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영성 고전] 5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형제들은 당대에 이미 수천 명을 넘어섰다. 그들 모두가 가난을 열망하며 합류했지만, 프란치스코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야기했다. 프란치스코 공동체는 큰 수도원과 잘 구성된 조직을 갖춘 수도회가 아니었다. 소박한 거처에서 소규모로 작고 가난하게 살겠다는 이상을 버릴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 회칙을 인준받고 총장을 선출하는 등 수도회로서 이제 막 출범한 단계였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면서 형제들 사이에 내분이 생겼다. 형제회의 미래를 놓고 갈등이 깊어지자, 프란치스코는 초대 총장에서 물러났다. 은수처에서 기도하며 지냈지만 기쁨을 잃은 채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위기는 형제들의 증가와 함께 학자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그들은 6천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열두 명이 살던 때처럼 지낼 수는 없다고 했다. 초창기의 이상과 회칙을 상식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프란치스코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속적 지혜로 요구하는 형제들의 정신이 자신과 같지 않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생활양식에 사명감을 느꼈다. 그분께 처음 받은 영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초창기 형제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도 피해야 했다. 분별력이 필요했지만 쉽지 않았다.
프란치스코는 물러나 기도하며 포르치운쿨라를 생각했다. 15년 전 몇몇 형제들과 함께 진정한 기쁨을 누리며 살았던 보금자리였다.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였다. 단순하고 순박한 형제들은 서로에게 순명했다. 복음만이 규칙이었다. 다른 규칙은 필요하지 않았다. 복음적 가난을 살겠다는 한 가지 열망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했다. 그리하여 공동체는 급속도로 커졌다.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단순함과 일치는 사라지고, 형제들은 분열 속에 서로를 비난했다. 나중에 들어온 설득력 있고 영향력 있는 형제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회칙이 지금의 공동체에 맞지 않는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조직적인 체계와 위계질서를 요구했다. 오래된 수도회의 회칙을 참조해 바꾸고, 건물도 증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란치스코도 알고 있었다. 다만 형제들이 복음적 가난과 단순함을 잃어가는 것이 슬펐다. 분열이 눈앞에 와 있었다. 수도회의 앞날은 어두워 보였다. 그는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복음을 합리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로 실천하느냐 내버리느냐일 뿐입니다.” 그는 아들을 빼앗아 가려는 사람 앞에 선 어머니처럼 외쳤다.
온몸이 아팠다. 원래 위장병에 간도 나빴지만, 눈병까지 겹쳤다. 크나큰 슬픔이 밤낮으로 그를 짓눌렀다. 그는 물러나 침묵 중에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다. 형제들을 떠나 산속의 은수처로 향했다.
산길을 걸었다. 늦여름의 고즈넉한 저녁이었다. 산봉우리 너머로 해가 지고, 노을빛도 점차 옅어졌다. 푸르스름한 안개가 계곡에 깔리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어두워진 뒤에야 은수처에 도착했다. 늘 해왔던 대로 평화의 인사를 건넸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숲속에서 메아리가 응답했다. “평화가 있기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났다. 어디에나 봄은 찾아왔다. 느지막이 새싹을 틔운 큰 나무들, 연초록 황금색 작은 잎새에 햇빛이 반짝거렸다. 새들도 봄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끼 낀 나무 밑, 습기 찬 땅속 낙엽 더미를 헤치고 나온 오랑캐꽃이 향기를 내뿜는다.
성주간 금요일에 프란치스코는 온종일 고독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고통이 어느 때보다 깊이 와닿았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그토록 처절한 고독감을 표현한 주님의 심정을 이때처럼 절실히 느낀 적이 없었다. 완전한 일체감 속에 주님의 고독과 자신의 고독이 겹쳐 보였다.
한 소리가 그를 불렀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양들의 목자로 세웠을 뿐이다. 너는 내가 목자들의 으뜸이라는 사실을 잊었단 말이냐? 이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너를 택한 것은 너의 재주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준 은총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너의 형제들을 부른 것은 바로 나이다. 내가 양 떼를 지키고 풀을 뜯게 한다. 내가 목자이고 주님이다. 내 일까지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프란치스코는 교만과 겸손에 대해 다시 깨닫는다. 주님께 맡기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 모습이야말로 교만이다. 은총 없이 이뤄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더 겸손해야 한다. 주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그걸 믿고 기쁘게 나아가자.
그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되찾았다. 영혼이 날개처럼 가벼워지면서 뿌듯해졌다. “하느님, 당신만이 위대하십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계곡에는 살포시 밤안개가 내리고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였다. 마중 나온 형제에게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오늘 저녁 제 안에서 하늘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종달새가 주님의 승리를 끝없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 프란치스코회는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 카푸친 작은 형제회로 분리되었다. 이들은 한 뿌리에서 돋아난 세 가지로, 서로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프란치스칸 영성을 실천하고 있다. 이 세 수도회를 프란치스코회의 제1회라 부른다. 제2회는 클라라회, 제3회는 재속회이다.
** 『가난한 이의 슬기』(1982, 분도출판사)는 프랑스 프란치스코회의 엘르와 르끌레 신부의 저술이다. 형제회의 분열 당시 프란치스코의 고뇌를 매우 깊이 있게 공감하고 진단한 작품이다. 150쪽이 안 되는 적은 분량이지만,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을 서정적인 필치로 풍경화처럼 그려냈다. 그 내용을 짧게 요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