씀에 크게 감동한 그는 즉시 허름한 옷으로 바꿔 입고, 신발을 벗어 버리고, 허리띠 대신 가느다란 새끼줄을 둘렀다. 이 복장은 나중에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이 되었다. 이후 몇몇 형제들이 합류함으로써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작은 형제회’가 이곳에서 태동했다.


죽음을 예감한 프란치스코가 지상의 삶을 마감할 장소로 택한 곳도 이 성당이었다. 그는 죽음이 임박하자 알몸으로 맨땅에 눕혀달라고 요청했다. 옷 한 벌조차 소유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포르치운쿨라는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작음의 영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전 세계 모든 프란치스칸의 영적 고향이라 할 만하다.


IMG_1460_w.JPG


현재 포르치운쿨라는 더 큰 성당 안에 들어있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1)이 포르치운쿨라를 알을 품듯 보호하고 있다. 16세기에 대성전을 지으면서 경당을 덮어씌우는 형태로 건축했다. 대성전은 1569년에 공사를 시작해 1679년에 완공했다.


20250917_140441_w.jpg


프란치스코도 육체적인 욕정과 유혹에 시달렸음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전기는 악마가 싸움을 걸어왔다고 서술한다. 악마는 가장 격한 성욕으로 그를 유혹했다. 프란치스코는 채찍으로 자신을 때리며 저항했지만, 욕정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방문을 열고 뜰로 나가서 눈 속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눈사람을 여러 개 만든 뒤 소리쳤다. “보아라, 이게 네 마누라이고, 네 자식들이다. 서둘러 옷을 입혀라, 다 얼어 죽게 생겼구나.” 그제야 유혹이 물러갔다. (2첼, 116-117)


이 일화는 성인에 관한 초기 사료에 등장한다. 이 장면을 목격한 동료도 있다. 후대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좀 더 극적인 전승을 기록했다. 유혹을 받은 프란치스코가 가시덤불에 몸을 던졌다는 내용이다. 그의 몸이 닿은 부분이 가시 없는 장미 넝쿨로 변했다.


santuario-porziuncola-frati-minori-umbria-roseto-img-1-cut_w.jpg


성인이 유혹에 시달린 장소는 포르치운쿨라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움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장미 경당을 지었다. 가시덤불이 있던 곳은 장미 정원으로 꾸몄다. 포르치운쿨라가 있는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과 이어져 있다. 장미 경당 안에는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소재로 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모두 다섯 장면 가운데 왼쪽의 두 그림이 프란치스코의 유혹을 다루고 있다.


사실 가시덤불에 몸을 던진 일화는 성 베네딕토의 전기에도 나온다. 70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성인이 비슷한 처방으로 유혹을 물리쳤는지, 두 전승이 서로 섞였는지 알 수 없다.


20250917_170034_w.jpg


포르치운쿨라는 원래는 성 베네딕토회 소유였다. 인근의 베네딕토회 원장이 아무런 보상이나 조건 없이 성당을 넘겨주었다. 프란치스코는 해마다 물고기 한 바구니를 보내 감사를 표시했다. 베네딕토회에서는 답례로 기름 한 통을 보내오곤 했다. (페전 8) 이 아름다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1) 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거처를 돌로 짓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