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1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금욕과 고행으로 스스로 단련한 수도자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세상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는 영적 스승이 된다. 그때쯤 교만의 유혹이 찾아온다. 그 고귀한 이상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진다. 사치와 방종에 빠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과도한 소명 의식이 싹튼다. 세상을 질타하고 개혁을 부르짖는다. 그때부터 그는 시대의 예언자가 되고, 열렬한 추종자가 생긴다. 때로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다.
15세기 말, 성 도미니코회의 수사 사보나롤라가 그런 사람이었다.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불꽃 속에 스러진 이 수도자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그를 마르틴 루터 이전의 4대 종교 개혁가의 한 사람으로 추켜올린다. 가톨릭의 평가는 당연히 차갑고 싸늘하다. 거짓 예언으로 세상을 속인 빗나간 수도자로 본다. 과연 그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시뇨리아 광장에 섰다. 피렌체의 중심이면서, 도시의 역사가 녹아 있는 곳,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바다의 신 넵투누스를 조각한 분수가 물을 뿜고 있다. 그 뒤로 베키오궁과 시계탑이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비롯한 여러 동상과 조각들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분수대 난간에 기댄 채 이 광장에서 타올랐던 세 번의 불꽃을 떠올렸다. 1497년 2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그 1년 남짓한 기간에 이 광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이탈리아를 넘어 온 유럽을 뜨겁게 달궜던 그 화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불꽃. 1497년 2월 7일이다.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다음날은 사순절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이 된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금식과 금육, 회개와 보속을 실천하는 기간이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보내는 기간이다. 그러니까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자 이상한 풍습이 생겼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고기를 먹으며 마시고 노는 축제가 생긴 것이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춤과 노래, 가면무도회 등을 열었다. 보통 일주일 정도 이어지는 세속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사육제의 마지막 날. 이 광장에는 거대한 산이 생겼다. 높이 18m, 둘레 72m나 되는 엄청난 산이었다. 자세히 보니 모두 값비싼 사치품과 귀중품이었다. 보석과 패물, 화장품과 옷, 호화로운 가구 등 허영과 사치의 상징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이교도적인 내용의 그림과 조각들, 부도덕한 풍습을 담은 서적과 예술품들이 한꺼번에 버려졌다. 자발적으로 가져온 사람도 있었지만, 한 수도자를 추종하는 소년들이 몰려다니며 압수해 온 물건도 많았다. 사람들은 소년들을 ‘사보나롤라의 아이들(fanciulli)’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모아 온 물건이 산처럼 쌓였다.
불길이 타올랐다. 바닥에서 시작된 불길은 금세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피라미드 전체를 휘감았다. 시뻘건 화염이 악마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렸다. 군중들이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손뼉을 치고 주먹을 흔드는 사람들의 얼굴이 불꽃으로 번들거렸다.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사람도 보였다. 광장 한쪽에 도열해 있던 소년들이 고요히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의 온 성당들이 일제히 종을 울렸다. 마치 악령과 싸움을 벌이듯 빠르게 울림을 토했다. 밤이 이슥해져서야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이 흩어진 광장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악마의 시체처럼 웅크린 잿더미 위로 몇 방울 비가 떨어졌다.
역사는 이날의 사건을 ‘허영의 소각(falò delle vanità)’으로 기록한다. 아마도 그들 자신의 작명일 것이다. 그날 타오르는 불꽃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열렬히 기도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검은 수도복에 후드(cappuccio)를 쓴 남자. 강렬한 눈빛과 두드러진 매부리코가 날카로운 인상을 만들어냈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성 도미니코회의 수사였다. 이날 시뇨리아 광장의 불꽃을 기획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사보나롤라는 누구인가.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거룩한 수도자이면서 교활한 정치가. 예언자를 자처한 선동가, 가톨릭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한 종교개혁의 선구자, 거짓 예언과 선동으로 세상을 속인 미치광이 광신도. 그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엇갈린다. 이 폭넓은 스펙트럼의 어디쯤 그의 참모습이 있을까.
15세기는 중세 가톨릭의 부패와 방탕이 극으로 치닫던 시대였다.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이 흔하게 자식을 두었고, 성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성직매매가 암암리에 성행했다. 사보나롤라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회개하라. 이제 곧 신의 회초리가 내릴 것이다.” 그의 눈에는 이탈리아 전체가 타락으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로 보였다. “오, 피렌체여, 로마여, 이탈리아여, 신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예언한다. 이제 곧 눈물의 강이 흐를 것이니, 회개하라.”
때마침 프랑스 군이 피렌체를 점령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나폴리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왔다. 시민들은 예언이 적중했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사보나롤라가 다시 나섰다. 프랑스 왕을 만나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썩어빠진 교황 알렉산데르 6세를 퇴위시키고 가톨릭교회를 개혁하라. 그것이 당신에게 내린 신의 명령이다.” 프랑스 왕은 기꺼이 신의 말씀에 복종하겠다고 다짐했다. 피렌체 시민의 안전도 약속했다. 이때부터 피렌체는 사보나롤라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시민들은 봉기를 일으켜 메디치 가문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복원했다. 사보나롤라 추종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두 번째 불꽃. 이듬해 4월 7일이다. 1년 동안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이탈리아 연합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빼앗긴 도시를 되찾았다. 교황은 궁지에서 벗어나 기세를 회복했다. 불손한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금지하고 로마로 소환했다. 사보나롤라는 신의 명령을 내세우며 거부했다. 프랑스 왕에게 이탈리아를 점령하라고 거듭 촉구했지만,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로마와 피렌체, 교황과 사보나롤라의 대립 구도가 팽팽하게 이어졌다. 교황은 끝내 사보나롤라를 파문했다. 피렌체 시민들도 많이 돌아섰다. 일방적인 사보나롤라 지지가 줄어들고 반대파가 상당히 많아졌다.
그때 프란치스코회가 싸움을 걸어왔다. 평소 사보나롤라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란치스코회의 젊은 수사가 ‘불의 심판’을 제의했다. “당신이 진정한 예언자라면 주님께서 기적으로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 당신도 늘 그렇게 말해오지 않았는가. 나와 함께 불 속을 걸어보자.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화상을 입지 않는다면 당신을 예언자로 인정하고 기꺼이 따르겠다.” 사보나롤라는 회피했지만, 도미니코회의 젊은 수사가 도전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사부 사보나롤라의 말씀대로 신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4월 7일 시뇨리아 광장에 길이 30m짜리 터널이 만들어졌다. 장작으로 쌓아 올린 터널에 기름을 뿌리고 여기저기 화약을 끼워 넣었다. 터널의 높이는 2.4m, 폭은 6m로 기록돼 있다.
약속된 정오가 되자 양쪽 수도회의 수사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갈색 수도복의 프란치스코회는 산타 크로체 성당 쪽에서 등장했다. 광장에서 300m 떨어진 그들의 성당이었다. 검정 수도복의 도미니코회는 광장 북쪽에서 십자가를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나타났다. 그들의 본당인 성 마르코 성당은 1km쯤 떨어진 거리였다.
두 수도회가 입장을 마치자,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이 흥미로운 대결을 구경하려는 시민들로 광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대부분 이른 아침부터 몰려나와 벌써 몇 시간씩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심판은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상대의 옷이 수상하다며 벗어보라고 요구하거나, 성스러운 십자가를 불 속에 들고 가서는 안 된다고 트집 잡으며 몇 시간을 허비했다. 양쪽 대표가 정부 청사에 들어가 담판을 벌였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군중들이 서서히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후 5시쯤 구름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장대비로 바뀌었다. 이때 도미니코회의 수사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기적이다! 주님께서 비를 내리신다. 그분이 불의 심판을 원치 않으신다!”
군중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물러가는 도미니코회 수사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질렀다. “처음부터 사기였구나. 저놈은 가짜 예언자이다. 우리가 속았다!” 그날 사보나롤라는 경비병의 보호 속에 간신히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주일 미사 후 성난 군중이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습격했다. 파괴와 약탈이 이어졌다. 사보나롤라는 수갑과 족쇄를 찬 채 행정청으로 끌려갔다.
마지막 불꽃. 한 달 반이 지난 5월 23일. 광장에 다시 한번 불길이 타올랐다. 사보나롤라와 다른 두 수사의 처형식이었다. 세 사람은 이미 하루 전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보나롤라는 고문 끝에 이단죄와 반역죄를 자백했다. 심문과 재판은 피렌체 정부가 주도했다. 사실상의 인민재판이었다. 교황청은 말리는 척했지만, 끝까지 반대하진 않았다. 수도자 신분을 감안해 직접 화형에 처하진 않았다. 먼저 교수형에 처한 뒤 화형을 집행했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자, 군중이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졌다.
거룩한 예언자의 삶은 그렇게 마흔여섯으로 끝났다. 그는 사후에라도 명예를 회복했을까. 『군주론』의 작가 마키아벨리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시류에 편승하고, 거짓을 둘러댄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의 연설을 직접 듣기도 한 동시대의 관찰자이다. 그는 ‘무력이 없는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례’로 사보나롤라를 들기도 했다. 후대의 연구서들도 대체로 종교를 앞세운 당파정치의 실패라는 관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사보나롤라에 관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실록 형식으로 가공했다. 사보나롤라를 밀도 있게 다룬 국내 저술이나 연구 논문은 거의 없다. 해외 연구서의 번역본도 찾을 수 없다. 시오노 나나미가 『신의 대리인』의 한 장(章)으로 다룬 것이 그나마 눈에 띈다. 구글 AI에게 문의했더니 다음 몇 권을 추천한다. 다행히 요즘은 AI 번역 기술이 좋아서 외국어 서적을 e-book으로 대충이라도 훑어보는 일이 예전만큼 어렵지는 않다.
『Fire in the City: Savonarola and the Struggle for the Soul of Renaissance Florence』 (Lauro Martines,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Savonarola: The Rise and Fall of a Renaissance Prophet』 (Donald Weinstein, Yale University Press, 2011)
『A Crown of Fire: The Life and Times of Girolamo Savonarola』 (Pierre Van Paassen, Normanby Pres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