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꽃의 흔적을 찾아서

08-02 피렌체의 성당과 수도원

by Peregrinante in Spem

“확신은 일치와 관용의 가장 큰 적입니다.”


올해 초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에서 로렌스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새 교황 선출 과정을 다룬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갑작스레 콘클라베를 주관하게 된 로렌스 추기경은 갈등으로 치닫는 추기경들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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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은 일치의 가장 큰 적입니다. 확신은 관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확신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통받으시며 외치셨습니다. “저의 하나님, 저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우리의 믿음은 의심과 함께 걸어가기 때문에 살아있습니다.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도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의심하는 교황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서도 용서를 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교황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영화관에서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확신은 굳건한 신앙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앙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한다. 나의 확신과 너의 확신이 다를 때, 두 확신은 격렬한 충돌로 치닫는다. 집단적 확신이 맞부딪치면 종종 전쟁으로 번진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신의 뜻을 말하는 사람은 대개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신은 그처럼 쉽게 한 개인을 당신의 대리인으로 세우지 않으신다. 그런 엄청난 능력과 은총을 허약한 인간에게 몰아주실 리가 없다. 성경은 그런 사람을 거짓 예언자로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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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나롤라는 고결한 영혼을 가진 수도자일까, 권력과 명예를 탐한 거짓 예언자일까. 종교개혁의 선구자인가, 아니면 어설픈 신권정치를 추구한 선동가인가.


교황과 교황청의 사치와 부패와 독선을 통렬히 비판한 대목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질타와 책망을 신의 뜻으로 내세우면서 스스로 예언자로 포장한 대목이다. 신은 나 사보나롤라를 통해 준엄한 심판을 예고하셨다.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과 질병이 덮칠 것이다. 교황을 공격하라. 이것은 신의 명령이다. 부패한 메디치 가문에 신의 징벌이 내릴 것이다. 오랜 단식에서 나오는 형형한 눈빛과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피렌체 시민이여, 신의 말씀을 들어라.


사보나롤라는 신을 내세워 권력을 장악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섰던 구약 시대의 예언자와 자신을 겹쳐놓았음이 분명하다. 광야에서 외치던 세례자 요한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성경이 그토록 경계했던 거짓 예언자의 모습을 닮고 말았다. 도덕적 우위를 충분히 인정하고 싶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불의에 맞선 격한 용기를 상찬하고 싶지만, 그도 또한 권력을 추구했다. 내게는 과도한 소명 의식으로 자신을 태워버린 불행한 수도자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피렌체의 성당과 수도원을 조사하다가 사보나롤라에게 마음이 끌렸다. 이 도시 어딘가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불꽃으로 스러진 그 수도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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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 광장 : 마지막 불꽃이 타올랐던 자리는 시뇨리아 광장이다. 분수대 앞 바닥에 둥근 대리석 명판이 있다. 사보나롤라가 처형당한 정확한 장소를 알려준다. AI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 보니 이런 내용이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수사는 1498년 5월 23일 그 형제들인 도메니코 부오누치니, 실베스트로 마루피 수사와 함께 부당한 판결로 교수형을 당하고 불태워졌으니, 그로부터 4세기가 지난 뒤 그 장소에 이 기념물을 설치했다.

(Qui dove con i suoi confratelli Fra Domenico Buonucini e Fra Silvestro Maruffi il XXIII Maggio del MCCCCXCVIII per iniqua sentenza fu impiccato ed arso Fra Girolamo Savonarola dopo quattro secoli fu collocata questa mem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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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궁 : 분수대 뒤편으로 육중한 성채 같은 건물이 보인다. 피렌체 공화정의 중심이었던 베키오궁이다. 95m 높이의 시계탑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궁 입구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서 있다. 원본은 다른 미술관으로 옮기고 복제품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시계탑은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이곳에 감금된 유명한 인물 중에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코시모 데 메디치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있다. 사보나롤라는 1498년 4월 8일부터 5월 23일까지 45일 동안 시계탑 아래 작은 방에 감금되었다.


이 궁전은 지금 대부분 박물관으로 사용되지만, 여전히 피렌체 행정의 중심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박물관 2층에서 별도의 입장권을 끊으면 223개의 계단을 통해 시계탑에 올라갈 수 있다. 비좁은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무문이 달린 작은 방을 만난다. 문 위쪽 벽면에 대리석 돌판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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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반역범을 가두는 감옥으로, 보통 ‘알베르게티노’(L’Alberghettino)로 불렸고, 국부(國父) 코시모 데 메디치가 1433년 9월 7일부터 10월 3일까지,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수사가 1498년 4월 8일 밤부터 5월 23일까지 투옥되었다.

(In questo popolarmente chiamato “L’Alberghettino,” prigione agli accusati di delitti contro lo stato furono carcerati Cosimo De’ Medici Pater Patriae dal 7 Settembre al 3 Ottobre 1433 e Fra Girolamo Savonarola dalla notte dell’ 8 Aprile al 23 Maggio 1498.)



두오모 : 피렌체 두오모는 워낙 유명해서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다. 이 성당의 공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전’(*1)이지만, 보통 ‘피렌체 두오모’ 또는 ‘두오모’로 부른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에서 그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을 의미한다. 주교좌 대성당(Cattedrale)과 같은 경우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피렌체 두오모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보통 두오모라고 하면 이 대성전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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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은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의 설계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종탑은 지오토(Giotto di Bondone), 돔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의 작품이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140년이 걸렸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돔 공사는 1420년에 시작되어 1436년에 완성되었다. 목재 지지구조 없이 지은 역사상 최초의 팔각형 돔이다. 무게 37,000톤으로, 4백만 개 이상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그 당시 가장 거대한 돔이었고,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재 돔이다.


사보나롤라는 아마도 이 성당에서 주일 미사가 끝난 뒤 몇 차례 연설했을 것이다. 그는 사제품을 받았고, 학자로서 설교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이곳에서 사보나롤라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그의 설교는 허공으로 흩어졌고, 그를 기억하는 어떤 상징물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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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코 대성전 : 사보나롤라가 피렌체 시민에게 자주 열변을 토했던 장소는 성 마르코 대성전이다. 이 성당은 성 도미니코회 소유였으므로 사보나롤라의 안방과도 같았다. 성당과 이어진 수도원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사보나롤라는 39세 때인 1491년에 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성당 안에서 뜻밖에도 사보나롤라의 청동 조각상을 만났다. 나무 받침대에 붙은 작은 금속판에 ‘GIROLAMO SAVONAROLA, 1452-1498’이라고 적혀 있다. 다른 설명은 하나도 없다. 청동상 뒤로 보이는 글자들은 이곳에 묻힌 다른 인물에 관한 설명이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보나롤라 초상화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15세기에 이 수도원에는 또 한 명의 유명한 수도자가 살았다. 화가로 이름을 떨친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이다. 사보나롤라보다 먼저 이 수도원에 살았고, 뛰어난 프레스코화를 남겼다. 「수태고지」 등 유명한 작품이 성당과 박물관에 남아있다. 복자품에 오른 그의 동상도 성당에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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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로체 대성전 : 산타 크로체 대성전은 성 프란치스코회의 성당이다. 사보나롤라에게 ‘불의 심판’을 제의했던 수도자들이 이 성당과 연결된 수도원에 살았다.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작곡가 로시니 같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문화예술인의 무덤이나 추모비(cenotafio)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영광의 성전’(*2)으로도 불린다. 사보나롤라와 관련된 기록물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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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나롤라 광장 : 마지막으로 피렌체 시내에 있는 사보나롤라의 동상을 찾아 나섰다. 성 마르코 대성전에서 외곽으로 1km쯤 떨어진 곳에 사보나롤라 광장이 있다. 동상은 1875년에 완공됐지만, 환영받지 못한 채 떠돌다가 1921년에야 겨우 이 자리에 놓일 수 있었다. 동상 받침대의 글씨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A

GIROLAMO

SAVONAROLA

DOPO TRECENTOTTANTAQUATTRO ANNI

L'ITALIA REDENTA

XXV GIUGNO

A. MDCCCLXXXII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384년 후

구원받은 이탈리아

6월 25일

1882년




사보나롤라의 흔적을 찾아 피렌체의 거리를 걸었다. 나는 그를 헛된 영광을 꿈꿨던 수도자의 실패 사례로 읽는다. 수도자가 엄격한 금욕과 가혹한 고행으로 한없이 드높은 영적 지혜를 얻는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본다. 겸손과 교만의 갈림길에서 한 발짝 잘못 디딘 결과는 파멸적이다. "수도승은 반드시 겸손과 결혼해야 한다." "겸손은 하느님의 딸이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 자신을 슬기롭다 여기는 자들!” (이사야 5,21)




(*1) Basilica 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ta Maria del Fiore

(*2) Tempio dell'Itale Glorie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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