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아, 어찌하여 신음하느냐

07-05 수도승의 유혹

by Peregrinante in Spem

성인들도 유혹에 시달렸다는 일화는 인간적이고 다행스럽다. 늘 유혹에 넘어가는 평범한 우리에게도 변명할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죄인 아닌 성인 없고, 성인 못 될 죄인 없다.” 어느 분의 말인지는 잊었지만, 참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이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수도승도 당연히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그 유혹이 식욕이나 정욕이나 물욕이라면 어쩌면 쉬운 상대일지 모른다. 그 정도는 가볍게 물리칠 수 있는 기개 높은 수도자들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그런 육적인 유혹이 아니다. 마음과 정신의 영역을 파고드는 유혹은 정말로 견뎌내기 어렵다. 가령 교만이라든가 명예욕 같은 욕망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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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사막의 수도승들이 유혹에 맞서는 숱한 일화를 남겼다. 사막 수도승이면서 뛰어난 저술가인 에바그리우스는 수도승을 괴롭히는 유혹을 여덟 가지 악령으로 정리했다. 탐식, 음욕, 탐욕, 슬픔, 분노, 영적 태만, 헛된 영광, 교만이다. 그 하나하나의 정체를 까발리면서 수도승의 내적 투쟁을 독려한다. (*1)


탐식과 음욕과 탐욕은 육체를 공격한다. 슬픔과 분노와 영적 태만은 정신을 공격하는 악령이다. 욕망은 집착이며 갈망인데, 그 좌절의 상처가 슬픔과 분노로 나타난다. 영적 태만은 좀 특별하고 교묘한 악령이다. 영혼의 권태, 무기력, 낙담, 실의 같은 상태를 말한다. 지칠 대로 지친 욕망의 결과이고, 슬픔과 분노의 결합이 낳은 자식이다. 이놈은 수도승의 여정을 끝없이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느끼도록 해 중도 포기하도록 유도한다.


그 모든 공격을 물리치고 수도 생활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 때도 악령은 찾아온다. 가장 치명적이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헛된 영광과 교만의 함정이다. 널리 이름이 알려지고 존경받고 싶은 마음, 멋진 설교로 박수받고 싶은 생각, 자존감과 명예라는 왕관을 쓰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는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예언자로 믿고 모든 것을 예견하는 은사를 받았다고 믿게 만든다. 한평생을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수도승도 이 마지막 공격에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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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유혹은 수도승에게만 찾아오진 않는다. 세상 모든 인간이 시달리는 공통된 유혹이다. 우리가 아무런 자각이나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이미 이런 악령들에게 영혼을 잠식당했기 때문이다. 수도승은 영혼을 침범해 오는 악령들과 매일 전투를 치른다. 그러기에 훨씬 큰 고통을 느낀다. 그들은 악령의 종류와 성격, 무기를 자세히 분석해 드러내고 서로 격려한다. 사실 어떤 유혹의 주체가 악령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공격은 막아낼 수 있다. 햇빛 아래 드러내면 음습한 안개는 맥을 못 추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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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혹이 꼭 해로운 존재일까. 유혹은 이겨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영혼을 단련한다. 수도승에게 유혹은 영적 진보를 위한 조역이기도 하다. 사막의 안토니우스는 말한다. “유혹을 경험하지 못하면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유혹을 피하면 아무도 구원되지 못할 것입니다.” (금언 5)


유혹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온갖 어둠을 발견한다. 음란한 상상, 비겁한 이기심, 부도덕한 간계들과 만난다. 수도승은 이런 유혹과 싸우면서 영적으로 성장한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내리며 어찌하여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시편 42,12)


때로는 이겨낼 수 없는 유혹조차도 우리에게 유익하다. 수도승은 자신의 무능과 역부족을 절감하는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난다. 그분의 도움과 은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때 비로소 통곡하며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내어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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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은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아니라 허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게 만든다. 유혹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참된 겸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오직 하느님만이 유혹과의 투쟁에서 우리에게 승리를 선물할 수 있다. 그분께 맡기는 순간 영혼은 전투적인 경계심을 풀고 온전한 평화를 누린다.


사실 우리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혹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따라다닌다. 유혹은 차라리 삶의 일부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혹을 인정하고 슬기롭게 다룰 필요가 있다. 유혹을 경계하는 사람은 늘 깨어있을 수 있다. 욕정이나 죄까지도 의미가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어진 곳에서 배운다. “오 복된 죄여! (O Felix Culpa!)” 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을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겠다.



(*1) 『프락티코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허성석 옮김, 2011,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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